붕어빵
겨울이면 가장 살고 싶어지는 동네가 있다.
이름부터 든든한 ‘붕세권’.
찬바람이 불면 사람들은
주머니 속에 현금 삼천 원쯤은 품고 다닌다는데,
우리 동네는 그 소박한 로망이 허락되지 않는
무(無) 붕권 지역이다.
퇴근길 동선에 다행히 붕어빵 파는 곳이 있다.
나는 무려 만천 원이나 품고 다니면서도
이번 겨울, 단 한 번도 그 앞에 멈춰 서질 못했다.
혼자 노래방에 가는 건 부끄럽지 않은데,
길거리에서 모락모락 김을 내뿜는 붕어빵을
혼자 먹고 있는 건
내가 생각한 중년 어른의 모습이 아니기 때문이다.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 체면을 혼자 차리느라,
나는 붕어빵을 눈앞에 두고도
매일 모른 척 지나쳐야 했다.
그러다 주방 깊숙이 잠들어 있던
다코야키 기계가 생각났다.
붕어빵이 꼭 붕어빵틀로 만들어져야 하는 건 아니니까.
남편은 확신의 팥붕파,
나는 슈붕파를 조금 더 선호하는 슈팥붕파라
두 종류의 소를 야무지게 준비했다.
다코야키 기계의 동그란 홈마다
팥소와 슈크림을 부지런히 채워 넣는
가내수공업이 시작됐다.
반죽을 붓고, 소를 채운 뒤
다시 반죽을 덮어
타지 않게 끊임없이 굴려야 했다.
지난 몇 달간 먹지 못한 한을 풀기라도 하듯
손을 쉴 새 없이 놀리며
동글동글한 붕어빵을 만들고 또 만들었다.
당분간 생각도 안 날 만큼 먹어치울 심산이었는데,
먹으면 먹을수록
오히려 진짜 붕어빵이 더 간절해졌다.
머리부터 먹을지 꼬리부터 먹을지 고민하는 일,
팥붕과 슈붕 사이에서 괜히 갈등하는 일,
찬바람을 맞으며 차례를 기다리는 일.
그런 건
다코야키 기계로는 만들 수 없었다.
내가 만든 건 제법 맛있는 팥빵이었다.
붕어빵의 계절도 이제 끝물이다.
다코야키 기계로 한풀이를 마쳤으니,
이제는 내 쓸데없는 체면도
조금 내려놓아야 할 것 같다.
퇴근길에 만천 원을 품고 지나치지 말고,
꼬리까지 통통하게 살이 오른
진짜 붕어빵 한 마리를 사 먹는 것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