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대혁명이 진행되며 변화의 당위를 내세우기 위해 ‘앙시앙 레짐(ancien régime, 구체제)’의 폐해를 꾸짖기 시작한다. 변화의 소용돌이 속에서 지난 사회의 모든 체제를 바꾸기 위한 반동이 시작되었다. 신분, 정치, 교회, 세금, 입법, 행정, 군대 등의 국가를 존속시키는 데 필요한 여러 체제들의 시대착오적 상태임을 지시하고 이를 정비하려 하였다. 이를 바라보는 주변 국가들, 특히 여전히 합스부르크 가와 밀접한 국가들은 여전히 이 사태들이 눈에 가시였고 못마땅했다. 근대 국가를 지속하려는 자와 현대 국가의 새로움을 지향하려는 자들의 갈등은 결국 세계대전의 도화선이 된다. 여기에 프랑스는 이미 양 발을 새로움이라는 강물에 담갔다. 그리고 이미 구체제를 바꾸려는 시도들을 지속하고 있기에 이 시기의 여러 갈래도 영향을 받는다. 미술가들도 그러했다. 아버지의 반대를 무릅쓰고 대학에서 공부를 그만두고 파리에 입성했지만 미술학교 진학엔 실패한 세잔(PAUL CÉZANNE)의 얘기를 시작하려 한다. 보자르에 입학하지 못한 세잔은 이후 고향으로 돌아가는 것을 애써 외면했다. 아버지의 당연한 비난도 견디기 싫었고, 그에 의한 강요로 자신의 미래를 아버지와 같은 은행가로 사는 것은 더 싫었기 때문이다. 또 이미 파리에 사랑하는 여인도 생겼다. 그 후 세잔은 파리에서 독학을 택했다. 이후 몽마르트의 화가들과 어울리기 시작했다. 이 시기에 세잔은 자신이 진학에 실패한 미술학교도 구체제의 하나라고 생각했다. 세잔은 미술도 새로움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미 구체제를 벗어나려는 시도가 익숙했던 프랑스 경계 안의 화가들에게 세잔의 말은 설득력이 있었다. 그리고 외광파에 크게 영향받은 세잔은 실내의 정물화에도 외광파의 그림과 같은 표현의 특징을 도입하려 한다. 작업실에서 같은 조명 아래 긴 시간의 관찰로 그려진 그림이 있다고 가정하자. 또 자신의 화구를 몽땅 싸 들고 밖으로 나가 동일한 장소, 동일한 날씨, 동일한 상태를 그려야 하는 그림도 있다고 가정하자. 전자는 긴 호흡으로 붓질하며 정교하게 형을 따라 가는데 장점이 있다. 후자는 긴 호흡으로 대상을 표현하는데 필요한 조건을 맞추기에는 변수가 너무 많다. 그러니 순간의 인상과 닮음을 순발력 있게 포착해 찰나의 긴장감이 거칠게 화폭에 담기는 게 장점이다. 세잔의 시대에는 후자가 신 문물이다. 정물화의 긴 표현 과정을 세잔은 회화의 앙시앙 레짐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세잔이 정의한다. 세상의 모든 사물은 기본체로 구성되었다고 말이다. 여기서 기본체라는 것은 자연 상태에서 존재하지 않는 구, 원기둥, 원뿔, 육면체 등 과 같은 형태이다. 이 형태들은 전통적으로 공예가들이 활용하던 양식화된 형태이다. 양식화된 형태라는 것은 이미 자연 상태의 형태가 가진 변화하는 외곽의 꼭지점 개수보다 훨씬 단조롭게 그 수를 줄여 둔 상태를 의미한다. 즉 자연 상태의 회화 속 소재들도 인공물처럼 대하겠다는 의지이다. 이는 현대 회화의 아버지라 불리는 세잔이 20세기 회화라는 열차의 지체를 강요하는 행위인 것 처럼 보인다. 그 지체의 시간 동안 아주 빠르고 넉넉하게 수많은 것들을 회화의 열차 속에 탑승시키기 시작한다. 형이 지워지는 빈 자리를 메우기 위해. 그리고 그것이 당시에는 새로운 것이라 생각하게 만든다. 이는 시대의 흐름에 맞춰 회화에서도 합리와 효율이라는 시대적 가치를 통해 변화를 받아들인다는 의미이다. 회화나 미술이 5~6,000여년 동안 받들었던 긴 시간의 무게를 이렇게 가볍게 만든다는 것을 느끼면 미술전공자로서 조금 무기력해지기도 한다. 이로써 당연하게 형은 단조로워지고 단조로워진 형의 영역을 색이 채워나가는 시대를 예비하게 된다.
