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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진실된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게 되면, 이 땅에 아무런 지불도 하지 않고 그냥 공짜로 왔다고 하는 아주 원초적인 사실에 기초하여 세상을 바라보게 된다면, 불행이나 고통이라고 부르고 있는 것마저도, 아주 아무것도 아닌, 자그마한 일과성 이벤트에 불과할 것이다.
즉, “이 세상은 당신이 공짜로 얻은 기회!, 아주 부담 없는 기회!”라고 하는 근원적 사실을 잘 감안해 본다면, 아무리 큰 불행과 고통이라고 하더라도, 아주 아무것도 아닐 수 있다.
또한, 현재 당신이 가진 것은, 그것이 아무리 작고 보잘것없는 것이어도, 모든 것이 큰 행운이요, 행복이라는 사실을 잘 인정해야만 한다.
모두들, 대개는 이러한 사실을 잘 알면서도, 잘 인정을 하면서도, 왜 자기에게 찾아든 불행과 고통을 다소 의연하게 대하지 못하는 것일까?
왜 아주 작은 것에서도 감사의 마음을, 행운과 행복의 마음을 열 수 없는 것일까?
그것은 바로, 당신의 ‘욕심(물욕, 권세욕, 허세욕 등)’이 당신 본연의 마음을 가리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니, 이러한 욕심만 잘 걷어내고, 불행과 고통마저도 다소 무덤덤하게 바라보려 하고, 행운과 행복을 있는 그대로 잘 바라보아 주고, 이에 지속해 감사하는 마음을 지닐 수만 있다면, 당신의 삶 전체가 바로 ‘행운과 행복’에 다름 아닐 것이 아니겠는가?
그렇다면, 이러한 ‘욕심’은 또 왜 생기게 되는 것일까?
바로 ‘비교의 심리’ 때문이다.
자기를 남과 자꾸 비교하기 시작하면, 과연 자신이 가진 것보다 타인이 가진 것이 훨씬 더 크게 보이는 것이 인지상정일 것이므로, 시기와 질투가 당연히 솟아나고, 급기야는 그 누구에게도 지지 않으려는 오기가 작동하게 된다.
이러한 상태가 지속되면, 자기 마음은 매우 민감해지고, 어느 아주 작은 것 하나에도 타인에게 이겨 먹으려는 욕심이 발동하게 되며, 이러한 과정에서 많은 심리적 안달, 불안과 걱정거리가 생겨날 것이며, 조바심과 스트레스마저도 점차 커질 수 있다.
이렇게 되어, 결국 당신 생(生)의 행운에 대해 늘 감사하는 마음도, 항상 만족해하는 마음도, 지극히 행복해 할 수 있는 마음도 크게 다치게 할 수 있다.
즉, 남들과 자꾸 비교를 거듭하면서, 자기 내면 속에 어느 작은 것 하나에도 결코 지지 않으려는 아주 ‘욕심스런 마음’을 계속 키워나감으로써, 점차적으로 엄청난 심리적 갈등, 고통, 실망을 야기할 수 있고, 이러한 부질없는 마음이 결국은 자기 스스로에 대한 소모, 자기 파괴 등을 초래할 수 있는 것이겠다.
사실, 가진 게 좀 적어도, 실제로는 아무런 문제가 없겠으나, 남들보다 적으니, 그게 바로 문제라는 것이다.
내가 크게 잘 나지는 못해도 살아가는데 아무런 지장이 없겠으나, 남들이 나보다 더 잘 난 것 같으니 이게 바로 문제라는 것이다.
내가 사회적으로 크게 성공하였든 아니든 간에 살아가는데 별 문제가 없겠으나, 남들과 비교하여 상대적으로 성공하지 못한 것 같으니, 이것이 큰 문제라는 것이다.
내가 고통 혹은 고난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그러한 일도 사실은 별 것이 아닌데도 불구하고, 타인에게는 별로 고통스런 모습이 보이지 않고, 그냥 편안해 보이니, 이게 바로 큰 문제라는 것이다!
그런데 사실, 타인을 잘 살펴보면, 특히 숨겨진 그 내밀한 부분까지 잘 들여다보게 되면, 타인이라고 하여 왜 별 문제가 없겠는가?
