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자기의 곡선

by 지음

물의 도시. 공항에서 도심으로 향하는 방법엔 개인 요트가 선택지에 있었다. 섬의 중심을 관통하는 물길을 돌아 나가듯 부드러운 호를 그리는 배 안에서. 물 위를 달리는 기차를 바라보며, 가장 나다운 선택을 한 것 같아 웃었다. 사방으로 섬을 관통해 나가는 운하들을 따라 다리들을 오르내리고. 버스 대신 대중교통을 담당하는 배를 타고 다니며 찬란했던 해상 시대와. 그 시대의 향수를 담아 만든 게임 속에서 자주 오간 이 도시의 향취를 온몸으로 느끼는 것이 실감이 안났따. 감미롭다.


이 도시의 또 유명한 것 중 하나가 유리와 도자기라, 무라노의 박물관을 향했다. 같은 소재를 다루더라도 감각은 문화와 시대 배경에 따른 취향을 듬뿍 담는 법이라. 나는 그들만의 투명한 색감을 다루는 방식과 색 배합에 놀랐다. 여러 색을 써도 좋았을 거라 생각한 형태. 복잡한 무늬를 품은 호리병은 한 색으로 완성되어 고아한 매력을 뽐냈다. 전통 사탕 공방에서 여러 색의 사탕을 말아서 무늬를 만드는 기법과 같은 방식으로 만들어진 유리 장식들은 그 반짝임이 깊어 더 달아 보였다. 지인들의 선물로 몇 개를 구매해 나눠 주었는데, 하나쯤 내 것도 살 것을... 하는 마음이 지금에 괜히 든다. 그 기억을 위해 실물이 아닌 사진을 찾아보는 슬픔이라니...


재미있는 것은, 이후의 나의 기억의 왜곡이다. 도자기와 유리를 보기 위해 박물관을 간 것은 이 때가 유일 해서. 나는 이후에 여행을 다니며 보았던 수 많은 도자기들을 다 이곳에서 봤던 것이라는 착각을 하곤 한다. 무라노의 강한 인상 때문인지, 모든 아름다움을 물의 도시 베네치아 안에 장식해 놓고 싶은 아집 때문인지. 아직도 잘 모르겠지만. 그러니까 연분홍 꽃 무늬 원피스를 입고, 옆자리에서 누군가를 기다리는 듯한 소녀가 소파에 점점 늘어지고 있는 모습을 봤을 때. 난 또 무라노의 박물관을 떠올리고 있었다. 서양적 도자기의 질감은 모두 그곳에 있어야 한다는 듯이.


하얀 색에 파란 무늬가 흐리게, 그러나 고아하게 그려져 있었던 것은 분명 러시아의 전통 무늬 였다고 했었나. 영국의 어느 지방이라 했었나. 확실한 것은 분홍색의 작은 꽃들이 무늬를 직조하듯 반복되어 새겨져 있는 도자기는 영국의 어느 마을. 도자기 공장을 지나다가 본 것이 확실하다. 상관 있나. 저 하얀 피부의 소녀를 영국의 시골 마을로 초대 하는 것 보다는 베네치아의 푸른 물결이 있는 아름다운 다리 위에서 마주 하는 게 더 나아 보이는 걸. 점점 미끄러져 내려가는 소녀의 몸. 남친을 기다리는 것이라 생각하게 만드는 완벽한 메이크업. 그러다 방심한 틈을 타 튀어나온 뱃살이 도자기 같은 유려한 곡선을 그렸다. 하필 또 그 방향이 나에겐 정면이라 딱히 눈 돌리기도 어려운. 모니터로 바싹 붙어 앉아 얼굴을 파묻는다.


왜, 그 배 나온 모습이 화장한 얼굴 보다 더 아름다워 보였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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