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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정수 Nov 16. 2023

아무것도 바라지 말아라

요구하되 바라지 않기!


타인에게 그 무엇도 바라지 말아라!    

 

그 누구에게도,

그 무엇에 대해서도,

결코 아무것도 바라지 말고,

그냥 네 의지대로 꾸려 나가라.

도움을 못 받아도 전혀 상관없게 하여라.

그 누구에게도 의지하려 하지 말고,

혼자서도 우뚝하게 하여라.      

    

그 누구도

전혀 예기치 못할

풍파에 시달리지 말아라.

변덕스럽기만 한 타인의 마음에도,

결코 시달리지 말고 나아가라.

오직 스스로 멋지게 꾸려서

멋진 생을 완성하여라.   

  

바라지 말아라.

심지어는, 자식에게도

부모나 형제에게도 바라지 말아라.

그냥 관계와 존재 그 자체를 귀히 여기고,

당신이 도와주는 것으로 끝내어라.

도움은 감사하지만, 결코

바라지는 말아라. 

    


“아무것도 바라지 말아라!”(그림; medium.com/estiem)


         

  우리는 세상을 살아가며, 점점 타인에게 바라는 것도 많이 생기게 되고, 원하는 것도 많아질 수 있다.

  그러다 보면, 때로 실망으로, 때로 큰 배신감으로 자기 심정을 토로하고 싶거나, 어디에 가서 크게 하소연이라도 좀 해보고 싶을 만큼 큰 절망감에 휩싸이기도 한다.

  그러나, 세상살이가 그렇게 호락호락하지가 않아서, 여러 어려움에 맞닥뜨리게 되면, 자기도 모르게 많은 부분에서 타인의 도움을 간절히 받고 싶어 하고, 가까운 사람들에게는 더욱 많이 의지하고 싶어 지게 되기도 한다.   

    

  그런데, 이렇게 누군가에게 의지하고픈 마음을 가진다는 것은 타인에게 자기 삶의 주도권을 내어주는 꼴이 될 수 있다는 아주 큰 단점을 지니고 있다고 하겠다.

  즉, 타인의 도움을 전혀 못 받을 경우와 조금만 받을 수 있는 경우, 혹은 아주 많이 받을 수 있는 경우 각각에 따라서, 자기 행동이 너무나도 많이 달라져야 하기 때문에, 앞으로 전개될 자기 운명을 자기 마음대로 결정하지 못하게 될 경우가 많을 수 있다.     


  다시 말해, 자기 삶의 이니시어티브를 남에게 넘겨주는 결과를 초래할 가능성이 매우 커져서, 늘 상대의 눈치를 보아가며 살아야 할 수 있고, 때로 여러 부탁을 늘어놓아야 하고, 때로는 싫지만, 많은 설명을 곁들여야 하기도 한다.

  그 과정에서, 가끔 그 부탁의 말이나 표현이 지나쳐서 상대에게 오해나 반감을 살 수도 있고, 서로 간의 관계에 무엇인가가 어긋나 가는 파열음이 점차 커질 수도 있다. 

  상황이 이러하다 보니, 늘 ‘자기 불만족 상태’ 혹은 ‘주변과의 마찰 상태’로 살아가게 되는 꼴이 되기가 매우 쉬운 것이겠다.     


  그러면 자기 생에서, 설령 여러 어려움에 처하더라도, 어떻게 하면 과연, 이러한 자기 불만족 상태나 주변과 다소 간의 마찰 상태를 원천적으로 막아낼 수 있을까?

  아마 그것은, 오로지 처음부터 아예 ‘바라지 않는 마음’을 지니도록 노력하는 것이 유일한 방법일 수 있다.

  즉, 늘 이런 마음(그 누구에게도,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 마음)만 잘 지닐 수 있다면, 당연하고도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물론 살다 보면, 누구나 남에게 어떤 필요한 요청을 할 수도 있고, 부탁도 할 수 있는 상황이 발생한다.

  그러나, 여기에 자기 주된 마음(자기 정체성이나 자기 인생 본연의 가치에 관한 마음가짐)을 뺏기지는 말아야 한다는 점이 중요하다.

  즉 필요시, 상대에게 적극적으로 설명하여 도움도 요청하고, 때로 간청을 할 때도 있을 수는 있겠다.

  이럴 경우, 만약 상대가 당신의 말을 들어주지 않게 되더라도 절대 서운하게 생각하지 않을 정도로, 그럴 수도 있다는 식으로 쿨하게 받아들일 수 있을 정도로, 아예 처음부터 상대에게 의지하려는 마음 자체를 갖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려면, 혹여 자기 부탁이 상대에게 잘 먹히지 않을 경우를 감안하여, 다소 보수적으로 자기 계획을 세워두고, 또 여러 시나리오별로 자신만의 대책도 잘 마련해 두려는 자세가 필요할 것이고, 무엇보다 상대의 거부마저도 이쁘게 보아주고, 그 처지를 너그럽게 헤아려 주려는 넓은 배려심이 항상 바탕에 깔려 있으면, 참으로 좋겠다.