이 세상에 완전히 만족해하는 부자가 어디에 있을 것이며, 절대적으로 잘난 사람 또한 어디에 있을 수 있을 것이며, 아무런 고민도 없이 그냥 성공하여 그저 행복하기만 한 사람이 어디에 있을 것이며, 아무런 고통 없이 살아가는 사람 또한 어디에 있을 수 있겠는가?
이 모두가 당신의 심각한 착각이었던 것이다.
이러한 착각이 당신을 심리적으로 아주 심각하게 괴롭히고 있었고, 당신 마음을 마구 갉아먹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니, 절대 쓸데없는 비교나, 그로 인한 열등감 같은 것은, 저 멀리 훌훌 던져 버리고서,
당신은 그냥 당신이어라.
항상 당신이어라.
늘 당신답게 그렇게 살아가기만 하면 된다.
또, 세상 겁날 게 어디에도 없다.
두려워해야 할 이유 또한 그 어디에도 없다.
당신은 완전한 제로 베이스에서, 그것도 알몸으로 시작했으니, 과연 무엇을 잃을까 봐서, 무엇을 뺏길까 봐서 두려워해야 하겠는가?
오직, 타인과의 비교를 과감히 단절하고, 늘 스스로를 찾아내어라.
물론, 인간인 이상, 이러한 단절을 완전히 이루어낼 수는 없다고 하더라도, 타인의 엄청난 모습에 대해서도, 아주 잘난 모습에 대해서도, 그냥 당신 비교불가의 생에 작은 참조 정도로만 생각하여라.
즉, 당신은 이미, 당신 스스로만으로도 대단한 존재이다.
맨 손으로 이 땅에 와서, 그만큼 남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여 선의의 경쟁도 잘해 왔고, 그래도 크고 작은 여러 가지 많은 일들을 이루지 않았던가?
무엇보다, 당신은 그 누구와도 비교할 수 없는 아주 고귀하고 존귀한 존재임을 항상 잊어서는 안 되겠다.
그러니, 당신은 그 누구와도 비교하지 말고서, 스스로의 사명에만 집중하여 보아라.
그 사명을 이 땅에 차츰차츰 더 깊이 새겨 나가 보아라.
거기에만 집중하여도 당신의 시간은 너무나 짧다.
나중에 돌이켜보면, 턱없이 짧고 아쉽기만 할 것이다.
그러니, 오로지 당신만의 사명을 잘 생각해 보고, 기꺼이 거기에 고민과 방황도 해 보고서, 결국 그것을 위한 길에 당신의 진정성을 올인해 보아라.
아무런 비교도, 두려움도 없이, 그냥 용기를 좀 더 내어 힘차게 전진하기만 하면 된다.
여기서, 사명이라는 것은 아주 특별하거나 대단할 필요가 전혀 없겠다.
혹자는 철학이나 종교적인 사명을 이야기할 것이고, 누구는 문화·예술적 사명을 이야기하려 할 것이고, 또 누구는 스포츠적 혹은 봉사적 사명을 주장할 수도 있다.
그런데, 또 다른 사람은 아주 소박한 자기 바람이나 최애를 자기 사명이라고도 말할 수도 있겠다.
모두모두 다 옳다.
아무도 틀리지 않았다.
이 모든 판단이 결국, 아주 주관적일 수밖에 없을 것이고, 너무 그렇게 거창할 필요도 없을 것이니 말이다.
세상에는 오직 자신만의 콩깍지가 있을 것이다.
자기 생을 바라보는 그러한 콩깍지가 그 어딘가에는 분명히 있을 것이다.
잘 생각해 보면, 자기 마음이 꽂히는 그러한 콩깍지가 분명히 보일 것이다.
자기 소중한 사랑을 오롯이 내려놓을 만한 그러한 콩깍지가 언젠가는 확연히 드러날 때가 있을 것이다.
그러한 콩깍지에 주저하지 말고, 한번 올인해 보아라.
진정 그러한 진실되고 집중된 모습으로 한번 살아보아라.
거기에만 집중하여도, 당신의 시간은 너무 부족할 것이다.
