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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i, Nice to meet you

삶은 누구에게나 소설이다 .. 2번째 연재

by 레인송

끼리끼리 통하는 사람들이 한 공간에서 만나 벗이 되기란 쉽지 않은 일인데 그 어려운 일이 N중 2학년 7반에서 일어났다.


중2, 새 학년 첫날이다. 등교를 하니 반 배정을 알리는 종이를 나눠준다. 7반이다. 교실을 찾아가 맨 뒷자리에 앉았다. 아이들이 모든 책상을 차지하자 담임선생님이 입장하셨다. 키가 크고 눈과 입이 크다 못해 돌출되어 있다. 살이 없어서인지 콧잔등의 퍼런 핏줄이 선명하니 꽤 예민하고 병약해 보이는 인상이다. 담임이 아이들 한 명 한 명 호명하면 손을 들고 대답을 한다.

“이름 안 부른 사람?” 앞쪽 한 친구가 손을 든다.

“네 이름 이 뭐야?”

“ 김 도진이요”

“야 인마! 새 학기부터 반도 못 찾아가고! 어서 반 찾아가!”

그 친구는 가방과 신발주머니를 재빨리 챙겨 나갔다. 5분도 지나지 않아 그 친구는 다시 7반 교실 문을 열며 말했다.

“저 7반 맞데요”

담임은 그 친구가 손에 쥔 반배정표를 보더니 확인하려는 듯 교실을 나섰고 잠시 후 다시 돌아왔다.

“야! 7반이라 쓰여 있다고 바로 말했어야지!”

친구 도진이와의 첫 만남이다. 첫날부터 억울한 친구 도진이는 그 후로도 온갖 불운한 사건들을 겪는 재수 꽤나 없는 학창 시절을 보내게 된다.


4교시가 끝난 후 그녀가 다가오더니 묻는다.

“너 듀란듀란 팬이지? 넌 누구 좋아해?”

“존 테일러”

“난, 닉 로즈”

짧은 순간 마주한 그녀의 얼굴이 인상적이다. 콧잔등에 위태롭게 걸터앉은 알이 두터운 안경, 얼굴 중앙 부위에 앉은 주근깨와 입 주변의 버짐과 입술 포진이 눈에 띄었다. 잠시 주춤했지만 그녀의 호탕한 웃음에 경계의 방어벽이 일순간 무너졌다. 일주일간의 자유석 덕분에 그녀와 짝이 되었다. 웃음이 남달리 많고 소리 또한 요란한 탓에 반 분위기를 끌어올리는데 한몫하는 친구였다. 그만큼 눈에 잘 띄는 리스크도 갖고 있다. 호탕하게 웃는다 싶다가도 어느새 꾸벅꾸벅 졸다 안경을 책상에 떨어트리고 말아 옆에서 깜짝깜짝 놀라는 일이 많았다. 그럼에도 그녀가 반에서 1,2,3등을 다투는 우등생임을 알고는 담임뿐 아니라 반 친구 모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그녀와 나는 의기투합해 듀라니즈(듀란듀란의 팬) 포섭에 앞장섰다. 한 명, 두 명 동지들이 추가됐고 5월이 오기도 전에 우리는 6명의 소그룹이 되었다. 온몸이 둥글둥글하고 단단한 서현이는 허리까지 내려오는 긴 머리가 꽤나 안 어울리는 친구였다. 작은 키에도 힘은 장사라 줄다리기 시합 때 맨 앞에서 반을 이끄는 여장부였다. 현경인 늘 눈을 내리 깔고 시크한 표정이 매력적인 친구다. 공부도 1등 반항도 1등이라 담임의 속을 나만큼 긁는 친구였다. 선주는 모범생 그 자체였지만 가끔 누구보다 대범한 똘끼를 부릴 때가 있어 놀란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미선이는 조용한 반항아였다. 우직하고 참한 외모와 달리 부모님이나 선생님에게 맞설 때 놀랄 정도로 공격적이어서 곁에 있던 우리가 간담이 서늘할 지경이었다. 현경이를 제외하면 모두 나와 도진이로 인하여 팝에 입문한 친구들이다.


5월의 짝은 경혜였다. 키가 나만하고 체형도 비슷한 친구였다. 까무잡잡한 피부에는 윤기가 흘러 웃을 때마다 코끝이 반짝하며 광채를 발했다. 예쁘지만 어딘가 촌스런 분위기의 그녀와는 짝이 돼서야 처음 대화를 나누었다. 하루는 노트에 ‘Duran Duran’을 무한 반복해 적고 있는데 그녀가 내 노트에 머리를 가까이 대고는 묻는다.

