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코드 스튜어트 박물관
St. Sherbrooke 셔부룩 거리의 McGill 맥길 대학교 앞에 있는 McCord Stewart Museum 맥코드 스튜어트 박물관에서 몬트리올 거리 사진전을 하고 있다. 몬트리올 과거의 거리 모습과 사회 변화의 역사적 순간들을 보기 위해 맥코드 박물관에 간다.
그런데 입구 쪽의 일 층에서 전시 중인 ‘퀘벡 원주민의 목소리’라는 기획 전시가 아주 흥미롭다.
입구의 원형 스크린부터 시작하는 원주민들의 증언을 담은 비디오 인터뷰와 원주민들의 유물을 통해 그들의 유산과 지식, 그리고 상처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다.
과거 Indian Policy 동화정책이라는 이름 아래 캐나다 정부가 원주민의 아들, 딸들을 강제로 데려다가 착취, 감금했던 이야기와 그들이 겪는 트라우마, 그리고 후손에게까지 이어진 차별과 억압에 대해 침묵을 깨고 고요하게 외치고 있다.
넷플릭스의 ‘빨간 머리 앤’을 보면 원주민 강제 동화정책에 대해 다룬 에피소드가 있다.
원주민 소녀가 만든 바구니를 구경하다가 친구가 된 앤이, 부족의 소녀에게 영어도 알려주고 집으로 초대하지만, 주위의 차별 어린 시선은 원주민 소녀뿐만 아니라 앤에게도 상처를 준다.
정부는 성당과 손을 잡고 원주민 아이들에게 영어도 가르쳐 주고 새로운 문화를 배울 수 있는 기숙학교를 지원한다고 이를 광고하며 아이들을 데리고 간다. 앤의 친구는 부모의 반대를 무릅쓰고 새로운 문화를 배우겠다며 자기 발로 학교에 들어간다.
하지만 머리를 잘리고 부족의 언어 사용 시에 가차 없는 벌이 내려지는 등 강압적인 교육이 계속되고 출입도 통제되는 감옥 같은 환경에 놓이게 된다. 이 사실을 알게 된 앤과 아저씨의 도움으로 소녀는 탈출에 성공하지만, 그 안에는 많은 부족의 아이들이 남아 있다.
앤은 기사를 통해 강압적인 시스템, 원주민 부족의 문화 말살 정책과 학대에 대해 알리려 하지만 교회와 단합한 정부의 제도 정책은 완강하기만 하다.
캐나다 에번리의 초록색 지붕에 살고 있는 ‘빨간 머리 앤’은 ‘집 없는 소녀’와 더불어 어렸을 때 내가 가장 좋아하는 동화였다.
부모 없는 빨간 머리 주근깨 소녀가 무뚝뚝한 아줌마와 아저씨 집에 들어가 천방지축 뛰어다니며 그들에게 생기를 주고 우정과 사랑을 쌓아가는 이야기지만 그다음에도 많은 이야기가 이어진다는 것은 성인이 된 후 알게 되었다.
책의 성공으로 뒷이야기를 써가던 루시 몽고메리의 전체 소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학교의 교장이 되고 우여곡절 끝에 길버트와 결혼도 하지만, 첫아기를 잃게 되고 아들은 전쟁에서 전사하는 다사다난한 이야기는, 첫사랑에 가슴 뛰며 팡팡 튀던 주근깨 소녀만을 기억하고 싶은 사람들에게 냉동실에 얼려 버리고 싶은 이야기였던 것 같다.
넷플릭스도 성공적인 시즌에도 불구하고 더 이상의 시즌은 없을 거라고 하니, 시청자들에게도 앤은 길버트와 미래를 약속하고 부모에게 버려진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는 해피 엔딩의 빨간 머리 소녀로 남게 되었다.
전시장에는 많은 원주민이 증언하는 스크린을 틀어 놓고 있다.
나이 든 원주민은 그들이 행했던 억압과 차별이 자기 후손에게까지 고스란히 전해졌다고 인터뷰하고 있다.
그들은 기숙학교에서 강제로 교육받으면서 자기 부족에게서 멀어지고 가족과 떨어져 자신의 문화에 대해 배우지 못했고 이는 자신들 삶의 정체성에 큰 구멍을 만들게 된다. 그들의 언어를 알지 못하고 문화와 단절되면서 이는 자기 자식들에게도 큰 혼란을 남겨 주게 된다.
한 젊은 원주민은 자신이 속해있는 곳을 찾지 못하게 되었다고 말한다. 도시에서는 너는 원주민이라 성공하지 못할 거라는 차별을 받고, 도시 외곽의 원주민 마을로 돌아가도 일자리를 찾을 수 없어 빈곤에서 벗어날 수 없었고 문화적 이질감에 거주하기 힘들었다고 한다.