사실, 세상 별 것 없다.
“잘나도 한 세상, 못나도 한 세상”이라는 말이 있듯이, 잘나든 못나든, 장기적인 생의 관점에서는, 다 똑같은 한 세상일 것이니, 그냥 편하게 살아 나가라.
아무리 많은 재산을 모아도, 궁극적으로 소유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자식에게 많이 물려주어 보아야, 사실 별 도움이 안 될 가능성도 많이 있다.
또한, 이러한 부(富)는, 온갖 형태의 ‘유산 분쟁’만을 부추길 수 있어서, 재산이 적은 것과 비교하여도, 그리 특별한 장점이 없는 경우가 많다.
금전을 많이 모으면 모을수록 행복해질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은 사실, 아주 부질없는 당신의 ‘비교하려는 심리’와 이로부터 생겨난 욕심과 허영 등으로부터 비롯된 환상이었을 뿐일 것이다.
그러니, 자기 필요한 만큼 열심히 벌어, 벌어낸 범위 내에서 귀하게 잘 쓰면 된다.
옛 속담에 “개같이 벌어 정승같이 쓴다.”라는 말이 있듯이, 버는 것보다는 쓰는 데, 오히려 초점을 잘 맞추어야 한다.
쉽게 벌었든 힘들게 벌었든 간에, 많이 벌었든 적게 벌었든 간에, 그 방법이나 액수보다는, 그 번 돈을 쓸 때, 아주 가치 있게 잘 쓰는 것이 훨씬 더 중요하다는 의미이다.
그러니, 금전을 위해 너무 크게 부담을 가질 필요가 전혀 없다.
그것은, 마치 마약과도 같아서, 벌면 벌수록 더욱 욕심이 생겨나게 하는 강한 중독성을, 자칫 당신의 심리적 타락을 부추길 수 있는 악마성마저 지니고 있다고 볼 수 있겠으니, 절대 그런 위험한 것에 너무 집착할 필요가 전혀 없겠다.
부질없는 욕심이거들랑 모두 모두 던져버리고, 남들과의 비교는 더더욱 하지 말고서, 아주 편하게 살아라.
고귀하고 소중한 생을 지닌 당신은 충분히 그렇게 할 수 있을 것이다.
맨 손으로 출발하여, 남들이 무어라 하더라도, 그동안 많은 것을 일구어낸 자신감과 큰 용기를 지닌 당신은 분명히 그렇게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럼, 이렇게 타인과의 비교도 하지 않고, 그래서 스스로 욕심도 별로 없게 하고서, 오직 자기 사명에 충실할 수 있으려면, 과연 무엇이 필요할까?
사실, 아무것도 필요 없다.
그냥, 그렇게 하고자 하는 끈질긴 진심 하나만 있으면 족하다.
그래도, 여기에 좀 더 도움이 될 만한 자기 생활 준칙을 몇 개 추가해 보자면, 아래와 같다.
첫째, 과시하고픈 심리를 과감히 포기하여라.
자신이 많이 가진 것을, 많이 지닌 것을, 많이 이루어 낸 것을, 오프라인으로든, 온라인드로든, 모바일로든 지나치게 과시하려는 심리에 사로잡히게 되면, 당연히 타인과 비교를 많이 할 수밖에 없고, 특히 모바일 문화가 발달한 요즘에는 거의 실시간으로 그러한 행동을 할 수밖에 없을 것이고, 이렇게 되면, 점차 그 중독성이 가중될 것이니, 자기 심리적 만족이라는 것은 그 어디에도 없다.
오로지, 스스로 중독적 기세로서, 더 자극적인 것, 더 대단한 것, 더욱 훌륭한 것만 찾아다니게 될 수밖에 없게 되고 만다.
그래도 이 정도면 그래도 양호한 편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 일부 사람들에게 이러한 심리가 심해지게 되면, 타인이 가진 것을 빼앗으려 하기도 하고, 타인을 시기하여 무너뜨리려고도 하고, 어떻게든 타인을 해롭게 하여 자신의 이익을 챙기려고 하는 하이에나 같은 침탈적 심리에 사로잡힐 수도 있다.