‘미래주의 선언문’으로 들여다 본 당시의 사회.
프랑스는, 특히 부르주아가 모여있는 파리는 서구 사회에서 가장 새로움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는 곳이 되었다. 그리고 앙시앙 레짐을 해체하기 위해 많은 것을 강박적으로 계획하고 정비한다. 인상주의 시대, 20세기 초반의 시대 내로라하는 미술가들이 같은 작업실, 같은 지역에서 발생하는 이유는 프랑스가 도시를 이전과 다르게 새롭게 재정비하며 몽마르트르에 예술가들을 가뒀기 때문이다. 프랑스 사회는 여전히 농민들이 대다수였다. 농민들은 매번의 봉기를 통해 별로 얻은 것이 없었고, 대혁명 이후에는 도시의 부루주아들의 생각이 주류가 되었다. 여전히 농업 종사자가 불안했던 프랑스의 사회는 부글거렸고, 프랑스 대혁명의 기간 3,000만 명 정도의 인구 중 2,700만 명이 농민이었다는 통계가 이를 기반한다. 당시 옆 나라였던 영국의 상황은 프랑스와 크게 달랐다. 명예혁명 이후 영국은 농업 생산성에 신경 쓰고 품종 개량에 힘써 농업혁명을 맞이한다. 농업 생산성이 형편없던 과거를 뒤로하고브리튼 섬 지역의 곡물 생산량이 당시 영국 전체 한 해 인구의 2배가 소비할 분량까지 늘어난다. 또 북미, 동아시아 등으로 진출하면서 산업 철도, 증기기관 등의 기술의 발전도 도모한다. 중농주의를 지나 중상주의 정책을 선언하며 급기야 경제적으로 실효를 거둔다. 이는 빈곤한 주변 국가들의 풍요에 대한욕망을 자극하며 그 국가들에게 좋은 본보기라 여겨졌다. 프랑스에서도 앙시앙 레짐에 의한 국가적 빈곤 상태를 타계해야 할 필요가 생겼다. 이 필요는 엄청난 크기의 욕망 덩어리였다. 1909년 프랑스의 일간지인 ‘르 피가로(Le Figaro)’에 ‘마리네티(Filippo Tommaso Emilio Marinetti)’의 미래주의 선언문이 1면에 실린다.
미래주의 선언문 (1909)
우리, 나와 내 친구들은 밤새 깨어있었다. 우리의 영혼처럼, 마치 전기 심장의 유폐된 광휘가 우리의 영혼을 비추는 것처럼 온통 별들로 뒤덮인, 구멍 뚫린 놋쇠 갓을 단 회교사원의 등불 아래서. 논리의 극한에 다다를 때까지 토론하고, 여러 장의 종이를 새까맣게 채워 넣을 때까지, 우리는 오랫동안 부드러운 오리엔트 양탄자 위에서 누대에 걸친 타성을 이리 혹은 저리로 짊어지고 있었다.