“두루두 두루두? 그게 뭐야?”

처음 듣는 사 차원적 파닉스에 웃음이 터졌다.

노트에 mother을 적고는 읽어보라고 했다.

“모텔?”

내가 누굴 가르칠 실력은 아니었지만 그녀에게만큼은 해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하튼 이때다 싶어 그녀에게 듀란듀란과 팝의 세계에 대한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그녀의 표정을 보니 더 길게 말할 필요도 없었다. 그날 부로 경혜 또한 듀라니즈가 되었다. 경혜는 가수가 꿈이라고 했다. 음악시간만 되면 그녀의 활약이 돋보였다. 그녀의 활약이 돋보이는 시간이 또 있었었는데 시험 성적이 나오는 날이다. 비열한 담임은 성적이 나올 때마다 두 명의 이름을 호명한다. 꼴찌와 두 번째 꼴찌의 이름이다. 그녀의 이름은 웬만하면 안 불린 적이 없다. 꼴찌든 두 번째 꼴찌든 그녀의 이름이 우렁차게 호명될 때마다 한 번도 풀이 죽어 대답한 적이 없다. 해맑게 대답하며 씩씩하게 성적표를 받으러 나가는 경쾌한 그녀의 뒷모습이 사랑스러웠다. 밝은 표정으로 자신을 향해 걸어오는 경혜를, 담임은 한심한 듯 한쪽 입 꼬리를 바짝 올린 채 웃으며 보고 있었다.


경혜는 노래를 맛 깔 나게 잘했다. 다만 약간의 뽕짝 스타일이 가미된 창법이랄까. 아니나 다를까 그녀의 어머니는 그녀가 가수가 되길 바라며 어릴 때부터 하춘화, 김추자, 김 세레나 같은 가수들의 노래를 연습시켰다고 한다. 그녀에게 당시 탑스타인 ‘마돈나’를 소개하며 바람을 잔뜩 넣었다.


“넌 이제부터 한국의 마돈나가 되는 거야. 내가 매니저 할게. 우린 미국으로 가서 빌보드를 점령하는 거야!”


그때부터 그녀는 마돈나를 꿈꾸기 시작했다. 마돈나가 되려면 마돈나가 누군지는 알아야 하기에 그녀를 데리고 주말마다 명동으로 갔다. 명동의 대형 옷가게 ‘POST CARD'와 'VILLAGE'에서는 여러 대의 TV 화면으로 마돈나의 월드투어 라이브를 하루 종일 틀어주었다. 마돈나의 1986년 월드투어는 그야말로 레전드였다. 꿈의 투어였다. 수십 번을 봐도 소름이 돋을 정도로 전율이 흘렀다. 경혜 역시 마돈나의 공연을 보며 새로운 세상에 눈을 뜨고 그 세상 속으로 깊이 빠져들었다. 우리는 한글로 적힌 팝송 책을 따라 부르며 카세트테이프에 녹음도 하고 춤 연습도 열심히 했다. 무용실에서 틈만 나면 춤을 추는 우리를 보러 학교 아이들이 모여들기도 했고 축제 때마다 우리가 창작한 춤으로 공연도 했다. 그녀와 나는 중학교를 졸업하고 그해 겨울방학에 첫 아르바이트를 했다. 3월부터 악기를 배우기로 했기 때문이다.




어렵사리 구한 아르바이트 업체 사장님이 우리가 너무 어려서 곤란하다며 일하러 올 때 어른스런 복장을 갖추고 오기를 주문하셨다. 경혜와 나는 과감히 펌을 하기로 했다. 긴 머리의 경혜는 펌이 꽤 잘 어울렸다.

내 머리는 가관이었다. 미용실에 있던 아주머니들은 애써 귀엽다는 포장을 해주었지만 결론은 권투선수 '장정구'였다. 한분이 속내를 못 숨기고 "장정구 머리가 됐네"를 뱉어낸 순간 미용실은 웃음바다가 되었다. 뭐, 그다지 외모에 관심이 없을 때라 같이 웃고 말았지만 훗날 장정구 헤어스타일 시절의 사진은 모두 폐기 처분되었다.


상일동의 가방공장에서 우리가 하는 일은 쪽가위로 가방 실밥을 정리하는 일이었다. 본드 냄새와 아저씨들의 담배 연기로 눈앞이 흐릿하고 정신이 혼미해지면 쪽가위 끝이 내 손을 꼬집어댔다. 두 달 일 하고 받은 보수는 삼십만 원이었다. 그것도 한 번에 안 주는 바람에 지옥 같은 공장을 여러 번 찾아가 사장님에게 하소연 끝에 받아냈다.