또한, 이러한 지나친 과시적 욕구는, 그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어쨌든 자기 성품이나 인격을 크게 못나게 만들어버릴 수 있고, 정신 건강마저도 크게 망쳐놓을 수 있다.
그리고 이는 결국, 자기 육체적 건강마저도 덩달아 무너지게 할 수 있겠다.
이렇게 스스로 크게 망가뜨려진 후에는, 나중에 아무리 후회를 해 보아도 소용이 없다.
아마, 그 회복이 도저히 힘들거나, 좀처럼 그 악의 고리에서 빠져나오기가 결코 쉽지 않을 것이다.
점차 그 중독의 고리가 더욱 깊어질 공산이 클 것이니 말이다.
그러니, 이렇게 스스로 과시하려는 심리는, 그것의 몸집이 매우 커지기 이전에, 아예 처음부터 최대한 가지지 않으려 하는 것이 좋다.
물론, 아무런 과시 없이도, 스스로 행복해질 수 있는 자기 생활 패턴을 자기 습관으로 공고히 만들어 내는 것이 가장 좋겠다.
만약 그게 어렵다면, 평소 실시간으로라도, 그러한 마음을 최대한 제어해 내고, 점차 줄여 나가려 해 보는 것이 좋겠다.
물론 사람이 어떻게 그러한 과시하고픈 마음이 전혀 없을 수가 있겠는가?
그렇지만, 그런 것들을 크게 줄여 나가고, 철저히 자기 통제하(under control)에 둘 수 있어야 함이 당신 생의 근원적 숙제가 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세상은 과연, 당신의 과시가 늘 지속될 수 있도록 그리 단조롭지도 않을 것이고, 만만하지는 더욱 않을 것이다.
세상은 당신의 과시로 인해 마구 일그러진 모습을 보고만 있지는 않을 것이고, 당신이 안하무인격으로 자랑을 늘어놓도록 그렇게 호락호락하지는 더더욱 않을 것이다.
오히려, 당신의 그러한 과시는, 조만간 당신 생에 큰 족쇄 내지는 부메랑이 되어 돌아오기도 쉽다.
당신이 세상에 한 번이라도 내뱉은 말이나, 공연히 공표한 것은 그것이 무엇이든 간에, 그 어떠한 성격의 것이든 간에, 다시 주워 담을 수가 없어서, 타인의 좋은 공격거리이자, 당신의 치명적 취약점이 되어버리기 쉽다는 의미이다.
둘째, 자기 내면에 투자를 늘려라.
자기 내면에 대해 투자를 늘린다는 것은 아마, 자기 정신적인 측면에서, 인품과 인격적인 측면에서, 지적 가치적인 측면에서, 세상을 바라보는 개인 문화·철학적인 측면 등에서, 이른바 자기 총체적 가치 측면에서 자기를 크게 살찌우는 길이 되어줄 수 있을 것이다.
우리가 전철 안에서, 버스 안에서, 비행기 안에서, 여러 사람들의 모습이나 행동거지를 잘 보게 되면, 특별히 알려진 인물이나 유명인이 전혀 아니어도, 유난히 후광이 번쩍이고, 얼굴빛과 눈빛이 남달리 환하고 편해 보이는 사람이 분명히 있다.
마치 그윽한 자기 내면 속에서 마구 기운이 넘쳐져 흘러나오는 것처럼 말이다.
독자님들 중에서도, 아직 이런 경험을 해 보지 못한 분이 있다면, 잘 한번 관찰해 보시기를 바란다.
이렇게 후광이 빛나는 사람을 우리가 쉬운 말로 표현하기를,
그 대상이 여성이라면,
“품위 있게 보인다!, 귀티 나게 보인다! 혹은 아주 곱게 늙었다!”라는 등으로 많이 표현하고,
그 대상이 남성이라면,
“멋진 신사다!, 중후한 멋이 있다!, 위엄 있어 보인다! 혹은 카리스마가 있다”라는 등으로 많이 표현하고 있는 것 같다.
물론, 이는, 타고난 부분도 어느 정도 있을 수 있겠으나, 훨씬 더 크게는 자기 삶의 흔적이자 자취일 것이다.
