몬트리올의 마지막 밤
Café Apotek 아포텍 카페의 단골이 되자마자 이제 집으로 돌아갈 시간이다.
퀘벡에 폭 빠졌는지 회사에 출근하기 싫어서 그런지, 남편은 한국 가기 싫다며 침대 기둥이라도 붙잡을 기세이다.
마지막으로 Observatoire de la Capitale 도시 전망대에서 퀘벡 시티를 굽어 보고 나의 최애 스팟인 루아얄 광장과 남편의 도깨비 궁전을 둘러본다.
궁전 옆의 Parc des Gouverneurs 작은 공원에 있는 단풍나무 사이에서 남편은 도깨비 신부에 또 빙의된다.
“여기서 캐나다 귀신하고 대화하잖아”
새초롬하게 옷을 갈아입을까 말까 하는 단풍들을 보며 남편이 일주일만 늦게 올 걸 하고 아쉬워한다.
“한국 단풍도 이뻐. 설악산 가서 보자”
라고 말하기는 하지만 아브라함 언덕에서 처절한 핏빛으로 물드는 단풍국의 절경을 내려다보면 멋있을 것 같기는 하다. 날씨가 더워지면서 예전과 다른 들쑥날쑥한 단풍을 보여 주는 밍밍한 한국의 가을이 아쉬워진다.
몬트리올로 돌아오는 기차에서 제대로 보지 못한 알록달록한 단풍을 본다. 푸른 평원과 강을 따라 멀리 휙휙 지나가는 단풍 숲이 몬트리올에 가까워지면서 상한 브로콜리처럼 드문드문 색이 바뀌더니 다시 싱그러운 초목으로 변한다.
추운 퀘벡은 지구 온난화의 최고 수혜국이다. 날씨가 따뜻해지고 여름이 길어지면서 단풍도 늦게 찾아오고 한겨울의 칼바람도 예전만큼 위용을 보여 주지 못한다.
몬트리올의 마지막 숙소는 RozenH Hotel이라는 차이나타운에 있는 숙소이다. 올드 몬트리올과 가까워 마지막으로 야경이나 봐야겠다고 잡은 숙소인데 최악이다.
내가 예약한 것은 침실이 딸린 1 separate bedroom이었는데 그냥 스튜디오다. 긴 방에 침대와 소파 부엌이 한 공간에 자리한다. 분리된 방이라는 의미가 옆에 있는 거실 소파와 30cm 떨어져 있다는 건지 아니면 분리됨의 의미를 모르는 척 사이트에 올려 둔 건지 알 수가 없다.
게다가 화장실 옆의 옷장은 열리지도 않는다. 힘을 주어 손잡이를 열다가 손이 까져버린다.
호스트에게 방을 바꿔 달라고 메시지를 보내고 사진도 찍어 두고 예약한 방의 설명도 스크린 카피를 떠 둔다. 남편은 이틀 밤인데 기분 상하지 말자며 열심히 텍스트 보내는 나에게 신경 쓰지 말자고 하지만 그럴 수는 없다. 또다시 사람들이 나처럼 속게 하고 싶지 않다.
차이나타운에 있는 덤블링 집에서 쫄깃한 피에 쌓인 만두를 먹고 올드 몬트리올의 야경을 보러 간다.
퀘벡 시티의 오래된 역사의 향기에 흠뻑 취해서 그런지 올드 몬트리올의 거리가 스튜디오에 설치된 오픈세트처럼 보인다. 역사의 냄새도 희미하고 관광객들이 식사하는 레스토랑의 불빛만 가득한 먹자골목처럼 느껴진다. 퀘벡 시티를 나중에 가기 잘한 듯하다. 몬트리올을 나중에 봤으면 감흥이 반으로 줄었을 것 같다.
처음 왔을 때보다 부쩍 줄어든 관광객과 추워진 날씨에 상점들이 일찍 문을 닫았는지 한산한 올드 포트에는 관람차만 차가운 강에 덩그러니 빠져 있다.
아침부터 운동하고 들어 온 남편이 안개가 껴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며 땀에 절어 들어온다. 순간 호스트에게 메시지가 온다. 단수가 될 예정인데 정확한 시간은 모르겠다고 한다.
남편이 급하게 화장실로 가 샤워를 한다.
“F***!!!”
머리에 거품을 묻힌 채 나온다. 생수를 건네주고 대충 머리만 헹구라고 한다. 다행히 몸에는 비누칠하기 직전이었다고 한다.
밖에서 시끄러운 소리가 나서 보니 상수도를 파고 있다.
남편의 욕이 시작된다.
“저 정도 공사면 주민들에게 미리 알렸을 거야. 갑자기 알리고 어쩌라는 거야. 내일 아침 이랬으면 이 상태로 비행기 타라고? 개***!!!”
“이제 같이 욕해도 돼? 어젯밤에 스크린 카피를 호스트한테 보내는데 계속 안 보내지는 거야. 찾아보니까 booking.com은 텍스트밖에 안 보내진대. 그래서 호스트한테 개인 메일이나 왓츠앱 물어보니까 안 가르쳐 주는 거야. 그래서 booking.com에 신고하려는데 증빙 자료 보내라고 해서 스크린 카피랑 룸 사진 찍어놓은 거 보냈는데 사진 용량이 커서 못 받는데. 다시 용량 줄여서 보내고……”
이렇게 우리의 마지막 날은 씁쓸한 피날레로 장식된다. 뒤돌아보지 말고 떠나라고 진상을 부려 주는 듯하다.
숙소를 이용하고 나면 평점과 리뷰를 남긴다. 평점에 인색하지 않다. 남의 사업장에 불이익을 주고 싶지 않아 숙소에 완전히 만족하지 않아도 호스트가 빠르게 대답하고 친절함을 보이면 별 다섯 개를 주고 좋은 평을 남긴다.
하지만 이번만큼은 참을 수 없다. 별점 테러와 리뷰에 최악의 평을 쓰고 booking.com도 절대 이용하지 않을 거라며 이를 갈고 있는데 booking.com에서 RozenH 측에서 보냈다며 $60 바우처를 보내온다.
다음날 공항에서 평점을 1점으로 깔아버리고 주의하라는 리뷰를 아주 자세히 남긴다.
마지막이라 각자의 시간을 갖기로 한다. 점심을 먹은 후 각자 쇼핑하고 집에서 만나기로 한다. 이른 아침부터 몽로얄 산과 마일 앤드까지 둘러본 남편이 샤워도 못 하고 나와 찝찝한지 대충 둘러보고 집에 들어가려는 듯하다.
언더 그라운드 시티에 들러 이것저것 한국의 가족들에게 줄 선물을 사고 세인트 로랑에서 벽화들을 보고, 로랑 거리 가까이 있는, 벽화가 아름다운 Café Viungo 카페 비웅고에서 퀘벡에서의 마지막 커피를 마신다.
인생의 열 가지 복 가운데 9번째가 건강이고 10번째는 돈이고 11번째가 커피를 마시는 거라며, 9번째와 10번째가 없으면 11번째도 없는 것이라는 글을 읽은 적이 있다. 첫 번째 복이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여행하면서 찍은 사진을 보며 커피를 마시고 여유를 들이켜는, 지금 나의 공간에 인생의 복 아홉 개쯤은 자리하고 있지 않을까 생각하며 나를 에워싼 공간의 따사로움에 취한다.
몬트리올의 마지막 밤이 깊어 가고 환하던 도시의 불빛도 희미해져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