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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핵(彈劾)의 어원(語源) 1 - 거석문화의 진실 8

by 역맥파인더 Mar 22. 2025

대한민국 헌법 제65조

1. 대통령·국무총리·국무위원·행정각부의 장·헌법재판소 재판관·법관·중앙선거관리위원회 위원·감사원장·감사위원 기타 법률이 정한 공무원이 그 직무집행에 있어서 헌법이나 법률을 위배한 때에는 국회는 탄핵(彈劾)의 소추(訴追)를 의결할 수 있다.

3. 탄핵소추(彈劾訴追)의 의결을 받은 자는 탄핵심판(彈劾審判)이 있을 때까지 그 권한행사가 정지된다.

대한민국 헌법 제111조

1. 헌법재판소는 다음 사항을 관장한다.

1. 법원의 제청에 의한 법률의 위헌여부 심판 2. 탄핵(彈劾)의 심판(審判) 3. 정당의 해산 심판 4. 국가기관 상호 간, 국가기관과 지방자치단체 간 및 지방자치단체 상호 간의 권한쟁의에 관한 심판 5. 법률이 정하는 헌법소원에 관한 심판 - 대한민국 헌법 중에서

출처 법조신문


고위직 공직자에 의한 헌법 침해로부터 헌법을 보호하기 위한 헌법재판제도를 왜 탄핵(彈劾) 제도라고 했을까?

고려와 조선시대에도 부정(不正), 비위(非違), 범법(犯法)한 관원들을 어사대(御史臺)와 사헌부(司憲府)가 논란하고 책망해 해당 직위에 있지 못하도록 하는 언론 활동을 탄핵(彈劾)이라고 명명했었다. 영어로도 탄핵은 Impeachment라고 하는데 이는 구속하다, 묶다, 방해하다는 뜻을 가진 프랑스어 empeechier에서 유래했다고 위키백과에서는 밝히고 있다. 우선 한자로 쓰인 탄핵을 분석해 보면 한자 탄핵(彈劾)의 탄(彈) 자는 활 궁(弓) 자와 홑 단(單) 자가 함께 쓰여 탄알, 탄핵하다, 바루다 등의 뜻을 가진 글자이고 핵(劾) 자는 돼지와 개를 함께 뜻하는 해(亥) 자와 힘 력(力) 자가 함께 쓰여 꾸짖다, 죄상을 조사하다, 힘쓰다, 노력하다 란 뜻을 나타내는 글자라고 네이버 한자사전은 소개하고 있다. 탄핵을 뜻하는 영어 impeachment는 empeechier라는 고대 프랑스어가 어원인데 이 단어는 impedire라는 라틴어에서 유래한 단어였다. 이 impedire라는 라틴어는 발(foot)을 뜻하는 ped, pedis를 올가미로 묶어 놓은 모습을 의미하는 글자였다.


The word "impeachment" likely derives from Old French empeechier from Latin word impedīre expressing the idea of catching or ensnaring by the 'foot' (pes, pedis), and has analogues in the modern French verb empêcher (to prevent) and the modern English impede. Medieval popular etymology also associated it (wrongly) with derivations from the Latin impetere (to attack). 탄핵이라는 영어 impeachment는 고대 프랑스어 empeechier에서 유래한 말인데 이 고대 프랑스어는 발(foot)이 올가미에 묶여 있는 또는 발이 잡혀 있는 모습을 표현한 impedīre라는 라틴어에서 유래한 단어였다. 또한 이 단어는 막다, 방해하다란 뜻을 가진 현대 영어 impede와 현대 프랑스어 empêcher 와도 유사성을 가지고 있다. 공격하다란 뜻을 가진 라틴어 impetere에서 impeachment가 유래되었다고 하는 (틀린) 설이 중세엔 널리 인정되기도 했다. - 위키백과