  그럼, 다소 외로울 수 있는 이러한 길(결코 아무것도 바라지 않으려는 마음)을 어떻게 하면 잘 완성해 나갈 수 있을까?    

 

  첫째, 네 마음의 영웅을 만들지 말아라.

   

  아니, 꼭 필요하다면 만들기는 하되, 당신의 주된 마음에 지장을 주지 않을 정도의 선을 꼭 지켜 나가라.  

   

  우리는 누구나 자기 생의 여러 분야에서 ‘마음의 영웅’을 만들고 싶어지고, 또 실제 그렇게 하는 경우도 충분히 있을 수 있다.

  청춘들은 스타 연예인들을 지나치게 추종하고 흠모하는 경우가 많으며, 문화·예술·스포츠·취미 등 여러 분야의 마니아들은 그들만의 영웅이나 프로 선수들을 추종하여 관련 단체 활동에 심취하기도 하고, 또 정치에 관심이 아주 많은 사람들 중 많은 이들이 자신들의 정치적 영웅(지도자)에 환호하며, 그들의 진영논리에 이리저리 끌려다니기도 할 수 있다. 이 모두가 가능하고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다.                   


“정치적 영웅들의 진영논리 추종!”(그림;.newyorker.com/magazine)



  물론, 자기도 자신의 영웅처럼 살아가고 싶고, 설령 그렇지는 못하더라도, 그 영웅을 흠모하여 ‘대리만족’이라도 느끼고 싶은 심정이 생기는 것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일이다.

  그러나 사실, 세상에 진정한 영웅이 될 만한 자격이 있는 자는 거의 없다고 보면 된다.

  그것은 아마도 신의 영역일 것이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이렇게 너무 ‘마음의 영웅’에 심취하다 보면, 자기 삶의 주도권을 온통 그들에게 넘겨줄 수 있다.

  즉, 이러한 ‘자기 마음의 영웅 만들기’에 너무 얽매이다 보면, 자기 삶이 그들의 삶에 종속되고, 피폐해질 수도 있으며, 또 좀처럼 거기에서 빠져나오기 어려울 수도 있다는 점에 주목해 볼 필요가 있다.     


  만약 마음의 영웅이 침울하면 자기도 침울해지기 쉽고, 마음의 영웅이 사회적으로 타락하기라도 하게 되면, 자신은 심각한 충격에 휩싸이게 되기도 한다.

  이렇듯, 자기를 둘러싼 여러 상황과 분위기 자체가 자기 마음의 영웅으로의 얽매임, 부자유, 종속 그 자체로 되어버리기 쉽다고 하겠다.

  여기에다, 자기 마음의 영웅 만들기에 자신의 소중한 시간을 너무 많이 뺏길 수 있고, 그나마 그 영웅이 잘 나가는 시기라면 기쁨으로 하루하루를 보내겠지만, 자칫 마음의 영웅들이 잘 못 나가는 시기를 맞닥뜨리게 되면, 몇 날 며칠을 아주 시무룩하게 보내야 할 수도 있고, 때로 심한 허무감 내지는 우울감에 빠지게 될 수도 있다.   

  

  혹자는, 이렇게 ‘마음의 영웅 만들기’ 조차도 하지 말라고 하면, 과연 자기 인생을 무슨 재미로 살겠느냐고 반문을 할 수도 있겠지만, 마음의 영웅 만들기 자체는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겠지만, 중요한 것은 여기에 자기 삶의 주도권을 너무 내어주게 되면, 자기 주된 삶의 경로상에 큰 장애물을 만들어 낼 수가 있어서, 결코 그렇게 해서는 좋지 못하다는 점을 잊으면 안 되겠다.     


  즉, 마음의 영웅 만들기에도 항상 지나침이 없도록 자제심을 발휘하면서 즐겨야 할 것이며, 특히, 자기 본연의 주된 삶의 방향을 추동력 있게 주도를 하면서, 취미 정도의 수준으로 즐겨야 좋다는 것이며, 결코 주객이 전도되어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가장 바람직하게는, 당신 마음의 영웅에 대해서, 그게 구체적으로 무엇이든 간에, 항상 잠시잠시 꺼내어 즐기고서, 다음에 다시 꺼내어 즐기는 한이 있더라도, 일단은 바로 끝내어라.

  혹여 계속 끌려다니거나 당신의 마음을 쉽게 뺏기게 되면 매우 곤란할 수 있겠다.

