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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태와 태만 Oct 24. 2022

도구. 그 좁은 문을 지나면 발견하는 생각의 길.(6)

미술에 등장한 물리적 현상과 실험을 통해 증명하려는 미술가들.(1)

 물론 세계전쟁이 미래주의자들 때문에 발생한 것은 아니다. 다만 그렇게 흐르는 것에 힘을 보탰다는 것. 크게 보면 이전의 미술은 항상 사람들의 주변에서 사람들의 요구에 응하는 행태를 보인다. 좋게 말하면 자연스러운 흐름, 나쁘게 말하면 수동적인 흐름에 따른다. 미술을 넓은 범위의 도구라 생각하면 사람들의 필요에 응답하는 것은 자연스럽다. 다만 미술이 도구가 아니라 판단하면 자의적인 개념을 발생하게 한다. 이전의 역사 속에서 미술은 후원자가 필요했고, 이 후원으로 미술가들은 살아남았다. 역으로 말하면 미술은 독립적인 지위를 가진 도구가 아니었다는 것이다. 이전의 당연했던 후원자가 사라진 미술은 후원자를 적극적으로 찾아 나섰다. 사실주의와 인상주의 시대에 도래하여 미술가들은 살아 남기 위해 개별적 관점의 특이성을 가진 미술로 변모시키기 시작한다. 애초에 미술이라는 도구는 필생의 생존 개념에서 한 발짝 떨어져 있다. 미술의 기원 자체가 광범위하게 자의적 해석을 부여할 수 있는 독립적인 학문이라는 개념은 역사를 근거하여 생각하면 어색하다. 역사는 후대의 사람들이 해석하는 것이기 때문에 목적과 필요에 따라 편집이 가능해진다. 잰슨과 곰브리치의 서양 미술사도 그러하다. 조각을 전공한 나는 내가 전공한 이 학문의 기원과 목적은 무엇이고, 어떤 매력에 이끌려 이 학문을 선택했는지 알고 싶었다. 그 고민의 기원에 도달하고 싶어 글을 쓰기 시작한 것이다. 그래서 미술의 시작도 도구중 하나라고 설정하고 도구의 개념을 고민하다 미술이라는 한 도구를 지엽적으로 생각하는 글일 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미술의 범위를 어디에까지 두는 것이 마땅한지 기준의 한계는 매우 개별적인 것이다. 의식 없는 인간을 보호해 왔던 건축을 미술의 범위에 포함시키면 이 학문은 매우 숭고한 성찰이 필요한 학문이다. 또 실용기를 제작했던 도예가와 도기들까지 포함시켜도 그러하다. 의복도 마찬가지이며 장신구들도 그렇다. 이것들은 역사 속의 각 시대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어느 시대에도 필수적으로 존재했던 것이다. 난 이것들을 우선 미술의 범위에서 배제하고 글을 이어 나가려 한다. 즉 얼마 전 아이러니하게 '순수 미술'이라고 독립한 순수하지 않은 복잡 다단한 범위, 물론 고대로부터 현재까지 순수하게 그 목적 그대로 남아 있는 회화와 조각은 없겠지만, 그 속에 있는 회화와 조각의 분야만을 '미술'이라 가정하고 글을 이어가려 한다. 고대 그리스 시대의 후원자는 지금보다 죽음이 익숙한 인간의 불안을 잠식시킬 수 있는 신들이었다. 수렵과 채집 과정에서 일상적으로 맞이하는 죽음. 그 죽음으로부터 자신의 안녕을 보장받고 싶은 마음이 미술로 신을 숭배하게 했다. 초기 제국주의 로마시대는 황제였다. 그 당시 로마의 영토는 온 유럽을 포함해 서아시아의 일부와 아프리카의 일부에 걸쳐 있는 광활한 범위였다. 광활한 영토에 살고 있는 이방인들에게 황제의 존재와 위대함의 표상으로 미술이 활용되었다. 중세 시대는 기독교를 위해 미술이 복무했고 또 핍박받기도 했다. 르네상스 시대에는 성공한 도시 상인이었으며 바로크와 로코코의 시기에는 귀족들이었다. 신고전주의 시대는 비장한 서사와 역사, 낭만주의 시대에는 계몽주의자들이 후원의 역할을 담당한다. 이렇게 미술의 후원자들은 변모한다. 또 그 양태의 흐름을 보면 후원자 집단이 점점 지엽적으로 변하는 것을 인지할 수 있다. 앙시엥 레짐의 해체 시기에 들어서며 미술은 후원자를 잃는다. 긍정적으로 말하면 후원자에게서 자유로워진다. 미술이 독립을 하며 미술가가 얻게 된 이 자유의 대가는 미술이라는 주머니가 터질듯이 온갖 것을 담는 계기가 된다.



