닭장 아파트의 창의적 발상

Habitat 67

by 스노리

올드 포트의 세인트 로렌스강 건너에는 들쑥날쑥한 레고 같은 건물이 있다. 전 세계 건축학과 학생들에게, 녹지 공간과 높은 밀도의 조합을 보여주는 교과서 같은 건물로 여겨지는 Habitat 해비타트 67이다.

도시 주거 문제를 새로운 방식으로 해결하려 한 실험적 건축물로 문화유산으로도 지정되었다.


강 건너에 있어서 가로지르면 금방 갈 것 같지만 강변 산책로를 따라 콩코드 다리까지 내려가 강 위의 다리를 건너 다시 올라가야 하는 길이다. 많은 사람이 자전거를 이용하거나 레깅스를 입고 뛰고 있다.

2km 정도 되길래 걸어가 보기로 한다. 습기가 없는 맑은 날씨라 강변을 걸어도 괜찮겠다 싶어 걷기 시작했지만 곧 후회한다. 쾌적한 산책로가 아니라 차도 옆의 자전거 도로라 먼지도 날리고 양옆으로 달리는 자전거를 조심하기에 바쁘다.

다리를 건너 왼쪽으로 다시 올라오면 해비타트 67이 보이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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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리서 볼 때는 레고로 만든 조립식 주택 같아 보였지만, 가까이서 보니 사막의 한가운데 서 있는 오아시스가 있는 마을 같은 느낌이 들기도 하고, 황폐해진 지구에서 살아남은 자들이 건설한 미래형 모듈 주택 같은 느낌도 든다.

Moshe Safdie 모세 샤프디에 의해 1967년에 완공되어 해비타트 67이라고 불린다는데, 내가 태어나기도 전에 지어졌다고는 믿을 수 없이 현대적이고 창의적이다.

콘크리트로 만든 사각형의 모듈을 연결해 146개 유닛의 주거지가 있다고 한다. 각각의 유닛에는 테라스도 있고 남쪽으로 통창이 나 있어 강 건너 올드 퀘벡이 펼쳐질 뿐만 아니라 추운 퀘벡의 겨울을 데워 줄 햇살도 따스하게 들어올 것 같다.

좁은 땅에 많은 사람이 살 수 있게 만든 공공주택을 구상하여 저렴한 주택을 목표로 만들었는데, 유명세 때문만이 아니라 거주자의 만족도가 높아 주인이 사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렌트비도 비싸 아무나 살 수 없는 고급 주거지가 되었다.


친한 친구가 동네에 집들이 들어왔으면 좋을 것 같은 빈터가 있는데, 땅은 좁지만 여러 사람이 거주할 수 있는 단지가 들어서면 좋겠다는 생각을 항상 했다고 한다. 내가 올려놓은 해비타트 건물을 보고 이거다! 라며 자기가 그 땅에 꿈꾸던 건물이라고 한다. 건축가부터 다양한 각도의 사진을 원하며 큰 관심을 보인다.

돈도 명성도 다 가졌으니 말년에 서민 정책에 기부사업을 할 수도 있지 않겠냐며 모세 샤프디를 섭외해 보라고 한다.


세계에서 인구밀도가 가장 높은 나라 중의 하나인 홍콩의 아파트를 방문한 적이 있다.

남편의 대학원 친구인 땡땡은 –남편은 그의 본명과 발음이 비슷한 땡땡이라고 부른다- 성공한 홍콩인이다. 부인인 시실리아와 함께 공부하러 와 남편과 친한 친구가 되었다.

세월이 지난 후에도 가족과 종종 한국을 방문해 만나고, 우리가 베이징에 살 때는 자주 출장 와 같이 식사하곤 했다.

20년 전쯤 그가 지금의 사업을 일구기 전, 꽤 높은 연봉을 받는 인베스트먼트 회사에 다닐 때, 어린 아들을 데리고 홍콩 디즈니랜드에 놀러 갔다가 그의 집에 간 적이 있다.

그의 아파트는 고급스러운 외관을 가진 침사추이의 고층 아파트였다. 그러나 집 안으로 들어가면 방 두 개와 좁은 거실, 그리고 부엌이 없는 작은 크기에 놀라게 된다.

부엌 대신 물을 끓이는 작은 스토브가 하나 있는 거실 한쪽 편에서 차를 내오며, 외식 문화가 발달한 홍콩에 부엌이 있는 집이 드물다고 말한다. 게다가 갓난아기를 봐주는 도우미가 함께 살고 있다고 하니 엄청 답답할 것 같긴 했다.

시실리아에게 음식 할 필요가 없겠다고 부럽다고 말하긴 했지만, 반짝반짝 빛나는 얇은 대리석 상판과 넓은 아일랜드가 있는 하이엔드 부엌이 꿈이긴 했다.