천호동 사거리 음악학원에서 나는 드럼을, 경혜는 기타 레슨을 등록했다. 학원을 오가는 사람들은 대부분 장발의 남자들이었다. 전설적인 헤비메탈 밴드의 프린트가 가슴을 가득 채운 티셔츠를 입었고 하나같이 발목을 덮는 앵클부츠를 신었다. 그들은 우연이라기엔 모두 마른 체형이었는데 나중에 물어보니 이렇게 답해주었다.

“뚱뚱한 애가 머리 길고 꽉 붙는 바지 입고 가죽 재킷 걸치면 어울리겠어?

납득이 가는 답이었다.

드럼초보는 우선 손목을 이용한 스윙과 스틱 잡는 법, 힘 빼고 스틱 튕기는 연습을 한다. 첫날 내 앞에 놓인 것은 드럼이 아닌 검정 타이어였다. 타이어와 스틱 그리고 손목의 삼위일체를 겨우 성공해 내야만 다음 단계로 간다. 다음은 박자와의 싸움이다.

‘쿵짝 쿵짝, 쿵쿵 짝 쿵쿵 짝, 쿵짝 쿵쿵 짝 쿵짝 쿵쿵 짝..’

쿵과 짝의 무한 조합을 무한 반복 하다 보면 손가락 마디마디에 상처와 물집이 번갈아 오가다 굳은살로 거듭난다. 그렇게 3개월이 지나고서야 대면한 진짜 드럼, 제대로 세팅된 드럼 앞에 앉은 그 기분은 지금 떠올려도 벅차다. 몸속의 모든 피가 심장에서 응집된 후 삽시간에 사방으로 뻗어 나가는 생물학적 경험을 처음 맛보았다. 마음은 레드 제플린의 드러머 ‘존 보넴’처럼 드럼을 갖고 놀 것 같았지만 현실은 다시 타이어 앞에 앉아야 할 정도로 처참했다. 친절한 장발 선생님의 지도아래 하루하루 조금씩 실력이 나아졌고 드디어 첫 합주의 순간을 맞게 되었다. 개인적으로는 오지 오스본의 ‘Goodbye to Romance' 정도는 할 수 있을 거라고 자신했는데 선생님께서 지정해 주신 곡은 '골목길'이었다. 하필 내가 유독 싫어하는 노래라니. 훗날 가수 양 동근 님께서 이 노래를 리메이크했을 때 그 노래가 이렇게 좋은 곡이었구나 싶어 예전 첫 합주 때 건성건성이던 나를 후회했다.




고등학생이 되었다고 해서 공부에 매진하거나 미래에 대해 현실적으로 고민하지는 않았지만 나는 서서히 가수의 꿈으로부터 등을 돌리기 시작했다. 경혜는 그렇지 않았다. 내가 음악학원을 그만두고 학창 생활에 몰입할 동안에도 그녀는 기타와 노래연습에 게으름 피우는 법이 없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기도 전에 카페에서 노래를 부르며 돈벌이를 했고 졸업 이후에는 심야 라이브카페와 작은 행사를 다니며 가수의 길로 천천히 진입했다. 나는 그녀를 진심으로 응원했다. 그녀는 이제라도 내가 함께 하기를 권했지만 전처럼 꿈만 믿고 덤비기에 나는 이미 무모한 것에 뒷걸음치는 평범한 사람이 되어버렸다. 경혜는 그녀의 바람대로 여성 롹밴드도 결성하고 앨범도 내고 TV 출연도 했다. 다시 수년간 침묵하던 그녀는, 마돈나처럼 솔로로 전향해 유명 작곡가와 손잡고 댄스곡을 발표하고 마침내 유명 가수가 되었다. 지금 활동은 뜸 하지만 여전히 가창력 있는 여가수중 한 명으로 회자된다.


누군가의 꿈이 장난처럼 시작했다고 해서 조롱하거니 비웃지 말라.

경혜의 앞날을 고작 명일동 직업훈련원로 귀결 지은 40년 전 N여중 선생님께 고함.


동지들과의 우정은 누군가와는 2년 만에 끝이 나기도 했고 다른 누군가와는 30여 년 지속되었다.

Daydream Believer ... The Monkees

Mr, Blue Sky ... Electric Light Orchestra

Somewhere only now ... Keane

Don't get me Wrong ... The Pretend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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