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울 앞에서 뭔가 달라졌는지를 확인하며 옆으로 이리저리 돌아보며 자신의 모습을 살피고, 땀방울이 턱을 타고 흐르는 모습을 보고 사랑에 빠지는 나르시시스트. 자꾸만 바라보게 되는 팔뚝의 단단함과 굽었던 아련한 기억 뒤로 벌어진 당당한 어깨의 모양새가 마음을 한껏 솟아오르게 한다.
자신감을 가져. 조금만 더해보자! 자꾸 확인하게 되고, 다독이게 되는 순간.
(나르시시스트는 자기중심적이고 본인 과대, 타인을 무시하고 공감을 못하는 병적 요소를 갖고 있기는 하지만, 단편적인 면에서만 그 의미를 빌려 쓰는 것을 너그러이 이해해 주길 바란다.)
그리스로마에 관심을 갖고 있거나 좋아하는 분들은 나르키소스가 누구인지 알 것이다. 그는 신화 속 인물이다. 모든 여인들의 흠모의 대상일 정도로 아름다운 청년이었던 그는 잔인할 만큼 그 누구의 마음도 받아주지 않았다. 복수의 여신 네메시스는 상처받은 에코의 기도를 듣고 나르키소스 자신을 사랑에 빠지게 되는 기이한 저주를 건다. 샘물에서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고 지독한 사랑에 빠지게 되어 이루지 못하는 그 사랑에 목말라하다가 죽게 된다.
여기서 비롯된 것이 나르시시즘. 요즘 나 자신을 사랑하는 마음이 중요하다는 메시지를 많이 전하기도 하지만 그것이 지나쳐서 나르시시즘에 빠진 이들도 많아진 듯하다.
점심시간이 훨씬 지난 시간, 2층 휴게실에서 진한 음식 냄새가 난다. 물을 마시러 갔다가 공익근무요원 선생님을 만났다. (여기서 공익근무요원이란 학교에서 근무하는 군인인데 우리 학교에서는 특수반에서 한 학생을 집중적으로 도와주는 보조 교사 역할을 하고 있다.) 노랗게 카레 소스가 묻은 닭가슴살을 전자레인지에 데워 꺼내고 있었다.
"선생님, 점심으로 닭가슴살 드시는 거예요?"
"네, 맞습니다. 운동하면서 식사 조절을 하는 중이라서요."
"운동 시작한 지 얼마나 되신 거예요?"
"아, 시작한 지 얼마 안 됐어요. 먹으면서 몸 만들고 있는 중입니다."
"남자들은 조금만 해도 금방 운동한 만큼 근육이 잘 생기는 거 같아요. 난 운동해도 티도 안 나는데 남편은 근육이 느는 게 눈으로 보이던데요?"
"아, 맞습니다. 남자들이 더 잘 생기긴 하죠."
"헬스장 가면 남자들은 거울 앞에서 근육을 얼마나 들여다보면서 하는지 몰라요."
"하하하. 그런 재미없으면 운동 진짜 못합니다."
"그런가 봐요. 우리 남편도 애들한테 못 보여줘서 안달이에요. 못 말리겠어요."
닭가슴살을 뜯던 공익 선생님은 갑자기 일어난다.
"저도 그럼....." 하더니 입고 있던 반바지 끝자락을 올려 허벅지 근육(대퇴사두근)에 잔뜩 힘을 주어서 보여주었다. 속으로 얼마나 웃었던지. 근육이 보잘것없어서 웃은 것이 아니라, 운동하는 남자들은 같은 마음일까? 자랑하지 않고서는 못 베기는 마음을 드러낸다.
집에서 남편은 웃통을 못 벗어서 안달이다. 운동하고 온 날이면 옷을 갈아입기 전 두 팔은 뽀빠이 포즈.
"봄아, 봄아! 아빠 여기 가슴 근육 보여줄까? 이봐라, 막 움직인다!"
"나무야, 아빠 알통 봐봐. 이게 이두근이야. 딱딱하지, 만져 볼래? 만져봐 봐."
"아뇨. 사양할래요."
