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삶은 누구에게나 소설이다

'나'를 찾기위해 '나'를 읽다

by 레인송

어느 날, 여든다섯의 엄마가 평소와 달리 격양된 목소리로 말씀하셨다.

“이대로 내 인생이 끝난다고 생각하면 난 진짜 억울해. 억울해 미칠 것 같다니까!”


20여 년 전, 우리 가족은 야반도주하다시피 서울집을 떠났다. 90년대 IMF의 여파로 엄마의 터전인 남대문 시장 역시 타격이 컸고 시장은 살아갈 길을 모색하느라 가파르게 변해갔다. 많은 상인들이 남대문에서 동대문으로 갈아타기 시작했고 엄마 또한 합류하느라 무리한 탓에 결국 파산을 맞게 되었다. 엄마는 환갑을 한 해 앞두고 경제적 사망선고를 받고 말았다. 우리 가족에게 남은 것이라고는 각자도생이라는 말 뿐이었다. 밤잠과 한낮의 생기를 포기하고 일궈낸 엄마의 희생이 한순간에 물거품이 되어버렸다. 엄마 앞에서 감히 공포와 절망감을 드러 낼 수 없었다. 그저 묵묵히 내 안의 두려움을 직시하는 수밖에 없었다. 쉰을 넘긴 지금, 속절없이 사라진 내 삶의 반토막이 억울하고, 보장되지 않은 미래가 불안해 밤잠 설치기 일쑤인데 그 당시 엄마의 마음은 오죽했을까. 엄마는 그 후 지금까지 불면의 밤과 사투를 벌인다. 불면은 병을 부른다.




엄마의 파산은 내 인생에도 큰 변화를 불러왔다. 빚쟁이들이 몰려올까 두려워 회사를 그만두었다. 급히 구한 찌그러진 시골집 방구석에 누워 수개월을 빈둥거렸다. 그리고 삼십만 원을 들고 서울에서의 자취 생활을 시작했다. IMF로 많은 회사가 사라졌다. 부도직전의 회사들이 겨우 버티고 있던 업계는 취업하기도 쉽지 않았고 취직을 했어도 제대로 월급을 주는 회사가 드물었다. 10년 가까이 이곳저곳을 떠돌기 시작했다. 여러 친척집과 회사들, 전공과 무관한 여러 직종을 거치는 시간 동안 크고 작은 생각과 미래에 대한 희망적인 계획은 서서히 사라졌다. 그래야만 버텨졌고 그래야만 현실을 탓하지 않고 살아질 것만 같았다.


어느덧 힘들었던 과거의 시간들은 잊었지만 그 시절의 나를 떠올릴 때면 소름이 돋을 만큼 나 자신이 보기 싫다. 미래의 나 자신을 사랑하지 않았다. 이는 살면서 가장 후회하는 부분이다. 비정한 현실에 맞서 더 망가져 주겠노라며 객기를 부렸었다. 즉흥적인 일을 일삼는 자신을 자랑처럼 떠들며 살았다. 그 시절의 어리석음이 한탄스럽고 한편으로는 가엾다. 결혼을 하고 아이를 키우며 누구보다 좋은 사람이 되고 싶었다.

나를 사랑하고 스스로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한 결심이 늘 그 시절의 내 앞에서 가로막혔다.


수년 전, 나에게 당신은 어떤 사람이냐고 누군가 물었을 때 나는 한참을 눈만 껌벅이다 ‘글쎄요’라는 답을 내놓았다. 1년이면 충분할까, 10년이면 답을 구할 수 있을까? 나는 나를 잊은 걸까, 버린 걸까.

지금 당장 나를 기록하지 않으면 끝끝내 수년 전의 물음에 답할 수 없을 것만 같다.




사람들 모두 저마다의 귀한 서사를 갖고 있다. 드라마의 주인공과 위인들만 드라마틱한 스토리의 인생을 갖고 있는 것은 아니다. 자신의 인생만큼 특별한 이야기는 없다.