출처 네이버 한자사전

탄핵을 나타내는 한자 彈劾과 Impeachment라는 영어의 라틴어 어원(語源)인 impedire를 통해 미루어 알 수 있는 사실은 탄핵(彈劾)이라는 단어가 개, 돼지와 발(foot)을 묶어 마음대로 움직이지 못하게 구속(拘束)하는 일과 각각 관련이 있다는 것이다. 결국 이 두 사실을 합치면 개와 돼지의 발을 올가미 같은 걸로 묶어 구속(拘束)하는 것에서 탄핵(彈劾)이라는 단어 중 핵(劾)이라는 글자가 유래했다는 사실을 유추해 낼 수 있다. 그러면 대체 개와 돼지의 발을 묶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 일이었기에 인간 사회의 첨예한 정치적 행위를 가리키는 일의 이름(탄핵)을 짓는데 그 개념(idea)을 사용했는지 의문이 들 수밖에 없다. 그 의문을 풀어가는 과정에 차(茶) 나무가 있었다. 탄핵이란 말이 생겨나게 한 건 차(茶) 나무를 찾아내고자 하던 일에서 비롯된 일이었다. 우연히 한두 그루의 차(茶) 나무가 아니라 차나무들이 숲을 이루고 있는 곳을 찾아내는 행운을 만난 뒤 그 터를 기어이 지키고자 건설한 게 언덕성곽(citadel) 도시였고 그 도시를 유지하고자 이런저런 노력을 한 게 결국 문명으로까지 연결된 과정이었다. 메소포타미아 문명의 시작이라는 인류 최초의 도시인 에리두(Eridu)와 우르(Ur) 그리고 순우리말인 뫼(me)와 서울운동장을 가리키는 말인 줄로만 알던 성동원두의 원두(原頭)는 수메르인들과 개(犬) 그리고 돼지(豕)들이 차(茶) 나무와 함께 만들어 낸 문명의 키워드들이었다.


마고와 궁희, 소희가 꾸려가는 삼신할매의 낙원(paradise)에서 포도주의 음주(飮酒)로 인해 발생한 오미(五味)의 변으로 배달(倍達) 해야 했던 호모 사피엔스들은 지유(地乳)를 찾아 필사적인 방랑을 거듭해야 했다. 땅에서 나는 젖이란 뜻의 지유(地乳)란게 땅에서 솟아나는 찻잎(茶葉)들의 여과액(濾過液)이어서 지유(地乳)를 찾는다는 건 결국 차나무를 찾는 것과 다름 아니었다. 차(茶) 나무를 찾아 필사의 노력을 기울이던 배달(背達)의 민족이 발정기에 들어선 암퇘지가 차(茶) 나무의 잎들을 여과(濾過)한 물들이 모여 형성된 웅덩이를 미치도록 좋아하고 그래서 잘 찾아낸다는 사실을 간과한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발정 난 암퇘지들을 내세워 그들이 가는 곳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덧 돼지들이 좋아하는 웅덩이가 나왔고 그 주변을 탐색(探索)하면 차(茶) 나무가 반드시 있었다. 가족(家族)들이 사는 집(家)에 가족 대신 되지 시(豕) 자가 들어있는 이유였다. 돼지를 집에 가족처럼 함께 살게 하는 민족은 우리 민족밖에 없었다. 제주도의 똥돼지라 불렸던 민속(民俗 folklore)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는 이제와 새삼스럽고 그 전통을 지켜 오늘날 이런 글을 쓰게 한 근거가 되게 해 준 제주사람들에게 경의를 표한다.