그때 우리 자신들만이, 자랑스러운 등대 혹은 하늘의 야영지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는 적대적인 별들의 부대 앞에 떠밀린 초병들처럼, 우리 자신들만이 유일하게 깨어서 똑바로 서 있었기에, 거대한 자부심이 우리의 가슴을 부풀어 오르게 했다. 우리와 함께 있었던 것은, 거대 선박의 끓어오르는 화덕 앞에서 일하는 화부들과 미친 듯 내달리는 기관차의 배 속을 파고드는 검은 유령들, 불안한 날개 짓을 하며 도시의 담장을 따라 비틀거리는 취객들뿐이었다. 우리는, 오색찬란한 불빛의 조명을 받는 거대한 이층 전차가, 마치 폭포를 역류해서 갑자기 들이닥쳐 휴일을 즐기던 마을을 송두리째 쓸어 바다로 끌고 가버린 포강의 홍수처럼, 땅을 흔들며 지나가면서 거대한 소음을 내는 걸 들었을 때, 갑자기 놀라 몸을 움찔거렸다. 그러고 나서는 더 고요해졌다. 낡은 운하가 힘없이 기도문을 웅얼거리는 것을, 축축한 녹색의 턱수염 속에서 죽어가는 궁전들의 뼈가 삐걱거리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있을 때, 갑자기 자동차들의 굶주린 포효가 우리의 귓전을 때렸다.
‘가자!’ 나는 말했다. ‘벗들이여! 가자!’. 신화, 신비주의적 이상은 이제 패퇴되었다. 우리는 켄타우르스의 탄생을 함께 할 것이며, 첫 번째 천사의 비상을 목격할 것이다!... 우리는 삶의 문을 흔들어 그 빗장과 경첩을 시험해보아야 한다.... 가자! 저 대지 위에 동트는 여명을 보라! 수천 년간에 걸친 우리의 어둠 속을 이제야 처음으로 파고들어 오는 저 붉은 태양 검의 광휘에 비할 것은 아무것도 없다! 우리는 숨을 헐떡거리는 세 마리 짐승에게로 가서 그들의 뜨거운 가슴을 사랑스럽게 쓰다듬었다. 나는 들것에 놓인 시체처럼 내 차 위에서 몸을 뻗다가, 기요틴의 칼날처럼 내 배를 겨누고 있던 운전대 아래에서 새로운 생을 얻고 깨어났다.
우리 자신으로부터 광기의 광폭한 빗자루가 생겨나서는 급류처럼 거칠고 깊은 거리로 우리를 내몰았다. 이곳저곳에서 차창을 통해 비치는 흐릿한 불빛의 인상이 소멸할 수밖에 없는 우리 눈의 기만적인 수학을 조롱하였다.
나는 소리쳤다. 냄새 맡기, 짐승들에겐 냄새 맡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젊은 사자들처럼 우리는 죽음을 쫓아 달렸다. 창백한 십자가로 얼룩진 외투를 입은 죽음은 거대하게 자줏빛으로 살아서 꿈틀거리는 하늘에 의해 흩날리고 있었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숭고한 형상을 구름 위까지 꼿꼿하게 세우는 이상적인 연인도, 비잔틴의 반지처럼 뒤틀린 우리의 시체를 제공할 만한 잔인한 여왕도 없었다. 그를 위해 기꺼이 목숨을 바칠만한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남아있던 것은 우릴 자극하는 용기로부터 벗어나고자 하는 요구뿐이었다.
우리는 경비견들을 현관 계단에 내던져, 뜨겁게 달리는 우리의 타이어로 다리미 아래 옷깃처럼 납작하게 만들며 질주했다. 얌전하게 길이 든 죽음은 모퉁이를 돌 때마다 나를 앞질러서는 우아하게 내게 손을 내밀었다. 가끔씩 그는 이빨을 가는 소리를 내며 땅 위에 몸을 눕히고는 모든 흙탕물 웅덩이에서 내게 부드럽고도 사랑스러운 눈길을 보냈다.