예쁜 시절을 떠올렸다. 돌이켜보니 후회 없는 시간은 10대 시절이 마지막이었다. 10대는 어지간하면 엉성했다. 그럼에도 그 시간이 완벽했다고 느낄 만큼 사랑스럽고 그립다. 순수했던 내가 그 안에 있어 좋고, 어리숙한 눈으로 바라본 그 모든 것들이 있어 좋다. 10대의 재기 발랄한 소녀가 여전히 내 세포 마디마디에 남아 지금껏 이어져 내려오고 있음을 느꼈다. 그리고 다시 나를 사랑하기 시작했다. 나의 10대는 여전히 유효하다.


나는 여전히 봄의 들판에서 춤을 추고 있다.


2023년의 가을과 겨울 동안을 10대의 나에게 푹 빠져 지냈다. 처음엔 그지없이 행복했다. 수십 년 전 묻어둔 타임캡슐을 꺼내보듯 설레었다. 끄집어내다 보면 잊혔던 사연들과 이름들이 불쑥 튀어 올랐다. 조그만 기억이 다른 통로를 만들고 전혀 예기치 못한 기억의 방문을 열었다. 최면이라도 걸어 놓은 듯 과거의 영상들이 펜 밖으로 쏟아져 나왔다. 그러다 슬픔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스치듯 지나간 인연이라 여기며 살았던 이름들을 돼 뇌이니 그리움과 후회가 몰려왔다. 예쁜 순간을 함께 나눈 벗이었다. 나는 왜 그들과 헤어졌을까. 밤새 이불속에서 수화기가 뜨겁도록 밀담을 나누던 친구들은 모두 어디로 갔을까.

며칠 밤을 질문들과 씨름했다.

‘나는 어떤 힘에 이끌려 지금의 내가 됐을까’

‘20대의 나는 누가 만들고 30대의 나는 어쩌다 그 모습으로 산 걸까’

‘많은 이름들과 나는 왜 이별한 걸까’


억척 맞게 지켜주지 못해 미안했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과 이별한 이유가 나였을까 두려웠다. 복잡한 감정이 오가는 동안 과거의 춘몽을 한심하다 탓하거나 혹은 애타게 그리워한 것만은 아니다. 그 시절은 지났지만 지금, 한 번 더 씩씩한 한 걸음을 뗄 수 있도록 힘이 되어준다.





엄마에게도 비통한 결말 이전, 봄 햇살처럼 빛나는 당신의 한 때가 있었다. 엄마 역시 나처럼 한탄 섞인 질문을 반복한다. '내가 어쩌다 이렇게 됐는지…' 혼잣말 같은 엄마의 술회에 매번 무반응으로 고개를 돌렸지만

지난주에는 엄마에게 위로대신 엄마의 인생을 기록해 보라는 권유를 했다.

“엄마의 이야기를 써봐.”

“뭐라고 써?”

“그냥 생각나는 것 전부, 어릴 때로 거슬러 올라가서 엄마가 버리지 못했거나 도저히 잊히지 않는 기억들.”

비책은 아닐지도 모르지만 분명 기록 안에서 엄마는 위로받고 자신을 다시 사랑하게 될 것이다. 엄마는 칸이 넓은 노트를 사달라고 부탁하셨다. 비싸지만 고급스러운 양장 커버의 노트를 사드렸다. 엄마에게도 좋았던 때가 있었음을 상기시켜 드리고 싶었다. 누구보다 빛나던 그 시절 속 소녀가 아직 엄마의 가슴속에 남아 여전히 생을 함께 하고 있다고 말해주고 싶었다.


내가 걸어온 삶을 기록하면 글이 되고, 그 안에서 나를 발견한다면 더할 나위 없는 삶의 기회를 획득한 것이다. 나를 포착하고 남기는 일만큼 의미 있는 일이 있을까?

혹시 다시 길을 잃고 헤맬 때 꺼내 읽을 것이다. 나의 이야기는 틀림없이 내 손을 잡고 길을 안내할 것이다.


Reflection of My life …… Marmalade

La La La Song …… Low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