발정기에 들어선 암퇘지가 찻잎들을 여과(濾過)하며 땅에 떨어진 빗물들이 땅속에 고이다 샘으로 솟아난 웅덩이에 환장하는 건 그 웅덩이 물에 녹아 있는 찻잎에서 우려진 폴리페놀(polyphenol) 성분 때문이었다. 폴리페놀이란 산화(酸化)를 일으켜 세포의 노화(老化)를 야기하는 활성세포의 활동을 억제해 산화와 노화를 방지해 면역력을 올려주는 화합물인데 식물이 자기 자신을 여러 질병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스스로 만들어낸 면역 강화물질이라고 할 수 있다. 발정기의 암퇘지들이 찻잎의 폴리페놀 성분이 녹아 있는 웅덩이에서 나는 냄새가 숫퇘지의 고환(testes)에서 만들어지는 정액 냄새라고 착각해 그 냄새나는 곳으로 달려가는 일이 벌어지는 연유였다. 프랑스와 이탈리아에서 최고급 향신료로 없어 못 파는 송로(松露) 버섯, 트러플(truffle)은 땅 속  5피트(160cm) 깊이의 주로 오크(oak) 나무뿌리 근처에서 자라는 것이기에 찾아내는 게 보통 어려운 게 아닌 버섯이었다. 이렇게 땅 속 깊이 자라는 트러플을 신기하게 잘 찾아내는 게 발정 난 암퇘지들이었다. 그런데 문제는 찾고 난 다음이었다. 가뜩이나 발정이 나 흥분해 있는 암퇘지들이 트러플 냄새를 맡게 되면 전광석화처럼 땅을 파헤쳐 트러플을 찾아내곤 산산조각 내버리는 통에 그 비싼 트러플이 찾은 보람도 없이 상품 가치를 잃어버린다는데 있었다. 그건 5천 년 전 메소포타미아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주변 차(茶) 나무에 의해 만들어진 샘(泉)에 만족하지 못한 돼지들이 폴리페놀 냄새의 원천인 근처에 있는 차(茶) 나무까지 찾아내 뿌리까지 파헤치는 바람에 끝내 차(茶) 나무들에 해를 끼치는 끔찍한 폐해가 계속되었다. 결국 돼지주둥이의 이런 가공할 파괴력을 막기 위해 돼지 머리에 칼을 채우는 대책이 시행되었다. 중세 시대 죄인들의 목에 채워져 행동을 제약했던 칼(cangue 枷)의 시작은 차(茶) 나무를 찾기 위해 동원된 발정 난 암퇘지 머리에 씌워진 칼이었다.

우가르타에서 발굴된 돼지 머리 도기     출처:위키미디어

돼지 시(豕) 자의 갑골문을 보면 꼬리 끝이 땅을 향해 있는 돼지 모양의 동물이 쉽게 연상된다. 그런데 돼지를 묘사한 게 확실한 이 갑골문에서 특이한 것은 목 부분과 다리 부분에 그어져 있는 선이다. 머리 부분에 그어진 선은 돼지 목에 채워진 칼(枷)을 그린 것이었다. 차(茶) 나무뿌리가 다 드러나도록 땅을 파헤치는 그 저주받을 주둥이를 아예 땅에 대지 못하게 하기 위함이었다. 또한 돼지 몸통을 나타내기 위해 그어진 선처럼 언뜻 보이는 앞다리와 뒷다리를 연결해 그어진 선은 하나의 줄(索)로 돼지의 앞다리 하나와 뒷다리 하나를 서로 묶어 놓은 모습을 그린 것이었다. 가파른 산중(山中)에서도 시속 40km를 넘나들며 달리는 돼지의 속력을 줄이기 위한 장치였다. 300kg에 육박하는 몸집으로 산중에서 시속 40km 이상으로 달리며 자유자재로 신속하게 방향전환을 하는 돼지는 차(茶) 나무 탐색자들에게는 재앙이었다. 사람들이 도저히 따라갈 수 없는 속도로 내달려 사람들이 그토록 찾아 헤매던 차(茶) 나무들에 먼저 당도해 뿌리를 파헤쳐 차나무에 해를 끼치는 돼지들을 통제하기 위해서는 앞다리와 뒷다리를 한 줄(索)로 묶어 사람들이 따라잡을 수 있는 속도로 달리게 최대한 통제애야 했고 또한 사람들보다 차(茶) 나무에 먼저 당도해 뿌리를 파헤치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는 주둥이를 땅에 대지 못하게 하는 칼(cangue 枷)을 머리에 씌워야 했다.

