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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어도 너무 긴 명절 연휴[03]

길어서 너무 좋은 명절 보내세요!

by 빛방울

오늘의 글감 : 추석연휴


결혼 전에는 좋아했는데, 결혼하면서 싫어졌다는 그것은?

딩동댕!

'명절' 맞습니다.


2025년 달력을 넘기다가 발견한 길고 긴 연휴! 아이들은 일주일 내내 학교를 안 간다고 좋아했다. 잊고 지내던 봄 그리고 여름이 지나고 9월이 되었다. 아, 맞다. 긴 연휴가 있었지. 아이들은 내내 놀 수 있어 좋아했지만 나는 그다지 설레거나 기쁜 마음이 들지 않았다. 물론 쉬는 날이 많으니 좋긴 하지만 일단 걱정이 앞선다. 무엇을 하며 보내야 하나? 연휴 동안 추석을 전후로 시댁에서 친정에서 어떻게 보내야 하나? 애들이 학교도 안 가고 집에서 뒹굴거리고 나와 내내 부대낄 상상 만으로 머리가 지끈거리기 시작했다.


딸은 나에게 연휴에 어디 안 가냐고 뭔가 기대를 하는 눈빛이었고, 아들은 집에서 늦잡을 자고, PC방에서 게임할 시간이 많다며 좋아라 했다. 남편은 아무 생각이 없어 보였다. 나도 마음만 복닥거릴 뿐 좋은 수를 갖고 있진 않았다.


명절마다 가족이 모두 만날 수 있어서 참 행복한 시간이 되기도 하지만 명절에 제사 음식을 하고, 차례를 지내고 하는 것은 스트레스가 되기도 한다. 사실 기혼 여성들이 힘들아하는 이유가 그것뿐이랴. 말하려면 오늘 글을 끝낼 수 없기에 그저 공감하는 마음만으로 남겨두기로 하고.


다행히도 그동안 크게 힘들거나 명절 증후군을 논할 만큼의 스트레스를 받지 않았던 이유는 제사를 지낼 때마다 기본 장은 어머님이 다 보셨고 미리 준비를 해 놓으신다. 그러면 준비된 것으로 가족들이 모여 각자 맡은 분야에서 음식을 하기만 하면 된다. 아주버님은 밤을 깎고, 녹두를 갈고 큰 형님은 고기나 생선 양념을 재고, 나물을 하신다. 나와 남편은 재료를 썰여 꼬치에 끼우고, 각종 전을 부치면 된다.


이것만 해도 왠지 마음 한 편이 불편하고 힘들게 느껴지는 순간들이 많았다. 다 먹지도 못하고 냉동실에 들어갈 것을 왜 이렇게 많이 하지 하는 생각부터, 준비하는 과정에서 듣는 어머니의 잔소리가 듣기 싫기도 했다. 시댁 가족들과 있으면 왠지 미묘하게 불편한 공기를 마시기만 해도 체할 것 같은 그런 기분이었다. 지금은 그런 마음도 점점 사라져 간다. 세월이 흐르면서 쌓이는 시간 속에 가족이 되어가고 그들 각자의 모습을 인정하고 나니 그렇게 편해진 것 같다.


다행히 올 설 연휴부터 절에서 합동 차례를 지내기로 했다. 그동안 어머님에게 제사는 사명 같은 거였다. 당신이 더 이상 못하게 되는 날이 되면 두 며느리가 잘 챙겨야 한다고 제사 때마다 넌지시 말씀해 오셨던 어머님. 어머님이 달라지셨다.


몇 년을 우리가 그렇게 얘기해도 듣지 않으시더니 내내 우리들의 이야기가 익숙해진 탓일까? 점점 주변에서 간편하게 지내거나 명절에 여행을 떠나는 지인들을 보며 그토록 굳건하던 어머님의 마음이 조금씩 유연해지신 듯하다.


"나이 먹으니 나도 힘들어. 너네도 다 일하고 바빠서 매번 챙기기 힘들 거고. 이게 낫겠다 싶다."


이번 명절엔 전을 부치는 풍경은 볼 수 없을 것 같다. 왠지 서운한 마음이 드는 건 왜일까? 차례상을 차릴 필요가 없으니 가족들도 추석 전에 모이기로 했다. 먹고 싶은 음식을 해 먹고 명절 탓으로 가족들이 억지로라도 모여 음식을 하던 시간이 좋았던 걸까? 난 아직 옛날 사람인 걸까?


연휴가 긴 덕분에 시댁에서 친정에 빨리 가고 싶어 서둘러 나오던 마음을 내지 않아도 되겠다. 그동안 엄마가 해주시던 푸짐한 음식으로 풍성한 명절을 보내곤 했는데, 엄마가 손을 다치시고 난 후에는 일을 하시기가 싶지 않다. 조금만 일해도 붓고, 아파도 자식이 온다고 하면 무리하실 게 뻔하다. 우리는 친정이 아닌 곳에서 만나기로 했다. 일하는 사람이 따로 있는 익숙한 집에서 벗어나 낯선 곳으로 탈출! 가족들과의 새로운 추억을 만드는 시간이 될 듯하다.


어느 한 사람의 희생으로 즐거운 명절이 아닌, 모두가 함께 즐기고 나누는 그런 명절이 되면 좋겠다. 명절을 떠올리면 한숨이 쉬어지거나 힘든 기억이 떠오르기보다 행복한 마음부터 떠오르면 얼마나 좋을까.


당신들의 귀한 연휴 내내 행복하시기를!

가을을 만끽하며 풍요로운 한가위를 맞이하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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