  그래야만, 당신이 스스로 만든 ‘마음의 영웅’의 굴레에서 벗어나, 스스로가 자기 인생의 영웅이 될 수 있는 자격이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또한, 자기 이웃이나 회사, 주변 등에 대단하고 매우 잘난 사람들을 인맥으로 두고 싶어 하는 마음도 이러한 ‘마음의 영웅’ 만들기와 다소 유사한 맥락을 지니고 있다고 하겠다.

  이 또한, 눈치 보기, 무작정 따라 하기, 마음의 거품 등의 많은 부작용을 낳기 쉬우며, 자기 마음에 많은 혼란을 가져올 수도 있고, 결코 일관성과 평정심을 유지해 나가기가 매우 어렵게 할 것이고, 더욱이 이러한 행동은 자기 마음의 허영으로부터 출발한 것이라고 할 수 있으니 만큼, 더욱더 경계를 해야 하겠다.     


  둘째, 매사 합리성에 기반하되, 결코 감성을 잃지 말아라.     


  우리는 대부분 일의 판단에서, 일단은 이성적인 합리성에 기반하여 정확히 판단하는 것이 좋다고 볼 수 있다.

  그렇게 하여야, 무엇이든 대충대충 넘어가지 않고, 정확히 판단하고, 잘못된 것은 제대로 반성하여, 그 대책도 확실히 내어 놓을 수 있을 것이고, 이는 자기 생에서 지속적 발전을 만들어 내는데 상당히 큰 도움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일반적인 대인 관계에서 조차, 너무 이성적 합리성만을 우선적으로 내세우게 되면 이것 또한 제법 큰 문제가 되기 쉽다.

  세상은 이성과 감성의 두 축으로 되어있다고 볼 수 있으니, 결코 그 한 축을 무너뜨리는 잘못을 범하지는 말라는 의미라고 하겠다.

        

  특히, 자기 부탁을 잘 들어주지 않고, 또 자기의 뜻이나 바람과는 정반대 쪽으로 움직이려는 상대에 대해서는 당연히 미운 감정이 많이 들 수 있을 것이고, 이에 이성적 합리성만을 내세워 판단하게 되면, 자칫 상대와의 관계를 너무 사무적이거나, 이해타산적으로 계산하게 될 것이므로, 이유 없는 손해는 절대 보지 않으려는 심리가 아주 강하게 작동될 수 있다.

  그런데, 이는 당신의 가슴속에 내재된 배려심이나 너그러움, 연민 등의 아주 지극한 감성을 심히 위축시킬 수도 있겠다. 

    

  따라서, 무엇이든 대충 넘어가지 않고, 일단은 이성적 합리성을 바탕으로 정확히 판단하되, 반드시 여기에 감성적인 부문을 함께 고려하여야 인간 관계가 더욱 부드럽고 안정감을 가져올 수 있을 것이 아니겠는가?

  이러한 마음은 또한 당신의 모든 인생사를 아주 원만하고 부드럽게 처리할 수 있게 해 주고, 자연스러운 인간적 교감을 만들어 내어, 평생 스트레스를 줄여나가는 데도 많은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며, 당신을 아주 큰 그릇의 인물, 의지하는 인물보다는 의지되는 인물로 만들어 줄 수도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셋째, 장기적이고 거시적인 관점으로 살아라.

     

  이해를 돕기 위해서, 다소 극단적인 상황을 한번 생각해 보자.

  즉, 당신이 나중에 세상을 떠날 때를 한번 상상해 보아라.

  거의 대부분의 경우, 이때쯤이면, 아마 자기에게 엄청난 손해를 끼친 사람에게마저도 다 용서를 해주고 싶은 심정이 들 수 있다. 그것도 참으로 순수한 마음으로 그러한 마음이 생길 수 있다.

  또, 자기가 실수를 한 것이나, 자신이 피해를 준 사람에게는 진심으로 용서를 구하고 싶기도 할 것이 아니겠는가?     


  설령, 이렇게 인생 최후의 순간을 가정하지 않더라도, 우리가 조금만 더 장기적인 관점 및 거시적인 관점으로 세상을 바라보게 되면, 세상 모든 것이 다 용서가 안 될 것이 없을 것이고, 대부분의 상황이 모두 이해가 될 수 없는 경우가 없을 것이다.

  즉 이러한 관점에서는, 상대가 나의 말을 거역하였다고 하더라도, 다 이유가 있을 것이고, 그럴만한 상황이 있었을 수 있다고 이해를 해 줄 수가 있다.

  만약 그렇지 않더라도, 간혹 상대가 밴댕이 속같이 마음이 아주 좁아서 그러했을 수도 있었겠지만, 이 경우에는 상대에게 연민이나 너그러움이 발동하여, 이 또한 문제 삼지 않을 수 있겠다.     