출처: 네이버 한자사전

그러나 머리에 씌운 칼(枷)은 차(茶) 나무를 탐색(探索)하러 나선 돼지들을 쉽게 죽음에 이르게 하는 살구(殺具)가 되어갔다. 기후변화로 차(茶) 나무들은 점점 더 깊은 골짜기에서만 찾아내졌고 그럴수록 돼지들은 목에 찬 칼(枷)이 덤불에 걸려 오도 가도 못한 채 발버둥 치다 숲 속의 포식자(捕食者 predator)들에게 잡아 먹히는 일이 많아졌다. 통제구(統制具)들이 발정 난 암퇘지를 제대로 통제하지도 못한 채 그것들로 인해 돼지가 죽어나가자 결국 돼지들은 차(茶) 나무 탐색(探索) 작업에서 퇴출되었다. 덤불에 쉽게 걸려 오도 가도 못하게 하는 칼(枷)을 탈(甲)로 바꾸어 써 보았지만 부작용이 엄청났다. 돼지 머리에 칼이 아닌 탈(甲)을 씌우자 돼지들은 미친 듯이 날뛰었고 결국 탈(甲)을 벗겨내야 겨우 진정되었다. 탈(甲)을 쓰고 미쳐 날뛰는 돼지들 모습에 생긴 말이 꼴갑한다, 꼴갑 떤다였다. 칼과 달리 머리 전체를 감싸는 탈(甲)은 돼지 머리 꼴에 따라 제작됐는데 그럼에도 탈(甲)을 뒤집어 씌우기만 하면 미쳐 날뛰면서 온몸을 떨어대는 돼지들의 산경발작적 반응을 보고 생겨난 말이 꼴갑 떤다였다. 머리 꼴을 확인해 머리 꼴대로 만든 갑(甲)을 쓰고도 온몸을 떨며 미친 듯이 날뛰는 돼지들로 인해 꼴갑한다는 말만 남긴 채 돼지는 차(茶) 나무 탐색(探索) 작업에서 제외되었다. 돼지가 제외되면서 개에게도 탈이 씌여졌는데 그러나 그 폐해는 돼지에 비해 미미했다. 그 이유는 돼지와 달리 말(馬)처럼 몸과 머리가 확실히 구별되는 개(犬)는 돼지처럼 머리 전체를 감싸는 탈이 아니라 말과 같은 고삐가 달린 굴레가 씌여졌다. 굴레를 쓰고부터 개는 견(犬)이 아닌 구(苟)로 기록되었고 후일 차(茶) 나무 탐색 작업이 없어지자 구(狗)가 되었다. 더더욱 튼튼하고 끊어지지 않는 동아줄(索)의 제작이 필요해져 갔다.

출처: 네이버 한자사전

퇴출된 돼지의 대안(代案)으로 냄새와 시각에 민감하면서도 통제가 수월한 개(苟:狗)가 선택되었다. 소리가 아닌 시각(視覺)에 민감한 개(犬)들이 선발된 것은 땅으로 떨어지는 번개가 아닌 하늘 위 구름 속에서만 발생하는 번개들이 많이 치는 지역에서 차(茶) 나무들이 잘 자랐기 때문이었다. 대부분 구름 속에서만 발생되는 번개는 땅에서는 너무 멀어 작은 불빛으로만 보였고 소리는 거의 들리지 않았다. 이런 상황 때문에 먼 곳에서 일어난 작은 빛에도 민감한 개가 필요했다. 발정 난 암퇘지만큼은 아니었으나 차(茶) 나무를 찾는 모든 과정에서 들여야 하는 비용을 생각해 보면 돼지를 개(苟:狗)로 대체한 것은 현명한 선택이었다. 치밀하고 오랜 훈련 끝에 차(茶) 나무 탐색견(探索犬)으로 길러진 개(苟:狗)들은 결국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보물이 되었다. 아일랜드에 우리와 똑같은 고인돌(dolmen)을 건설해 차(茶) 산업을 발전시켰던 고대 켈트(Celt)족의 신화 중 하나인 라긴의 알버(Ailbe)라는 이름의 개(犬)를 두고 벌어지는 이야기를 기록한 막 다 호의 돼지이야기는 차(茶) 나무 탐색견(探索犬)이 당시 어떤 가치를 가지는지를 여실히 보여주는 증거였다. 사냥개로 잘못 알려진 차(茶) 나무 탐색견(探索犬) 알버(Ailbe)와 교환하기 위해 코나크타는 젖소 60마리, 전차(chariot) 한대, 코나크타에서 가장 좋은 말 두 마리를 한꺼번에 주겠다고 제시하면서 만약 거래가 성사되어 알버(Ailbe)가 코나크타에 오면 다음 해에도 똑같이 같은 양의 젖소와 전차, 말들을 주겠다고 약속할 정도였다. 코나크타와 차(茶) 나무 탐색견(探索犬) 알버를 놓고 경쟁한 울라(Ula)는 자신들의 나라가 갖고 있는 모든 것을 거래 대가로 주는 것을 의미하는 동맹을 맺겠다고 나설 정도였다. 그만큼 대륙의 동쪽을 차지한 고조선을 제외한 전 세계가 기후변화로 인한 찻잎의 부족에 시달리고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그토록 귀중한 차(茶) 나무를 발견하는 즉시 뿌리를 파헤쳐 해를 끼치는 돼지는 차나무 탐색(探索) 작업에서 제외되는 걸 넘어 메소포타미아 지역에서는 아예 금기시되는 동물이 되었다.

