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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y little cabinet Apr 30. 2023

8. 살아 돌아와 다행이야

여행

유학생 시절.

배낭여행을 많이 다녔다.

그 시절만 해도

땡처리 비행기 티켓을

10만 원 이내로

바다 건너 유럽으로의 여행이 가능했다.

신랑과, 친구들과, 때로는 혼자 훌쩍 여행을 다녔다.

지금 생각하면 살아 돌아온 게 다행

무식하고 용감한 여행이었다.


한 번은 바젤, 브뢰, 다보스, 쿠어, 루체른 등등

건축투어 여행을 다녀왔다.

스위스의 살인적인 물가

숙소와 식사만으로도 부담이 됐다.

최대한 아끼고 아껴 다녔다.

싸고 싼 숙소로만 찾아다녔다.


그날은 도시를 이동하는 날이었다.

숙소에서 짐을 빼 둘러매고

다음 숙소로 이동하는 그런 날.


대중교통을 이용했다.

둘러가는 동네 버스를 타고

구불구불 어둑어둑한 길을 달렸다.


지금처럼 편리한 어플이 많지 않아

구글지도지해 길을 찾았다.

용감했다.  


해가 지고 버스 밖 세상은 아주 많이 어두웠다.

정류장에서 내 보니

어둠 가운데에 갈대밭만 보였다.

도로도 없고 보행로도 없다.

저 멀리 동그랗게 떠있는 보름달을 가로등 삼아

걷고 또 걸었다.

쥐도 새도 모르게 누가 잡아가도 모를 일이었다.


숙소에 도착해 보니

설현장에서 일하시는 분들이 모여 

맥주를 마시며 하루의 피로를 풀고 계셨다.

어둠 속에서 슬금슬금 걸어 들어오는 우리를

신기하단 눈으로 쳐다봤다.


체크인을 하고 들어가 보니

방안에침대 하나,

침대 옆에 간이 샤워기가 붙어있는

희한한 구조의 방이었다.

건축 현장에 일하시는 분들을 위해

임시로 마련된 공동 숙소 였다.

거길 굳이 굳이 찾아 들어간 우리였다.


하룻밤이었으니 다행이었고,

피로가 무서움을 이줘 다행이었다.

자고 일어나 샤워만 하고 서둘러 그곳을 떠났다.


스위스에서 차를 빌려 프랑스 국경을 넘었다.

같이 사는 분이 굳이 굳이 봐야겠다셔서.

르코르뷔지에의 롱샹 성당을 찾아다.


책에서만 봤지

그놈에 롱샹 성당이 뭐라고

내게는 그저 허허벌판 위에 서있는

모양이 좀 특이한 성당이었달까.


둘러보고 나와 차에 시동을 걸고 보니

주유등이 켜진다.

가까운 주유소를 찾았다.

외진 곳이라 인터넷이 잡히지 않았다.

불어로 써져 있는 휘발유와 경유를 구분할 수가 없다.


주유소 안에 있는 편의점에 들러 영어로 물으니

알 수 없는 불어만이 답으로 돌아다.

우리는 운에 맡기기로 하고

2개 중에 하나를 선택해

주유등이 꺼질 만큼만 주유를 했다.

지금 다시 생각해도 미친 짓이었다.


사건은 여기에서 끝나지 않았다.

프랑스로 넘어갈 때는 보이지 않았던

톨게이트를 마주했다.

당연히 신용카드가 되겠지 생각하고

톨게이트진입했다.

그런데 카드를 받지 않는다.


직원은 프랑스 어로 뭐라 뭐라 말을 한다.

알아들을 수가 없다.

우리 수중에는 스위스 프랑만 있다.

우리도 영어로 말을 해 본다.

'프랑만 있어요. 카드는 안 돼요?' 

그랬더니 직원이 큰소리로 화를 내며

프랑스어로 뭐라 뭐라 한다.

인터넷도 안 되고,

카드도 안 되고,

현금도 없고,

뒤에서 차는 빵빵 거린다.

식은땀이 줄줄줄 정신이 나갔다.


직원은 한참을 화를 내더니

손에 들린 프랑 한 장을 뺏어든.

그리고는 유로를 거슬러 준다.

나중에 숙소에 돌아와 계산해 보니

한 8만 원쯤을 뜯겼다.


이놈에 시골 깡촌 프랑스 마을 내가 다시는 가나 봐라!

난 프랑스랑은 좀 잘 안 맞는 것 같다.(개취입니다.)


운전하다 시동을 꺼트려 사고 날 뻔한 이야기.

집시들 거주촌을 지나 로마로 갔던 이야기.

깜깜한 시골길에서 차선 반대로 달리다

운명할 뻔 한 이야기 등등

할 이야기가 많지만.


오늘은 여기까지 하기로.   

아직 살아있음에 감사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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