지혜라 불리는 끔찍한 집을 떠나, 자부심으로 물든 과일처럼, 우리 자신을 거대한 이빨을 드러내는 바람의 아가리에 내어 맡기자! 절망에 의해서가 아니라, 다만 부조리의 깊은 우물을 채우기 위해서 우리 자신을 낯선 것의 아가리를 향해 던져버리자!
이 말을 하기가 무섭게 나는 자기 꼬리를 물려는 개처럼 광포하게 차를 빙빙 돌렸다. 그와 동시에 자전거를 탄 두 사람이, 둘 다 확신을 주지만 서로 대립하고 있는 두 개의 신념처럼, 나를 향해오고 있는 것을 보았다. 그들의 바보 같은 딜레마가 내 영토에서 펼쳐지고 있었던 것이다.... 얼마나 멍청한가! 제기랄!... 나는 급하게 브레이크를 밟았고, 바퀴를 위로한 채 차는 뒤집혀 도랑에 빠져버렸다.
오, 어머니 같은, 수면까지 더러운 물로 가득 찬 도랑이여! 오, 아름다운 공장의 폐수 도랑이여! 나는, 나를 키운 수단 출신 유모의 성스럽고 검은 젖가슴을 상기하면서, 너의 영양 가득한 구정물 찌꺼기를 들이마셨다.
내가 더럽혀지고 냄새나는 풋나귀처럼 뒤집힌 내 차 아래에서 기어 나왔을 때, 나는 붉게 달구어진 쇠가 내 심장을 관통해 지나가는 것 같은 기쁨을 느꼈다!
낚싯줄로 무장한 어부들과 풍에 걸린 자연 연구가들이 이 기적의 현장을 둘러싸고 북새통을 이루고 있었다. 참을성 있게 지나칠 정도로 주의 깊게 이 사람들은, 바닷가에 끌어올려진 거대한 상어처럼 내 차를 붙잡기 위해 큰 기중기를 설치하고 쇠로 만든 거대한 그물을 걸었다. 차가 도랑에서 천천히 떠 올라왔다. 건전한 인간 상식이라는 무거운 차체와 편안함을 주는 부드러운 쿠션은 비늘처럼 땅 위에 내려 둔 채로.
모두가 내 아름다운 상어가 죽었다고 믿었지만, 나의 애무는 그것을 되살리기에 충분하였다. 그 상어는 다시 새로운 생명에로 깨어나 다시 힘찬 지느러미를 흔든다!
얼굴은 멋진 공장 오물 - 금속 폐기물, 무용한 땀, 그리고 거룩한 검댕이의 혼합물 - 로 뒤덮이고 온 몸이 멍들고 팔은 붕대로 감았지만, 우리는 놀라지 않고 이 땅에 살아있는 모든 인간들에게 우리의 고귀한 의도를 다음과 같이 선언한다.
1. 우리는 힘과 대담무쌍함에 대한 신뢰, 위험에 대한 사랑을 노래할 것이다.
2. 용기, 대담함, 반란이 우리 시의 본질적 요소일 것이다.
3. 지금까지 문학은 생각으로 무거운 부동성, 황홀경, 그리고 수면만을 찬양했다. 우리는 공격적 행동, 열에 들뜬 불면증, 달리는 걸음, 목숨을 건 도약, 주먹으로 치기, 따귀 때리기를 찬양할 것이다.
4. 우리는 새로운 아름다움, 속도의 아름다움 때문에 세상이 더욱 풍부하게 되었다고 확언한다. 폭발하듯 숨을 내쉬는 뱀 같은 파이프로 차체를 장식한 경주용 자동차 - 포탄 위에라도 올라탄 듯 으르렁거리는 자동차는 <사모트라케의 니케>보다 아름답다.
5. 우리는 운전대를 잡고 있는 사람을 찬미할 것이다. 그의 이상의 축은, 스스로도 궤도를 따라 질주하는 지구를 횡단한다.
