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irmont Le Château Frontenac 도깨비 호텔
Central Train Station 몬트리올 중앙역에서 VIA Rail을 타고 퀘벡 시티로 간다. 퀘벡 시티까지는 3시간 15분 정도 걸린다.
기차표는 한 달 전에 미리 예매해 두었다. 시간마다 기차의 가격이 다른데 사람이 많이 이용하는 오전 11시부터 오후 3시까지는 아침이나 저녁 시간에 비해 2배 비싸다.
역에 짐을 맡아 주는 곳이 있어 짐을 맡기고, 점심을 먹은 후 여유롭게 로랑 거리를 산책하다가 기차에서 먹을 도시락을 사서 오후 4시 30분 행 기차를 탄다.
퀘벡행 기차의 번호가 쓰인 게이트 앞에 줄 서 있다가 시간이 되어 문이 열리면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지하로 내려가 기차를 탄다. 시간이 다 되어 가는데도 문을 안 열어주어 마음이 조급한 건 우리뿐인지 다들 느긋하게 줄 서 있다.
도시락을 먹고 잠을 청해 보지만 잦은 기차의 경적 때문에 잘 수가 없다. 기차는 퀘벡의 작은 마을과 시골 구간을 통과할 때마다 경적을 울려 보행자와 동물들에게 가까이 오지 말라고, 부딪치면 아플 거라고 경고를 날린다.
유럽의 성처럼 생긴 Gare du Palais 퀘벡 시티 중앙역에 내리면서부터 몬트리올보다 훨씬 진한 프랑스의 향기를 맡을 수 있다.
에어비앤비 호스트로부터 불어로 메시지를 받기 시작한다. 주요한 입실과 주차 방법을 빼고는 모두 불어로 보낸다. 메시지를 받을 때마다 번역기를 돌려야 한다.
근처의 마트에서 큰 물병을 찾을 수가 없어 직원에게 물어보자, 불어로 말하다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있는 내 얼굴을 보더니 영어로 더듬더듬 대답한다.
몬트리올과는 또 다른 색의 퀘벡 도시이다.
몬트리올보다 아주 살짝 기온이 내려가지만, 아직 햇살은 따뜻하다. 아침을 먹고 천천히 집을 나서 올드 퀘벡 쪽의 언덕을 올라간다.
올드 퀘벡은 퀘벡 시티의 동쪽 편에 있는 세인트 로렌스 강변의 –세인트 로렌스강은 멀리 여기까지 흐르고 있다- 마을이다.
영국이 너무 추워 살 수 없다고 버린 땅에 프랑스가 도시를 세우고 모피 무역으로 돈을 벌기 시작하자 영국이 배가 아파 자꾸 기웃거리고 집적거리기 시작했다. 프랑스가 영국을 견제하기 위해 요새를 세우고 성벽을 쌓기 시작했는데, 4개의 성문이 있는 성벽 안의 도시가 지금의 올드 퀘벡이다.
언덕 위의 Rue D’Youville 드요빌 거리의 오른쪽에는 현대식 호텔들이 가득하고 왼쪽으로 들어와 중세에서 볼 법한 뾰족한 초록 탑이 있는 St. Jean gate 생장 게이트를 지나 성벽 안으로 들어오면 과거로의 시간 여행이 시작된다.
성벽을 따라 언덕으로 올라가면 퀘벡 시티의 다운타운이 발아래 펼쳐진다. 옛날에 농민들과 노동자들이 농사짓고 살았을, 성벽의 바깥 동네이다.
“내가 여기 성에서 살 때 너는 저 밑에서 내 땅에 농사짓고 있었을걸”
“땅 사줘. 농사짓고 여기서 살게”
라고 남편이 진심으로 대답한다.
성벽을 따라 위로 조금 올라가서 두 번째 관문인 St. Louis gate 생 루이 게이트를 지나면 진짜 캐나다 군인들이 주둔하고 있는 Citadelle 시타델 요새가, 영국과 치열하게 전투를 벌이던 Plains of Abraham 아브라함 평원 위에 서 있다.
결국은 영국군의 승리로 퀘벡은 영국령이 되었지만, 프랑스인들의 끝없는 투쟁으로 자치권을 인정받아 프랑스어가 공식 언어로 지정되고 카톨릭을 보존할 수 있게 된다.
평원을 따라 성벽 위를 걸으면 아브라함 언덕이 나오고 맞은편에는 유명한 도깨비 호텔, Fairmont Le Château Frontenac 샤또 프롱트낙이 세인트 로렌스 강변 위에 동화처럼 펼쳐진다.
언덕에는 그 누구의 비석도 없다. 도깨비에서 나온 김 신의 묘도, 900년의 세월을 사는 동안 자신의 곁을 떠났던 가신들 그 누구의 묘도 보이지 않는다. 모두 테크놀로지의 위대한 사기이다.