남편은 "우와, 아빠 진짜 근육 최고다, 멋있다."는 소리를 들으며 관심을 받고 싶겠지만
아이들은 "아, 네. 단단하네요. 멋지네요." 영혼 없는 말이 담백하게 흘러나온다.
운동을 시작하고는 매일 그러니까 그 모습을 보고 나와 아들은 지나가며 웃기만 하고 봄이는 고개를 절레절레하며 눈을 질끈 감아버린다.
"아빠, 자꾸 그러니까 없어 보여. 옷 좀 빨리 입어."
사춘기 소녀 봄이는 이제 아빠에게 달려들어 안기지 않는다. 샤워하고 윗도리를 입지 않으면 '뭐야!' 소리를 지르며 눈을 버렸다는 듯이 쏙 들어가 버린다. 딸의 눈에는 근육을 봐주고 싶은 것보다 웃통 벗은 아빠의 모습이 더 눈에 들어왔을 테니.
운동을 하고 근육을 모으고 자랑질하던 그는 주변의 만류(?)로 조금 잠잠해졌다. 헬스장 앞 큰 거울 앞에서 어깨를 쫙 펴고, 이쪽저쪽 살피는 모습을 만나곤 한다. 내 남편만 그런 것이 아니다. 우리는 헬스장에서 빌려주는 헐렁한 헬스복을 입지만 운동 '쫌'하는 분들은 딱 달라붙는 민소매, 가슴과 등이 드러나는 옷을 입고 거울 앞에서 나르키소스처럼 자신에게 빠져드는 그들을 발견한다.
남편의 마음, 공익선생님의 마음, 운동하는 이들의 마음. 운동을 하면서 눈으로 보이는 성과를 누군가에게도 자랑하고 싶은 마음을 어찌 막으리오.
하지만 그런 마음이 아무리 헉헉대고 오만상 찌푸리며 거대한 무게를 견디는 힘이 될 테니. 운동할 때만큼은 나르시시스트가 되는 것을 용서해 주어야 할지도 모른다.
운동하러 가는 길에 동네 부동산 사장님을 만났다.
"와, 몸이 엄청 좋아진 것 같은데?" 하는 한 마디에 남편은 가슴을 내밀고 오른손으로 가슴을 치는 시늉을 한다. 또 웃음 만발이다. 못 말려, 못 말려. 칭찬에 아니 좋아할 사람 있겠는가!
산울림 노래를 흥얼거린다. 딱 운동할 때만이야. 남편은 이마에 땀방울, 마음엔 꽃방울을 머금고 개구쟁이 소년이 된다. 잘한다, 잘한다! 그렇게 운동으로 근육을 키우면 건강해지고 당신도 좋고 나도 좋은 일이지. 나무에도 오르고, 하늘에도 오르자. 두 팔 올려 바를 잡고 온몸을 들고 턱걸이를 하는 남편. 오늘은 아들 대신 남편의 궁디를 팡팡 두드리며 잘한다, 잘한다 응원을 해준다.
그나저나 내 근육은 왜 안느는 거야? 에스트로겐 때문인 건가. 내게 테스토스테론 수치가 낮은 건 다행스러운 일이지만 가끔은 운동하는 대로 눈앞에 보이는 성과가 없으니, 운동 따라가는 힘이 달린다. 나를 이끌어줄 객관적인 평가가 필요하다. 한 달에 한번 인바디를 체크해 보지만 드라마틱한 변화는 없다. 몸무게가 몇 그램 줄었거나 근육량도 매달 들쭉날쭉.
그런데 오늘 아침,
"어, 당신 등이 넓어진 거 같은데?"
허걱. 이게 무슨 소리인가. 좋아해야 하는 걸까. 그러고 보니, 운동하는 대로 근육이 달라붙고 몸집이 커진다고 생각하니 끔찍하다. 보디빌더가 될 것이 아니니까 눈에 보이지 않더라도 속 근육이 쌓일 거라는 믿음만으로 운동은 계속되길 바라본다. 늘어진 살들만 탱탱 오므라들고, 근력이 차곡차곡 쌓이기를 기대한다. 아무도 몰라보는 내 은밀한 속근육을 느끼며 사랑에 빠지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