6. 시인은 열정적으로, 자신을 불태우면서, 찬란하게, 아낌없이 본원적인 요소들에 대한 열광적 열정을 부풀어 오르게 하기 위해 자신을 소모해야 한다.
7. 아름다움은 오직 투쟁 속에만 존재한다. 공격성이 없는 작품은 걸작이 될 수 없다. 시는 미지의 힘들을 인간 앞에 항복하고 굴복하도록 만들기 위해 가해지는 강력한 타격이다.
8. 우리는 세기의 가장 끝 구릉 위에 서 있다! 우리가 원하는 것이 불가능이라는 신비한 문을 파괴하는 것일 터인데, 무엇 때문에 뒤를 돌아보아야 한단 말인가? 시간과 공간은 어제 죽었다. 우리는 이미 절대적인 것 속에 살고 있다. 우리가 영원하면서 편재하는 속도를 창조했기 때문이다.
9. 우리는 전쟁 - 세상에서 유일한 위생학 - , 군국주의, 애국심, 아나키스트들의 파괴행위, 목숨을 바칠 가치가 있는 아름다운 이념, 그리고 여성에 대한 경멸을 찬미한다.
10. 우리는 박물관, 도서관, 모든 종류의 아카데미를 파괴하고, 도덕주의, 페미니즘, 합목적성과 사욕에서 기인하는 모든 비겁함에 맞서 싸울 것이다.
11. 우리는 노동, 쾌락, 폭동에 들떠있는 거대한 군중에 대해 노래할 것이다. 우리는 현대의 대도시에서 일어나고 있는 다채롭고 교향악처럼 울려 퍼지는 혁명의 물결을 노래할 것이다. 밤이 되어 하얗게 전율하며 작열하는 병기 공장과 눈부신 전기-달에 의해 밝게 빛나는 조선소를, 뱀처럼 피어오르는 연기를 탐욕스럽게 삼키는 기차역을, 곡선을 그리며 길게 날아오르는 연기를 구름에 걸치고 있는 공장들을, 태양 아래에서 칼처럼 번쩍이는 강물들을 거인 운동선수처럼 건너뛰고 있는 교각들을, 수평선의 냄새를 맡는 모험심 강한 선박들을, 배관으로 고삐를 채운 거대한 철마처럼 선로 위를 박차고 나아가는, 넓은 가슴을 가진 기관차들을, 그리고 깃발이 바람에 나부끼듯, 열광하는 군중들이 찬동의 박수를 치는 듯한 프로펠러를 단 비행기의 미끄러져가는 비행을 노래할 것이다.
이탈리아에서 세계로 우리는 이렇게 과격하고 소란스럽고 선동적인 우리의 선언을 내 던졌다. 우리는 교수들, 고고학자들, 여행 안내자들, 골동품 수집가들로부터 이 땅을 자유롭게 하기를 원하기에 오늘 미래주의를 창립한다. 이탈리아는 너무도 오랫동안 골동품 시장이었다. 우리는 수없는 무덤처럼 이 나라를 뒤덮고 있는 박물관으로부터 이곳을 해방시키려 한다.
박물관들 : 무덤들!... 분명코, 서로를 알 수도 없는 수많은 육체들의 기괴한 혼잡함 같은. 박물관들 : 혐오스럽거나 알려지지 않은 존재들 곁에서 영원히 잠자고 있는 공공 침실. 박물관들 : 색채와 선을 갖고 아직 싸움이 없었던 전시 벽면을 따라 서로를 살육하는, 화가와 조각가들의 부조리한 도살장.
추도의 날에 묘지를 방문하듯이 일 년에 한 번 그대가 그곳을 순례하는 것, 나는 허가한다. 일 년에 한 번 그대가 모나리자의 초상 아래 꽃을 봉헌하는 것, 나는 허락한다. 그러나 우리의 비루한 존재, 깨어지기 쉬운 용기, 우리의 병적인 동요가 매일, 박물관들에서 돌아다니게 하는 것은 허락하지 않는다.