 인상주의의 시작을 이해하려면 살롱전(Paris Salon)에서 환영받지 못하던 마네(Edouard Manet)를 주목해야 한다. 마네의 그림은 낭만주의자와 신고전주의자 모두에게 비판 받았다. 낭만주의자들은 마네의 무성의한 옅은 붓질에 의한 부조적 표현을 지적했고, 신고전주의자들은 마네가 선택하는 소재의 역사적 관점의 주요함을 벗어난 천박함을 문제 삼는다. 조금 여유로웠던 경제 환경의 마네는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만의 길을 뚜벅뚜벅 걸었다. 마네의 길은 뚜렷했다. 구체제 이후 달라진 삶의 양상과 풍경이 마네에게는 생경한 풍경이었고, 시대의 흐름에 맞게 이를 생생하게 기록하는 과정이다. 그리고 구체제 속 신음했던 당시의 현대에 어울리는 도상은 무엇인지 실험했다. 또 강력한 자연광의 영향으로 다른 사물에 의해 발생하는 반사광이 대상의 표면에 묻어 대상의 고유색과는 조금 다른 자연광에 의한 밝음을 살려 내고 싶었다. 마네는 조금 간절하게 원하던 살롱 전에서 환영 받지 않았지만, 오히려 동료들은 마네의 관점을 열렬히 지지한다. 마네의 관점은 마네의 앵글에 담긴 인물이 화가를 또렷하게 쳐다보며 그림과 그림을 감상하는 감상자와의 거리를 가깝게 하기를 바랐다. 이전의 미술가들은 상황이나 대상을 물리적으로 기록하는 것처럼 의도했다. 또 기록처럼 보일 수 있게 서사에 집중하거나 상태에 집중할 수 있도록 대상의 외형을 포집하려 했다. 하지만 마네는 상황에 직접적으로 개입하려 한다. 이것은 마네가 목격한 생경한 풍경이 가진 생경함을 적극적으로 드러내고 싶은 욕망을 드러내는 것이다. 그리고 적극적으로 관찰하고 기록하는 그 표현의 과정이 유일한 방법이라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edouard manet olympia 1863 oil on canvas

 https://terms.naver.com/imageDetail.naver?docId=973439&cid=46720&categoryId=46843