즉, 자기 삶의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자기 생의 깊이가 짙어지면 질수록, 점차 자기 삶의 흔적과 자취가 자기 표정에, 자기 살점에, 자기 전신에 아주 짙게 들러붙을 수밖에 없을 것이 당연하지 않겠는가?
이렇게 하여, 개인의 내적 자산 함양의 정도는 그 사람의 인품, 인격, 외적 모습 등에서도 거의 드러난다고 보면 된다.
무어라 말로, 행동으로 표현하지 않아도 아주 진하게 뿜어져 나온다고 보면 된다.
굳이 ‘관상’이라는 단어를 도입하지 않더라도, 일반인들의 눈에도, 특히 다소 예리한 사람의 눈에는 거의 숨길 수 없다고 보면 된다.
이러한 자기 내적 자산을 크게 키운 사람은, 일반적으로 자기 생의 말년에 즈음하여서도, 결코 민폐를 별로 끼치지 않으며, 비교적 곱게 자기 생을 잘 마무리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이런 사람의 경우, 장례지도사의 말에 따르면, 임종 직후의 모습에서마저도 매우 편안함이 느껴진다고도 한다.
반면에, 이와 반대의 경우, 즉, 자기 내적 자산이 매우 미천한 사람의 경우에는, 자기 말년에 주변인들에게 민폐를 매우 많이 끼치게 되어 안타까움마저도 들게 하며, 그 임종 직후의 모습에서도 매우 찡그린 모습을 하고 있어서, 도무지 누구인지 분간이 안 간다고도 한다.
단, 살아가며, 이러한 자기 내적 자산마저도 남들과 자꾸 비교를 하고자 하면, 절대 좋지 못하다.
그러한 자신의 내적 자산에 대해서도, 그냥 열심히 추구하여, 자기 원하는 바대로 최대한 이루어내려 하고, 그래서 자기 스스로의 만족만 있으면 된다.
그냥, 남들이 무어라 하든 간에, 스스로의 “OK”싸인만 있으면 그만이다.
남들이 이루어낸 그들의 내적 자산에 대해서는 그저 작은 참조로만 생각하면 그만이다.
즉, 아무리 타인의 내적·문화적 자산이 매우 훌륭하더라도, 제아무리 지위가 높더라도, 그러한 것이 당신의 평화스런 마음을 결코 해치게 놓아두어서는 안 되겠다.
당신의 내적 자산은 당산만의 고유하고도, 매우 차별적인 가치를 지닌 것일 것이니 말이다.
그러니, 매우 많은 것을 이루어 낸 사람이나, 세상을 아주 훌륭하게 살아낸 사람이 당신 주변에 있거들랑, 결코 시기하는 마음을 철저히 접고서, 차라리 진심으로 축복을 보내 주어라.
그들은 당신과의 비교 대상이 결코 아니고, 그냥 독자적으로 훌륭한 것이라고 보면 된다.
그 사람은 그 사람 나름대로 훌륭한 것이고, 당신은 당신 나름대로 아주 대단하고 훌륭할 것이니 말이다.
늘 별로 욕심이 없고, 별로 비교하려 들지도 않고서, 오로지 스스로의 가치와 사명에 진심인 당신은, 이미 이 세상에서 비교불가의 훌륭한 존재일 것이니 말이다.
셋째, 심해 깊은 물처럼 흘러가라.
자기 생을 살아가되, 심해 깊은 물처럼 흔들림 없이, 소리 없이 강한 흐름을 만들어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이렇게 되면, 바다 표면의 물처럼 세파에 이리저리 출렁대지도 않고, 이 사람 저 사람에게 이리저리 떠밀려 다니지도 않고, 오직 깊고 줄기찬 흐름으로 꿋꿋하게 자기 의지를 펼 수 있을 것이니 말이다.
비바람이 몰려와도, 눈보라가 세차게 불어와도, 천하의 태풍이 덮쳐 오더라도, 과연 당신의 생(生)이 끄떡없도록 할 수 있을 것이니 말이다.