왜 우리 스스로를 독으로 오염시키려 하는가? 왜 스스로를 썩게 만드는가?
그 낡은 그림들에서 볼 수 있는 것이란, 자신의 꿈을 완전하게 실현하려는 바람을 가로막는 극복할 수 없는 장애물에 맞서 온몸을 던지는 한 예술가의 고통스러운 탈구 이외에 무엇이란 말인가?... 오래된 그림에 경탄하는 것은 우리의 감수성을 행동과 창조를 통해 폭넓고 강하게 발산시키는 대신, 납골 단지 속에 쏟아붓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이런데도 그대는 그대의 최고의 능력들을, 결국엔 힘을 탕진하고, 빈곤해지고, 낙담한 채 되돌아 나올 그 과거에 대한 영원하고 쓸데없는 숭배로 허비해 버릴 것인가?
진실로 나는 그대에게, 매일 박물관과 도서관, 학술원(부질없는 노력의 묘지, 십자가에 못 박힌 꿈의 칼 바리아 언덕, 파산된 고양의 등기부)을 드나드는 것은, 예술가들의 입장에서 본다면, 너무 오랫동안 부모의 후견 아래 있어서 재능과 야심 찬 의지를 마비시키는 것만큼이나 유해한 것이라고 천명한다. 그것은 죽어가는 자, 병든 자, 갇혀있는 자에게는 편안할지 모른다. 미래로의 길이 막혀있는 자에게, 감탄할만한 과거는 그의 불행에 위안을 줄지 모른다... 그러나 우리는 과거의 어떤 것도 원하지 않는다. 우리. 젊고 강인한 미래주의자들은!
검댕이 묻은 손가락을 가진 즐거운 방화자들을 도래하게 하라! 여기 그들이 있다. 여기에 그들이 있다... 어서 오라! 도서관 서고에 불을 질러라! 운하의 물길을 박물관으로 돌려 홍수를 일으켜라!.. 오! 오래되고 명성 있는 그림들이 갈기갈기 찢기고, 탈색된 채 물 위에 떠도는 것을 보는 즐거움이여!... 곡괭이를 들어라, 손도끼와 망치를, 그리고 부숴라, 고색창연한 도시들을 부숴라, 무자비하게!
우리 중 제일 나이 많은 이들이 이제 서른 살이다. 우리 작업을 완성하는 데는 적어도 십 년은 남아있다. 우리가 마흔이 되었을 때, 우리보다 젊고 강인한 이들이 우리를 쓸모없는 원고처럼 조용히 쓰레기통에 던져버릴 것이다. 우리는 이런 일이 일어나기를 바란다.
그들, 우리의 후손들은, 우리에게 대항해 올 것이다. 첫 번째 노래의 날개 달린 리듬에 맞춰 춤을 추며, 그들의 휘어진 맹조의 발톱을 뻗으며, 도서관 지하묘지에 봉인된, 썩어가는 우리 정신의 강한 악취를 학술원 문 밖에서 사냥개처럼 맡으며, 저 멀리에서, 사방에서, 몰려올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그곳에 없을 것이다.... 언젠가 그들은 우리를 발견할 것이다. 어느 겨울밤, 넓은 평원, 단조로운 빗소리가 울려 퍼지는 낡은 창고 아래, 그들은 우리가 비행기 옆에 웅크리고 앉아 몸을 떨면서, 우리의 이미지들 아래에서 타고 있는 우리의 책들, 거기에서 나오는 보잘것없는 작은 불꽃에 몸을 녹이고 있는 것을 발견할 것이다.
불안과 악의로 숨을 헐떡거리며 그들은 우리 모두를 떠들썩하게 에워쌀 것이다. 그리곤 우리의 자랑스럽고 지치지 않은 과감함에 쓴 입맛을 다시며, 우리를 덮쳐 죽여 버릴 것이다. 우리에 대한 그들의 증오는, 그들의 가슴이 우리에 대한 사랑과 경탄으로 가득 차 있을 것이기에, 결코 화해될 수 없을 것이다.