 이쯤에서 ‘올랭피아(Olympia)’를 살펴보자. 올랭피아의 인체는 최대한 밝은 색으로, 배경은 최대한 어두운 색으로 구현하며 먼저 올랭피아로 분한 인체에 시선을 집중시킨다. 올랭피아를 바라보는 하녀도 흑인으로 등장시키며 그 피부색을 분화하지 않고 올랭피아의 피부색과 대비시킨다. 즉 같은 공간에 밝음과 어둠을 갈라 밝음의 명도 변화는 밝음쪽으로 치우치게 세분화하고, 어두운 부분의 명도 변화는 어둠쪽으로 몰아 세분화한다. 아카데미에서는 명도의 변화 과정이 한 화면 안에 균일하다고 느껴지도록 배치하기를 바랐다. 하지만 마네의 관점에 의해 이 전통은 파괴당한다. 음악으로 비유하자면 8음계를 골고루 활용하는 것이 아니라 밝은 부분은 도와 레 사이를 세분화한 음의 변화를, 어두운 부분은 시와 높은 도 사이를 세분화 한 음의 변화만으로 활용한다는 의미와 가깝다. 마네의 의도대로 당연하게 올랭피아의 인체를 살피다가 나를 쳐다보는 인물의 시선을 확인하고 화들짝 놀란다. 물감을 두껍게 바르진 않았지만 인체와 배경의 경계는 여러 번의 붓질 자국을 확인할 수 있고, 이를 통해 매우 정교하게 인체의 테두리에 신경 썼음을 알 수 있다. 여전히 형은 마네가 포기하기 어려운 큰 명제임을 반증하는 것이다. 그 시절 마네는 마치 인물이 카메라의 반짝이는 빛(spot light)을 입은 순간처럼 인체의 색을 최소화하였지만 입체의 외곽에는 미묘한 명도 차이의 면을 두어 부족해질 입체감을 예비한다. 그것이 잘 드러나는 부분은 교차된 두 다리의 형태와 그에 의한 면 변화이다. 겹쳐진 두 다리의 앞 뒤 서열이 뒤바뀌는 지점이 그렇다. 인물의 왼 손이 올려진 오른 쪽 골반과 대퇴골의 경계 지점에 올려 놓은 왼 손, 그 오른 쪽 허벅지가 감상자에게 가깝다. 왼 다리가 오른 다리를 타고 올라오다가 무릎을 기점으로 서열이 달라진다. 오른 다리의 대퇴직근이 얇아지는 근육의 특성을 따라 슬개골까지 흐르는 허벅지 윗 면에 비교적 넓은 어두운 면을 배치시켜 계단의 윗면처럼 꺾어 만든다. 그 면은 근육의 형태처럼 점점 얇아지더니 무릎을 만나면서 선적인 얇은 면으로 바뀐다. 무릎에 있던 그 얇은 면은 왼 다리의 아래쪽 비복근을 만나면서 그림자로 변한다. 이 그림자는 오른 다리의 아래쪽 경골면과 만나면서 단호해진다. 그리고 그 위 왼 다리의 비복근과 발뒤꿈치까지의 아랫면에 오른 다리 위쪽에서 보았던 부드러운 어두운 면을 배치한다. 오른 다리의 허벅지 윗면도 어두워지고 왼쪽 다리의 무릎부터는 아래 면도 어두워진다. 거의 정반대를 바라보고 있는 두 면이 비슷한 색을 가진다. 이런 부분은 마네의 관점이 매우 정교하며 치열했다는 증거이다. 우리가 잘 알고 있던 거대한 자연광을 통해 목격하는 상태가 아닌 마네 만의 작위적인 빛이 존재하는 것이다. 마네가 입체를 표현하기 위해 활용했던 어둠은 인체의 각 입체(머리, 목, 겨드랑이, 어깨, 팔 등)가 교차할 때마다 나타났다 사라지기를 반복한다. 마치 대상을 보는 관찰자인 마네의 눈에서 대상을 비추는 빛이 시작되는 것처럼 말이다. 마네는 자신의 눈에서 시작하는 마네만의 ‘빛’을 설정한다. 마네의 강력한 안광(眼光) 때문에 감상자도 마네의 시점으로 그림을 감상하며 몰입하게 된다. 마네만의 적극적인 관찰과 기록으로 대상과 감상자를 더 가깝게 끌어당기려는 그 관점이 그림에 적극적으로 반영된다는 말이다.


 