출처: 위키미디어

전차(戰車)라고만 불려지던 말(馬)들이 끄는 수레를 chariot라고 이름 붙인 연유가 여기에 있었다. 차(茶) 나무를 탐색(探索)하기 위해 풀어놓은 빠르게 움직이는 돼지와 개(犬)를 뒤쫓아가기 위해서는 사람에게 그만한 속력을 내는 걸 가능하게 해주는 무언가가 필요했다. 그것이 말(馬)이었다. 안장도 등자도 개발되지 않았던 시절 말등에 올라타 달리는 말등에서 오로지 굴레에 연결된 고삐만을 잡고 낙마하지 않고 버틴다는 건 불가능했다. 그래서 사람이 말(馬)과 함께 달릴 수 있도록 개발된 것이 바퀴달린 수레였다. 게다가 돼지와 개(犬)가 발견한 차(茶) 나무에서 채취(採取)한 찻잎들을 싣고 빨리 돌아올 수단 또한 필요했다. 가지에서 채엽(採葉)되는 그 순간부터 산화(酸化)를 시작해 폴리페놀 성분의 카테킨(Catechin)이 그 약효(藥效)를 상실해 가는 찻잎의 속성상 한시라도 빨리 사람들에게 찻잎을 가져다 주는 건 가장 시급히 해야하는 일이었다. 이런 두 가지 목적을 위해 개발된 것이 chariot이었다. 폭동이나 폭력적 상황만을 나타내는 단어인 줄로만 알고 있는 riot는 그러나 뭔가로 가득 채워진 장소(a place that is filled with something)를 뜻하거나 매우 즐거운 사람(someone or something that is very funny)을 나타내는 단어였다. 차(cha 茶)로 가득 채워진 수레를 말(馬)들에게 끌게 해 사람들이 기다리는 곳으로 신속히 돌아가는 마부(馬夫)가 어찌 즐겁지 않았겠는가. 우리가 전투에 사용하는 전차(戰車)로만 뜻을 새기는 Chariot은 사실 돼지와 개(犬)들을 이끌고 차(茶) 나무를 찾아 나선 탐색대(探索隊)가 차(茶) 나무 발견에 성공하여 말이 끄는 수레에 찻잎을 가득 싣고 즐겁게 돌아오는 모습을 뜻하는 단어였다.


이런 통제구(統制具)들로 제약된 돼지들은 후일 쿠데타로 소태(蘇台) 단군을 몰아내고 22대 단군에 오르는 색블루(索弗婁)로 대표되는 탐색꾼들과 함께 고조선에 들어와 고조선에서조차 기후변화로 사라져 가는 차(茶) 나무들을 탐색(探索)하는 일에 동원되었는데 이때 돼지를 사용하는 탐색꾼들에게 중점적으로 탐색(探索)하도록 배당된 지역이 지금 몽골고원이라 불리는 지역이었다. 그 광대한 지역이 몽고(蒙古)로 불리게 된 시작이었는데 몽골인들이 그 뜻 때문에 싫어한다는 몽고의 몽(蒙) 자는 결코 무지몽매(無知蒙昧)하다는 뜻이 아니었다. 점점 희귀해져 가는 차(茶) 나무를 찾아 찻잎(艹 초두머리 초)을 확보하기 위해 머리에 탈(칼)을 뒤집어쓰고(冖 덮을 멱)  앞다리와 뒷다리 간에는 줄에 묶여( 一 한 일) 속도가 통제된 돼지(豕)들이 차(茶) 나무를 탐색(探索)하는 모습을 상형한 글자가 몽(蒙) 자였다. 차(茶) 나무뿌리를 파헤치지 못하도록 돼지머리에 탈(칼)을 뒤집어쓴 모습을 상형한 글자인 덮어쓸 몽(冡) 자에 찻잎을 뜻하는 풀 초(艹) 자가 더해진 글자였다. 즉 몽고의 몽(蒙) 자는 무지몽매(無知蒙昧)하다는 뜻이 아니라 탈을 뒤집어 씌운 돼지를 이용해 찻잎을 찾는 것을 상형한 글자였다. 차(茶) 산업을 종주국인 우리 민족에게서 빼앗는 것을 자신들이 살 길이라 작정한 중국인들의 수천 년에 걸친 집념은 결국 시베리아와 몽골고원, 그리고 만주와 한반도에 걸쳐 아로새겨진 차(茶) 산업에 관련된 찬란한 고조선의 역사를 조작하고 파묻히게 했고 급기야 몽고에서 보듯 이런 악의적인 왜곡을 가함으로써 동아시아의 영광된 역사를 빛바래게 하는 만행을 저질렀고 관련 민족들에게 깊은 상처를 남기게 되었다.