그들의 눈에서는 강하고도 건강한 부정의가 빛을 발할 것이다. 실지로 예술이란 폭력, 잔인성, 부정의 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우리 중 가장 나이 많은 이들이 서른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이미 보물들, 힘, 사랑, 용기, 기지, 그리고 날 것 그대로인 의지라는 수 천 가지 보물을 탕진해버렸다. 참을성 없이, 성급하게, 경솔하게, 망설이지 않고, 단숨에 이것들을 내던져버렸다.... 우리를 보라! 우리는 아직 숨이 차지 않다! 불, 증오, 그리고 속도를 먹고 자랐기 때문에 우리의 심장은 아직 피곤함을 모른다!... 이것이 당신을 놀라게 하는가? 아마 그럴 것이다. 그대는 아직 한 번도 자신이 살아보았다는 것조차 기억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세계의 정상에 똑바로 서자. 다시 한번 우리는 별들을 향해 우리의 도전장을 내던진다.
그대는 반대하는가? 알았다. 그 정도면 충분하다. 우리는 안다. 우리는 이해하였다... 교묘하고 속임수에 능한 지능은 우리가 우리 조상들의 종결이자 새 출발이라고 말한다. 아마 그럴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그렇게 해라! 그게 무슨 상관인가? 우리는 아무것도 이해하지 않겠다! 우리에게 이런 모욕적인 말을 하는 자에게 저항하라!
왜 프랑스의 보수적인 일간지에 이 공격적인 글이 실렸을까. 그것도 진보 지인 ‘르 몽드(Le Monde)’가 아니라 전통적인 보수 지에 말이다. 이 글은 단지 이탈리아에서 시작된 미래파의 서막이라기보다, 서구 사회의 젊은이들 전체가 당시 얼마나 산업화를 열렬히 환호하고, 사모하며 욕망하는지에 대한 자기 고백에 대한 기록이다. 이 기록이 고스란히 남아 후세의 사람들이 이런 집단적인 광기를 어떻게 판단할 것인지 판단의 근거를 남기게 되었다는 것은 다행이기도 하다. 이 내용은 이렇게 강력한 선동의 어구, 맹목적인 선택에 대한 지지의 어구들이 거대한 물살이니 따르라는 의미로 읽기보다, 산업화를 기반으로 생산성을 효율적이고 합리적으로 확대하자는 것. 이를 받아들여 시대의 빈곤을 타개하고 싶은 젊은이들의 개별적 욕망이 하나의 덩어리로 응축되기를 바라는 것. 재화의 축적을 통한 번영이 이 시대의 욕망임을 이해하기 바란다는 글의 목적을 가진다. 풍요롭게 살고 싶다는 젊은이들의 단순한 욕망을 거대한 시대의 흐름에 끼워 넣어 선동하는 것이다. 당시 프랑스의 기득권자들도 그러길 바랐다. 그리고 또 이 글이 ‘르피가로’에 실렸다는 의미 역시 앙시앙 레짐을 이미 폐기하고 있는 프랑스에서는 새로움이라는 단어 뒤에 숨어서 산업화의 가속을 거리낌 없이 받아들이고 기대하고 있다는 의미이다. 아니 열렬하게 환호하고 있다는 의미이다. 이렇게 걷잡을 수 없는 시대의 화염에 모두 몸을 던진다. 이제 서구 사회는 수많은 보혈로 만들어진 앙시앙 레짐에 대한 반항이 곧 시대의 전환이라는 명분이 되고, 산업 혁명이라 일컫는 생산성의 극대화를 모형으로 삼아 집단적인 광기의 시대로 돌입한다. 미술의 역사도 이에 따라 혼전으로 치닫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