Un dimanche après-midi à l'Île de la Grande Jatte

  신인상주의를 대표하는 조르주 쇠라(Georges Pierre Seurat)에 대한 얘기로 이어간다. 쇠라는 대상의 본질적인 순수함을 회화에 담을 수 있을지 고민한다. 이 고민의 시작은 인식과 표현의 과정을 세분화하며 사고의 정교함을 더한다. 이 과정은 사물의 연구에서부터 시작한다. 우리가 보는 대상은 대상 그 자체가 아니라 대상에 입혀진 빛의 색을 보는 것이다. 아니 더 정확하게 얘기하자면 빛의 파장 중에서 일부의 파장만 반사한 사물의 환영을 보는 것이다. 화가는 그렇게 얻은 시각정보를 통해 사물을 인식한다. 그리고 인식이 된 사물의 형태를 빛이 사물에게 입혀지거나 반사할 때의 역순으로 형과 색을 표현한다. 사물의 형을 스케치하고 그 위에 빛의 색이 아닌 안료의 색으로 사물의 색을 모방하는 것이다. 빛을 분광하는 실험을 통해 빛(백색광)은 사실 여러 색의 집합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를 통해 빛의 속성은 색이 더해질수록 더 밝아진다는 것을 역으로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예를 들면 빨강과 초록의 빛이 섞이면 노랑(yellow)의 빛이 만들어지고, 초록과 파랑의 빛이 섞이면 하늘색(cyan)의 빛이 만들어지고, 빨강과 파랑의 빛이 섞이면 분홍(magenta)의 빛이 된다. 그리고 언급한 이 모든 색을 섞으면 백색광이 된다. 이로써 빛의 삼원색은 빨강(red), 초록(green), 파랑(blue)이 된다는 관념이 만들어진다. 빛의 삼원색이 저 색들처럼 어두운 명도를 가진 이유는 혼합의 과정에서 백색광이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즉 섞이면 섞일수록 명도가 밝아진다는 것이다. 안료의 색은 빛의 색과 다른 속성을 지닌다. 안료의 색은 섞일수록 더 어두워진다. 그래서 안료의 삼원색은 빛의 삼원색을 혼색하여 얻은 하늘색(cyan), 분홍(magenta), 노랑(yellow)으로 규정한다. 노랑(yellow)만큼 밝은 명도로 나머지 색을 규정한 이유는 섞일수록 어두워지는 안료의 속성 때문이다. 이 안료의 속성에서 저 세 가지의 색만으로 사물의 색을 모방할 수 없기 때문에 무채색이라는 개념이 생긴다. 무채색은 흰색과 검정색 사이의 모든 색을 통칭한다. 즉 빛의 모방, 사물에 입혀진 빛, 사물이 튕겨내는 실재하는 빛에는 애초에 존재하지 않는 관념의 색이 발명된다. 빛은 실존하는 것이며, 빛이 존재하지 않으면 어둠이 되는 것이기 때문에 우리는 대상을 시각적으로 인지할 수 없다. 시각적으로 인식할 수 없는 대상도 화가는 표현해야 했기에 안료의 색에서 채도(빛의 분광에 의해 존재하는 색이 아닌)가 없는 명도만 존재하는 색의 개념을 통해 빛의 존, 부재를 표현한다. 이렇게 발생한 명도의 개념을 통해 빛의 혼합은 점점 더 밝아진다는 의미로 가산 혼합이라 명명한다. 반대로 안료의 혼합은 감산 혼합이 된다. 쇠라는 이 과정이 못마땅했다. 실존하는 빛의 표현을 억지스러운 안료로 표현하는 것. 눈에 보이는 사물에서 반사된 빛의 실존을 무채색의 도움을 받아 표현하는 과정으로 빛의 존재를 모방하는 것이 안타까웠다. 사물을 시각적으로 감각할 수 있게 하며, 이 감각이 인식이 되는 아주 위대한 존재인 빛의 모방에 안료의 속성이 포함된 접근은 온당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동시에 이렇게 표현하는 것은 사물이 가진 고유한 속성의 표현이 아니라 대상의 얇은 껍질을 모방하는 행위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쇠라는 지속적인 실험을 통해 해법을 찾아나간다. 시각정보는 직관에 의해 인식되는 것이기 때문에 인식되기 전 감각 단계의 상태로 표현하고 싶었다. 그것이 대상의 본질적인 속성을 더 잘 드러내는 것이라 믿었다. 쇠라가 생각하는 감각 단계의 사물은 빛이 사물에 도착하고 사물이 반사해내는 빛 덩어리가 출발하는 시점의 상태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반사되는 빛 덩어리를 빛의 삼원색만으로 표현하려 했다. 색점으로 표현한 대상은 이제 형이 중요하지 않다. 쇠라는 대상의 형을 표현한 것이 아니라 대상에서 반사되기 시작한 빛을 표현한 것이기 때문이다. 쇠라의 관점도 미술에서 형을 지워내는 데 혁혁한 공을 세우게 되었고, 이 실험을 굳건하게 반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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