홍콩의 몽콕에 가면 다닥다닥한 아파트의 베란다까지 짐과 가구가 가득한, 홍콩 영화의 마약상과 무법지대의 배경으로 종종 등장하는 Coffin Apartment 관 아파트를 볼 수 있고, 홍콩섬 쪽에는 몬스터 아파트라고 불리는 Subdivided Flats 닭장 아파트가 있다. ㄷ 자로 연결된 거대한 건물이, 피폐한 미래 행성의 쪼개진 파편처럼 삐죽삐죽하게 튀어나온 곳이다.

평생 뼈 빠지게 일해도 집 한 칸 마련할 수 없는 홍콩 사람들이 일할 의지와 삶의 의욕을 잃고 편의점의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며 한 가구 아파트를 몇 가구가 쪼개서 사는 이러한 닭장 아파트에 산다고 한다.


몬트리올에 있는 동안 땡땡이에게서 오랜만에 연락이 온다. 뉴욕 대학에 입학한 아들과 필라델피아의 보딩 스쿨에 들어간 딸의 셋업을 도와주러 시실리아와 함께 있다며 추수 감사절에 다시 뉴욕에 올 거라고 그때 만나자고 한다.

남편이 세월 좋은 소리를 하고 있다고 웃으며 이런저런 안부를 묻는다.


남편의 말에 의하면 학교 다닐 때 땡땡이 중국 본토에서 온 학생과 홍콩 반환에 관해서 얘기하다가 주먹다짐 직전까지 갔었다고 한다.

그 당시 중국 본토에서 미국으로 유학하러 오는 학생은 고위 간부의 아들에 사상이 투철한 얘들이었다며 그들의 눈에 홍콩은 대륙 일부일 뿐인데, 영리하고 공부 잘하는 땡땡이가 홍콩을 다른 독립국처럼 이야기하다가 싸움이 났었다고 한다.


대륙의 그림자는 여기저기 어둠을 드리우고 있다.

대만에 가면 아파트 건물 벽 곳곳에 이렇게 쓰여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We're not Chinese, We're Taiwanese.

우리는 중국인이 아니다, 우리는 대만인이다.


홍콩의 우산 혁명이 한창일 때, 중국어 튜터인 앨리스와 우산 시위에 관해서 얘기한 적이 있다.


“아빠가 자신은 제대로 먹지도 입지도 못하고 아들을 키워놨는데, 그 아들이 성공해서 아버지를 버리고 집에서 나갈 거라고 하는 꼴이에요”


“아빠가 제대로 교육도 안 시키고 버렸는데, 아들이 성공하고 잘 나가니까 넌 내 아들이야! 내 말을 들어야 해! 가 아니고?”


앨리스가 할 말을 잃는다.

물론 중국말로 대화한 것은 아니었다. 그 당시 나는 간신히 서바이벌 중국어를 하고 있었고 앨리스는 영국 유학을 준비 중인 대학을 갓 졸업한 학생이었다. 부모는 유학을 허락했는데 집안의 대소사를 관장하는 큰 아빠에게 허락받지 못했다며 고민하던 꽤 진취적인 애라 맛있는 로컬 음식점도 같이 가고 후통에 산책하러 가곤 했던 20대 초반의 예쁜 선생이었다.

나중에 남편이 그런 이야기하다가 공안에 잡혀갈 수 있다며 믿을 만한 사람이라도 중국에 대한 체제 비판이나 정치적인 문제를 꺼내지 말라고 한 후에는 민감한 문제에 대해서 이야기하지 않게 되었다.


사업가로 성공하고 베이징에서 만난 땡땡이는 과거에 비해 분위기가 사뭇 달라져 있었다. 쾌활하고 농담하기 좋아하는 성격은 그대로였지만, 남편의 말에 의하면 중국 본토에 관한 생각이 완전히 달라졌다고 한다. 역시 사업에 이득이 되면 그 나라가 내 편이 되고 내 나라가 되나 보다.

지금은 홍콩섬의 빅토리아 피크 부근의 아파트에서 산다고 한다.

예전에 모노폴리 게임을 같이 하면서 나에게 자기를 속여 먹는다고 농담하면서도 열과 성을 다해 땅을 사고 호텔을 살 때부터 그가 성공하리라는 것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해비타트 67에서 우버를 기다리며 잔잔하게 흐르는 짙은 초록의 강과 구름이 수놓은 파란 하늘을 바라본다. 강 건너 몬트리올 시내의 높은 건물과 항구에 정박한 대형 크루즈의 선실이 닭장처럼 빼곡하게 박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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