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아얄 광장의 아리랑

올드 퀘벡 두 번째 이야기 - 365일 노엘 크리스마스

by 스노리

곡예사가 장대를 높이 세워 놓고 관중에 둘러싸여 아찔하게 묘기를 부리고 있는 Place d’Armes 다름 광장을 지나 노트르담 성당 쪽으로 내려오는 Rue De Buade 뷔아드 거리에도 도깨비 신부가 있다.

여느 노트르담 성당처럼 공사 중인 퀘벡 노트르담 대성당 옆에는 크리스마스 조명이 화려하게 감싸고 있는 Noël Éternel 노엘 크리스마스 샵이 선물 상자처럼 반짝거리고 있다. 대성당 옆의 종교적 분위기에 휩쓸려 많은 사람이 일찍부터 크리스마스를 수놓을 장신구를 사고 있는 365일이 크리스마스인 가게이다.



가게 안에 들어서면 크리스마스 테마파크에 온 것처럼 얼음 왕국, 크리스마스 악동들, 중세 크리스마스 마을 등의 테마별 크리스마스 장식이 구분된 부스에서 자신의 취향에 맞는 장식품을 고를 수 있다.

집에 장식할 크리스마스트리는 없지만, 도깨비 신부처럼 이것저것 구경하다가 공주님의 창가에서 99일을 서서 기다린 듯한 산발한 은빛 머리의 장난감 병정을 하나 산다.

노엘 샵 옆의 메이플 시럽 가게에서는 바비 인형처럼 이마가 뽈록하고 얼굴이 반들반들한 이국적인 언니가 메이플 시럽을 얼음 위에 부어 막대기로 몇 번 돌돌 말아 메이플 태피를 만들어 준다. 태피를 주문한 사람에게 직접 해보라고 시키기도 하는데 시럽이 얼음에 닿는 순간 차갑게 굳어 돌돌 말리는 게 신기하다.

우리나라의 달고나 같은 맛이 나지만 100% 메이플 시럽으로 만들어진 조금은 더 건강해 보이는 사탕이다.

Rue du Tresor 트레조 광장을 따라 걷다가 급격한 경사가 지는 Côte de la Montagne 몽따뉴 거리를 따라 내려와서, Rue Notre-Dame 노트르담 거리로 우회전하면 거대한 벽화를 마주하게 된다.



Fresque des Québécois ‘퀘벡인의 프레스코화’는 올드 퀘벡의 역사를 보여준다.

원근법을 이용해 그려진 벽화는 바닥 면과도 교묘하게 연결되어 입체적으로 보인다. 3D의 착시현상이 공간감을 불러와 실제 벽면의 크기보다 더 거대하게 보인다.

구시가지의 건물과 돌길이 그려진 벽화 안에는 몇백 년 전의 탐험가와 정치가, 철학자로 보이는 인물이 사색하고 있고, 다리 위에서는 젊은 남녀가 키스하고 있다. 유모차를 밀고 있는 현대 여성과 아이스하키를 하는 아이들도 중세 복장을 한 사람들 사이에서 놀고 있다.

현대를 사는 사람도, 과거를 살았던 사람도 모두 퀘벡 시민이라고, 벽화는 그들을 한 군데에 모아 놓고 ‘우리가 퀘벡인이다’라고 외치고 있다.

벽화 건물의 왼편으로 들어가면 나의 최애 스팟이 되어 퀘벡에서 머물며 밤낮으로 들르게 되는 Place Royale 루아얄 광장이 나온다. 1600년 초 퀘벡 시티에 정착하면서 첫 거주지를 세운 마을이 이곳 루아얄 광장이다.

왼쪽 옆에는 내벽 공사 중인 듯 중세 건물의 벽지를 뒤집어쓰고 있는 카페가 있고 광장의 중앙에는 Notre-Dame des Victoires Church ‘승리의 노트르담 성당’이 겸허하게 서 있다.

해를 맞아 빛을 반사하는 하얀 석조 건물이 성인이 도래한 듯 광장 주변을 환하게 비추다가, 해가 지기 시작하면서 밤의 루아얄은 고흐의 그림 속으로 빨려 들어간다.

루아얄 광장의 바닥을 이루는 나선형의 돌길은 화가의 그림 속 붓 자국을 닮았다. 반짝이던 돌길과 석조 건물이 해를 거두어가는 하늘의 빛에 따라 색을 잃는가 싶더니 마침내 노란 물감을 풀어놓는다.

노트르담 성당의 첨탑이 은빛으로 변하는 시간, 반 고흐의 ‘별이 빛나는 밤’ 속의 별들처럼 소용돌이치고 있는 광장 바닥의 돌들이 성당과 나, 그리고 주위의 석조 건물을 빨아들인다.

짙은 청색의 하늘이 쏟아지는 밤의 광장은 우주에 떠다니는 나만의 세계가 된다.

광장의 한편에 한 노인이 클래식 기타를 연주하고 있다. 솜씨가 예사롭지 않아 케이스에 동전을 넣어 주니 갑자기 아리랑을 연주한다.


“당신이었군요. 위에서 아리랑을 연주하는 소리를 들었어요”

연주자의 옆에는 자신의 음반 CD가 여러 장 놓여 있다. 음반을 발매한 것인지, 개인적으로 데모 CD를 만든 것인지 알 수는 없지만 연주 실력이 대단하다.

$2짜리 동전을 가지고 다니며 마음에 드는 버스킹 음악가를 보면 돈을 넣어 주곤 한다. 아리랑을 연주할 줄 알았으면 더 줄 걸 그랬다.

무슨 악기로 연주해도 언제나 구슬프게 들리는 아리랑의 선율이 루아얄 광장을 울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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