성동원두란 말을 만들어 낸 에리두의 위치. 출처:위키미디어

인류 최초의 도시라고 알려진 에리두(Eridu)는 수메르인들이 자신들이 제일로 모시는 엔키 신을 위해 건설한 도시였다. 에리두(Eridu)란 도시의 이름은 수메르 왕명표(Sumerian King List)에 따르면 에리두(Eridu)가 아니라 에리두그(Eridug)인데 이때 E는 신을 의미하는 접두사임으로 생략하면 도시의 이름은 리두그(ridug)였다. 산스크리트어로 리(ri)는 얻는다(to obtain) 또는 흐른다(to flow)란 뜻이고 두그(dug)는 젖(to milk) 또는 젖이 뿜어져 나오다(to draw out milk) 란 뜻이다. 결국 둘의 뜻을 합치면 리두그ridug)는 젖이 뿜어져 흐르는 곳, 또는 그런 젖을 얻을 수 있는 곳이란 뜻이다. 에리두에서 동쪽으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역시 수메르인들이 건설해 자신들의 도읍으로 삼았던 도시가 있었는데 그 도시 이름은 우르(Ur)였다. 기원전 2004년에 망한 우르 제3왕조 시절 구약성서의 창세기에 나오는 아브라함이 야훼신의 계시로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땅으로의 이동을 명령받았을 때 살던 도시가 우르(Ur)였다. 루왜은조리 산에 있던 삼신할매의 낙원(樂園)에서 살던 시절 주식(主食)으로 먹던 것이 땅에서 나는 젖 즉 지유(地乳)였다고 신라의 명재상 박제상이 기록한 징심록(澄心錄) 부도지(符都誌)는 밝히고 있는데 그 낙원(樂園)을 배달(背達)해 북으로 떠나간 수메르인들이 메소포타미아 땅에서 처음 건설한 도시 이름이 바로 지유(地乳)를 얻을 수 있는 곳, 에리두그(Eridug)였다. 이와 같은 역사는 에리두가 땅의 젖인 지유(地乳)를 얻을 수 있는 곳, 즉 땅의 젖이 샘솟아 흐르는 땅이었다는 것을 알려주는 것이며 결국 지유(地乳)란 차(茶) 나무의 찻잎들이 빗물에 여과되어 형성된 샘물을 뜻하는 것이란 걸 알 수 있다. 차(茶) 나무들이 숲을 이루어 그 차(茶) 나무들의 잎들을 여과(濾過)한 물들이 모여 마르지 않는 샘물(泉水)이 되어 찻잎 여과액(濾過液)을 제공하는 땅이었다. 그러면 수메르인들은 우리나라 말로 하면 원두(原頭)가 되는, 리두그(ridug)라는 젖(dug)이 흐르는(ri) 땅을 어떻게 찾아낸 것일까?

아누비스. 목에 두른 목띠(collar) 와 개줄(leash). 목띠에 crook을 걸어 더이상 전진하지 못하게 했고 채찍(flail)으로 흥분을 가라앉혔다. 출처: Youtube