퀘벡에 오기 전 도깨비를 섭렵한 남편은 열심히 도깨비 속의 김고은과 공유의 흔적을 찾는다.
판타지물을 좋아하지 않는다며 볼 생각도 안 하다가 오기 전 도깨비에 빠져 밤늦게까지 넷플릭스를 틀어 놓고 있더니, 김고은이 저기 보이는 탑에서, 해외 처음 와본다고 여기 단풍국 맞아요?라고 말한다며 도깨비 신부의 대사까지 치고 있다.
“저 탑이 엄청 크게 나오는데 넘 작지 않냐? CG인가? 단풍 구경하다가 캐나다 귀신 만나는 데가 저긴가?”
하며 물어 온다.
10년도 더 된 드라마고 게다가 띄엄띄엄 본 나는 정작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남편만 도깨비 신부를 찾는 건 아닌 것 같다. 몬트리올에서는 볼 수 없던 한국인 관광객들이 저기 깃발을 들고 우르르 몰려온다.
젊은 여자들은 몇 명씩 모여 언덕 위에 자리를 깔고 담요를 뒤집어쓰고 앉는다. 해가 지고 도깨비가 나올 때까지 일어나지 않을 모양이다.
언덕을 내려오면 샤또 프롱트낙 호텔을 둘러싼 Dufferin Terrace 뒤퍼랭 산책로에 많은 사람이 호텔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고 있다. 목재로 된 산책로 오른쪽으로는 세인트 로렌스 강과 건너편의 깎아지른 듯한 절벽 도시, 그리고 구시가지 아랫동네가 한눈에 펼쳐진다.
프롱트낙 호텔은 도깨비가 방영하기 전까지는 그다지 유명한 호텔이 아니었다. 퀘벡 시티에 들러서 샹플랭 거리가 있는 구시가지의 아랫동네만 구경하고 언덕 위에 튀어나온 호텔의 지붕만 보고 떠난 사람들도 많았다.
지금은 사람이 많이 몰리고 도깨비 신부가 부쳤던 엽서를 부치겠다고 호텔 안으로 밀려 들어와 투숙객 아니면 들어가지 못하게 막아버렸다.
호텔 앞의 산책로를 따라 걸으며 세인트 로렌스강에 떠다니는 개인 요트와 정박해 있는 대형 크루즈에서 내리는 사람들을 바라본다. 손을 잡고 다니는 노부부들, 친구들과 삼삼오오 모여 크루즈를 타고 다니며 후한 팁을 주는 관광지의 VIP 손님들이다.
크루즈들이 정박해 있다가 떠나면 올드 퀘벡의 음식점과 거리가 한산해진다.
수공예품을 파는 예쁜 액세서리 샵과 초콜릿이 가득 빠진 쇼콜라 샵, 그리고 Simons 같은 작은 백화점이 있는 Côte de la Fabrique 파브리크 거리의 이탈리아 레스토랑에서 점심을 먹는다.
그런데 주위 테이블에 앉은 사람들이 서로 아는 척을 하고 들어오는 사람들에게 말을 건넨다. 크루즈에서 내린 사람들이다. 옆의 테이블에서도 서로 인사를 하면서 일찍 일어나서 걸어왔다는 둥 잡담을 한다.
오랜 기간 크루즈를 타고 여행 다니면서 뜻밖의 만남도 있을 것이고 때로는 불쾌한 사람도 만날 수 있겠지만, 멈춰 섰다가 다시 길을 떠나는 크루즈처럼 많은 인연을 지나쳐 보내고 각자의 삶으로 돌아갈 것이다.
일상을 살다가 문득 떠오르는 만남에 미소 짓기도 하지만 스쳐 보낸 인연에 후회가 밀려올지도 모른다.
오래전 미국 메디컬 드라마에서 뇌종양에 걸린 여자가 수술을 앞두고 크루즈에서 만난 남자를 기다리는 에피소드를 본 적이 있다.
가족과 의사들은 크루즈에서 잃어버린 신발을 찾아 준 남자와 사랑에 빠져 결혼을 약속했다는 그녀의 이야기를 뇌종양이 만들어낸 망상으로 치부해 버리고 위급한 수술을 서두른다. 그다지 매력적으로 생기지 않은 그녀의 신데렐라 속 왕자님 이야기를 믿는 이는 아무도 없다. 약속 시간이 되어도 오지 않는 그를 기다리며 그녀도 자기가 만든 망상이라고 믿어 버리고 수술대에 올라 영원히 깨지 못할 잠에 빠지고 만다.
그녀를 애도하는 가족과 의사들 앞에 비행기가 연착되어 늦게 도착한, 그녀가 묘사한 그대로의 키 크고 멋있는 남자가 나타나 슬픈 신부의 마지막 손을 잡는다.
올드 포트가 있는 절벽 아래 도시 어디선가 귀에 익은 음악이 희미하게 울리고 있다. 아리랑의 선율을 따라 구시가지의 비탈길을 내려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