정체성에 상처 입은 많은 이들은 출구를 찾지 못하고 마약과 자살을 선택하게 되며 원주민의 자살률이 증가하게 되었다.
하지만 전시는 원주민이 남긴 유물을 보여주고 그들의 지혜와 생활 방식, 가족 간의 끈끈한 유대감을 통해 회복과 희망을 이야기한다. 많은 공동체에서 그들의 언어인 크리어와 이누이크어를 가르치고 원주민 문화 보존 정책을 통해 세대 간의 트라우마를 없애려고 노력하고 있다고 말한다.
원주민들이 사용하던 따스해 보이는 심플한 부츠는 현재의 사람들이 많이 신고 다니는 어그 부츠의 원조이고, 그들이 입었던 아름답게 수놓아진 비비드 한 빨간색 전통복은 현대의 레이어드룩으로도 손색이 없다.
부모가 일하는 동안 부모의 살과 냄새를 느끼며 업고 안을 수 있게 설계된 원주민 아기 요람에 쏙 들어간 갓난아기의 너무도 환한 미소를 보며 강인하고 신비했던 그들의 영적인 생명력이 회복되기를 바란다.
전시관의 2층으로 올라가 우리가 계획했던 몬트리올 거리 사진 전시를 본다.
몬트리올 거리와 상점 간판들을 사람들의 움직임 속에서 역동적으로 보여주는 과거 도시 사진에서, 남편은 여기가 어디고 저기가 어디라며 아침마다 몬트리올을 걷던 거리를 지도로 그리며 짜 맞추고 있다.
인물들을 위주로 밤의 문화를 보여주는 사진들과 성소수자들만을 대상으로 찍은 사진 전시, 역사적 사건들의 현장에 있는 사람들의 사진 속에서 도시가 시대에 맞춰 변하는 모습이 발 빠르게 지나간다.
밤거리를 돌아다니며 차창과 네온사인, 툭 튀어나온 듯한 길거리의 사람들을 찍은 Bertrand Carrière의 밤의 연작들은 몬트리올의 밤거리를 감각적으로 보여준다.
그중 입구의 벽면을 차지하고 있는 대형 사진이 눈길을 끈다. 비 오는 차 안에 금발의 여자가 운전하고 있고 뒷좌석에는 턱시도를 입은 고양이가 앉아 있는 흑백 사진이다. 와이퍼는 작동 중이고 여자의 시선과 정면을 바라보는 고양이의 시선이 의문을 자아내는 미스터리 한 사진이다.
연출된 것 같은 밤거리의 은밀한 순간을 포착한 거리의 사진들이, 몬트리올을 또 다른 이면을 가진 유혹적인 도시로 만들고 있다.
미술관과 박물관을 사랑한다. 예전에는 나의 취향을 반영한 작품 전시를 찾아보곤 했지만 나이가 드니 모든 예술품이 각각의 묘한 매력으로 나를 사로잡는다.
다양한 이국의 언어들이 대리석 기둥과 바닥에 에코 되어 이 작품, 저 작품으로 옮겨 다니는 거대한 미술관의 빼앗긴 유물들도, 천장이 높은 홀의 원색 벽에 다닥다닥 붙어 있는 중세 시대 작품들도, 유리가 반짝이는 세련된 현대식 미술관의 근대 작품과 현대 작품들도 앞다투어 서로 다른 이야깃거리를 들려준다.
예전에는 혼자 갤러리에 가고 전시를 즐기곤 했는데 언젠가부터 예술작품에 눈을 뜬 남편이 버스에 붙어 있는 포스터나 전시 광고를 보고 재미있을 것 같다며 먼저 가보자고 하면서 자주 같이 다니게 되었다.
덕분에 해외여행 중 미술관 일정을 넣는 일이 더 잦아졌고, 어릴 때는 시큰둥하던 아들도 지금은 인상파 미술이 어떻고 큐비즘이 어떻네 하면서 아는 체를 하고 자신만의 비평을 하게 되었다.
오래된 기둥이 웅장한 파빌리온과 현대식 건물이 지하로 연결되어 엄청난 규모를 자랑하고 있는 몬트리올 현대 미술관은 25살 아래는 돈을 받지 않는다. 정부가 미술관에 보조금과 지원을 하면서 미래의 후원자를 늘리려는 아주 바람직한 정책을 펴고 있다.
그들이 어렸을 때부터 예술을 접하고 관심을 두게 되면 교육적인 면에서 비평적인 사고와 예술적 감각을 키울 수 있을 것이고, 이러한 관심들은 이후에도 미술품 구매와 지속적인 전시 관람을 하면서 열린 사고를 갖게 만들어 삶의 질을 높이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이러한 복지라면 세금이 아까울 것 같지 않다. 생계에 필요한 지원도 중요하지만, 미래를 내다보고 삶을 더 풍요롭게 만드는 문화 예술에 적극 투자하길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