에리두그(E-ridug)의 동쪽 가까이에는 페르시아만에 접해 항구도시로 그 번영을 구가했던 우르(Ur)라는 도시가 있었다. 우르라는 도시이름은 수메르 말로 개(dog)란 뜻이었다. 수메르 왕국의 도읍 이름이 개(犬)였다는 말이다. 차나무들이 밀집해 찻잎여과액이 샘물처럼 솟아나는 그 원두의 땅을 찾아낸 건 바로 개들이었다. 고대 왕이나 귀족들이 죽었을 때 조성하는 무덤에는 죽은 이의 시신뿐 아니라 죽은 이가 살아 생전 아끼던 이런저런 것들과 저승에 갔을 때 꼭 필요하다고 당시 사람들이 생각하던 것들이 부장품이란 이름으로 함께 들어가 있는데 죽은자가 총애하던 사람도 순장이라는 이름으로 함께 무덤에 묻힐 정도였다. 이렇게 무덤에 부장된 물품들을 조사하면 당시 사람들의 생활상과 문화 그리고 그들이 중요하게 생각했던 것들이 무엇이었는지 알 수 있는데 갑골문으로 유명한 중국 고대 왕조인 상나라의 귀족들 무덤에서는 바퀴달린 수레와 말들이 많이 부장되어 있었다. 이 사실은 상나라 사람들이 말과 마차(chariot)를 대단히 중시했다는 걸 알 수 있다. 고대 문명이 찬란하게 꽃피웠던 메소포타미아 지역과 이집트 지역에서의 무덤 발굴은 개(苟)가 당시 두 문명권에서 어떤 대접을 받았는지 알게 해준다. 이집트에서는 심지어 개(苟)가 저승에 간 죽은 자를 인도하는 역할을 하는, 아누비스(Anubis)라는 이승과 저승을 교통하는 신(god)으로서 모셔지는 정도였다. 이렇듯 개(dog)가 신(god)처럼 모셔졌다는 건 그지역 사람들에겐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일을 개(苟)가 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건 우리나라 사람들이 개(犬)에게 기대하지 않았던 즉 시키지 않았던 일이었을텐데 그건 차(茶) 나무를 탐색(探索)하는 일이었다. 대륙의 서쪽이 없어져가는 차(茶) 나무들 때문에 극심한 혼란을 겪는 동안에도 대륙의 동쪽 끝에 위치한 우리나라는 차(茶) 나무가 줄어드는 경우는 있었어도 차나무 자체가 없어지는 최악의 상황은 한번도 일어나지 않았다. 우리 민족의 개(犬)가 이집트와 메소포타미아, 그리고 켈트족의 유럽 개(苟)들과 달리 높은 대접을 받지 못한 이유였다. 기후변화로 차(茶) 나무들이 심산유곡이라 표현되는 깊숙한 골짜기에서만 살아 남은 유럽과 이집트에서는 그런 차(茶) 나무들을 찾아내기 위한 특별한 개(苟)들이 개발되어 사용되었다.

기원전 2340년경에 조성된 Mereruka 의 무덤에서 나온 부조(relief) 두마리의 테셈(Tesm) 이 목띠에 연결된 개줄(leash)로 통제되고 있다. 출처:위키미디어

덤불이 우거진 골깊은 곳에서 자라는 차나무를 찾기 위해 사용된 개는 덤불 사이로 큰 장애없이 잘 다닐 수 있도록 날씬한 몸에 털이 아주 짧은 개가 동원되었다. 메소포타미아에서 하운드(hound)라고 불리던 이 개는 이집트로 건너가 살루키라는 이름으로 지금까지 전해지고 있다. 페니키아인들에 의해 지중해 몰타섬까지 차나무 탐색을 위해 전파된 하운드는 살루키보다 더 털이 짧아져 덤불을 뚫고 차나무를 더욱 잘 찾아낼 수 있는 능력을 보유하게 되었다. 테셈이라 불린 개는 털이 무척 짧아 거의 가죽만 있고 털은 없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이렇게 돼지와 개로 이루어진 탄핵의 핵 역사였다. 탄핵의 핵 역사가 개, 돼지와 함께 이뤄진 역사인 것 처럼 탄핵의 탄 역사는 안동의 차전놀이, 광주의 고싸움놀이, 경남 창녕의 영산 쇠머리대기에 주된 놀이 기구로 등장하는 차와 고, 쇠머리와 함께 이뤄지는 역사인데 탄핵의 기원 2편에서 다룬다.

경남 창녕 영산 쇠머리놀이. 울창한 삼림속 교목인 차나무에 쇠머리를 대어 한식부터 단오까지 찻잎을 채엽해 실어나르는 일을 가능하게 해준 작업다리였다. 출처:위키미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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