  이러한 여러 못마땅한 상황에서, 당신이 아무리 상대를 욕해보아야, 원망해 보아야 무엇하겠는가?

  차라리 그러한 상대를 이해하여 주고, 맞장구도 쳐주고, 역설적으로 응원의 메시지도 보내주고, 필요시 오히려 격려의 메시지도 보내주게 되면, 마치 “피그말리온 효과(Pygmalion Effect ; 말하는 대로, 간절히 원하는 대로 이루어진다)처럼, 세상사가 다 그렇게 좋은 쪽으로, 선순환의 고리를 따라서 돌아가기 쉬울 것이다. 


  넷째, 삶을 보다 집중하여 지휘하고 완성해 나가라.     


  자기 삶의 지휘자는 분명히 자기 자신임을 아무도 부인하지는 못할 것이다.

  뛰어난 지휘자라면, 단원들이 때로 어떻게 잘못 반응하고, 부적합한 연주를 하거나, 주변에서 심한 잡음이 발생하더라도, 결코 중간에 지휘를 멈추거나, 쉽게 포기하지 않는다.


  오로지 전체 단원들에게 끝까지, 앞으로 전개될 연주의 방향을 잘 알려주려 하는데 초점을 맞추려 할 것이고, 단원들과의 호흡과 하모니 형성 등에만 집중하려 할 것이다.     

  오로지 자기 작품의 주도권은 끝까지 오롯이 자기 스스로 쥐고 있으려 할 것이고, 주변의 어떤 혼란이나 잡음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당차게 끝까지 연주를 잘 완성해 나가려 하는 것이 최고의 지휘자라고 말할 수 있겠다.

  연주 도중의 여러 문제점이나 개선 방향, 추가적인 연습 필요성 등에 대한 토의는 연주가 끝난 후에 차분히 처음부터 다시 이루어질 것이고, 그래서 다음번 공연에서는 더 훌륭한 연주를 해내고, 결국은 과연 자기 인생 최대의 작품을 완성해 나가려 할 것이다.


  이렇게 뛰어난 지휘자가 단원들과 호흡하여 항상 최고의 작품을 위해 나아가려 하듯, 일반 시민들도 항상 자기 삶의 목표 내지는 의미를 잘 찾아내고, 또 그것을 지속적으로 생장시켜 나가는 것이 참으로 뜻깊겠다.

  물론 살다 보면, 도중에 여러 잡음도 있고, 혼선도 생길 수 있고, 때로 마음도 많이 약해질 때가 있겠지만, 그 자기 생의 주도권만은 결코 그 누구에게도 넘겨주는 일이 없어야 하겠다.  

   

  결론적으로 볼 때,

  가장 자유로운 마음은 타인에게 아무것도 바라지 않은 마음일 것이며, 가장 완성된 마음 또한 그 누구에게도, 아무것도 바라지를 않아서, 아주 안정되고, 평화로운 마음이라고 할 수 있겠다.     


  만약 자기 생에서 자신의 고귀한 뜻이나 의지가 타인의 결정이나, 여러 외란에 의해서 자주 흔들려야 한다면, 이 얼마나 안타까운 일인가?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오로지, 처음부터 아예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 마음, 여러 불필요한 변수를 아예 제거해 낸 아주 단순하면서도 안정된 마음으로 살아가서, 자신이 설정한 가치 혹은 그 선택한 길을 어떠한 경우에서 흔들림 없이 추구하고, 또 그것을 끝내 완성해 내겠다는 강한 의지와 자신감을 한번 가져보는 것이 좋을 것 같다.     

  그리고, 이를 위해서는, 어떠한 경우에도 자기 마음의 영웅 만들기에 너무 빠지지 말고, 잘 난 이웃과의 인맥을 한번 맺어보려는 마음의 허영도 버리고서, 또 매사를 합리성에 기반하여 판단하되, 결코 감성을 잃지 않는 균형된 마음을 지니도록 한번 해보아라!

  또, 어떠한 작은 판단에서도, 늘 장기적이고 거시적인 관점으로 바라보아서, 항상 일희일비하지 않고, 모든 것을 크고 대범하게 처리하도록 하는 것이 좋겠다.


  그리고, 무엇보다 타인이나 주변에 막연히 의지하고픈 그러한 작은 마음 대신, 타인의 선택이나 결정 혹은 여러 주위 외란에도 무관하게 자신이 설정한 생의 목표나 앞으로 꼭 걸어야 마땅할 그 길을 한번 제대로 걸어 보려는 큰 마음, 아주 우뚝한 마음을 한번 제대로 장착해 보는 것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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