우리가 생(生)에서, 남의 눈치를 보아 가면서, 마을을 졸여가며, 크고 작은 욕심의 볼모가 되어, 이리저리 헤매게 되는 이유도, 어쩌면, 자기 기준 혹은 자기 철학이 뚜렷하지 못하기 때문이라고도 볼 수 있다.
만약, 자신의 뚜렷한 기준이나 생활상의 확실한 철학과 같은 아주 든든한 버팀목을 갖게 된다면, 자기 생이 남들에게 이리저리 끌려다닐 필요도 없을 것이고, 남들과 이리저리 비교하거나 견주려고도 하지 않을 것이다.
이러한 사람들에게는, 결코 남의 눈치 따위는 안중에도 없을 것이고, 오로지 자기 스스로가 정한 길이 바로 자기 생(生)의 길이 될 뿐일 것이다.
심해 깊은 물처럼, 스스로가 선택한 자기만의 흐름으로, 언제나 흔들림 없는 흐름으로 잘 흘러가기만 하면 될 것이니 말이다.
스스로가 정한 자신만의 길(자기 고유한 가치, 생의 의미 혹은 자기 믿음 등)만 잘 따르면 될 것이니 말이다.
결론적으로,
당신은 그저 당신만의 고유한 생(生)을 살아라.
그 어디에도 비교하지 말고, 그 누구와도 견주지 말고서,
그냥 당신만의 길을 걸어라.
늘 오늘에 만족하고, 지극한 행복의 마음으로 오늘도 내일도 걸어가라!
당신이 이 땅에 온 것만으로도 가히 엄청난 행운일 것이니,
이 땅에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이 우주에서의 기적일 것이니, 항상 모든 것에 만족해하고, 늘 감사해하여라.
이미 당신 주변에 산재한 이러한 원초적 행복을 당신의 행복으로 제대로 인지하고서, 항상 진정으로 받아들여, 진정으로 한번 누려 보아라.
당신의 인정(認定) 혹은 깨침만 제대로 있으면, 가히 가능한 일이다.
항상, 비교불가의 당신 스스로를 때로 응원하고, 때로 위로도 해 보고, 때로 칭찬도 해 보아라.
때로는, 큰 자신감과 용기도 한번 주어 보아라.
당신은 모든 것을 맨 손으로 시작했고, 맨 손으로 이루어 내었으니, 현재 당신이 지닌 것은, 작은 실오라기 하나라도, 모두 모두 당신 스스로가 해낸 것이다.
그게 크든 작든, 당신의 비교불가의 자산일 것이다.
이렇게 이미 가진 게 많고, 이룬 것 또한 적지 않은 당신은, 그 무엇에도, 그 어디에도 결코 부러워하거나 마음을 뺏기지 말고서, 모든 것을 편하고 부드럽게 대하여라.
오직 가득한 자신감으로 대하여라.
오로지 사랑의 마음으로, 인자한 눈빛으로 세상을 대하여라.
절대 자신이 많이 가진 것을, 많이 이루어 낸 것을 마구 과시하려 들지 말아라.
그러한 마음은 당신의 평점심을 마구 깨어버리고, 무한경쟁의 소굴로 몰아넣으며, 결국 타인과 비교하려는 심리가 발동하게 하고, 급기야는 욕심이라는 끔찍한 화근을 불러낼 수 있을 것이니 말이다.
항상 그러한 욕심스런 마음을 잘 제어해 내고,
당신은 그저, 진실로 편안한 길을 택하여라.
과시하지 않아 폼이 좀 나지 않으면 또 어떠한가?
아무런 문제가 없다.
그냥 스스로의 내적 만족이 제일이다.
스스로의 정신적·문화적 만족이 제일이다.
과연, 이러한 길이 가장 길게 갈 것이다.
당신의 종국까지 갈 수 있는 길일 것이다.
그러니, 당신은 당신 생(生)을 잘 즐기면서, 특히 내적 만족을 참으로 즐기면서, 그냥 편안히 사명을 다하여라.
항상 당신 내적 자산에 투자를 집중하고서, 당신만의 사명으로 나아가라.
당신만의 가치를 추구하여라.
당신만의 의지를 이루어 내어라.
당신만의 가치가, 당신만의 의지가 결국 불교불가의 당신 최애가 되게 하여라!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