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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고 싶지 않아 [04]

나를 지키기 위한 노력 잊지 말기

by 빛방울

오늘의 글감 : 최근에 잃어버린 것. 잊어버린 것


"얘들아, 요즘 날씨가 너무 좋지 않니? 그래서 말인데, 선생님이 너희랑 도전하고 싶은 게 있어."

"뭔데요?"

"너희랑 운동장에서 마라톤 대회를 해볼까 생각 중이야!"

"마라탕이요? 하하하 마라탕 대회다!"


끄응.

"선생님이 지금 설명하는 중이었는데, 장난하는 모습을 보니까 할 수가 없겠어."

아이들은 깔깔거리고 웃는데 그 와중에 나는 뾰로통해지고 진지한 얼굴을 하고 있다. 기분 좋게 시작했던 나의 이야기는 어딘가로 사라지고 분위기도 갑자기 차가워졌다.


나도 한바탕 웃다가, 얘들아 마라탕이 아니고 마라톤! 하면서 이야기를 이어나가면 어땠을까? 우리 나가서 달리기 해볼까? 하면 아이들이 '와아!' 하는 환호성을 지르며 운동장을 뛰어나갈 수 있었을 텐데.


"선생님, 그럼 우리 마라톤 대회 안 해요?"

기다리던 아이들은 시무룩해지고 장난치며 키득대는 남자아이들을 원망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내가 그리던 장면은 이게 아니었는데.


올해 초, 남자아이들이 많은 데다가 개구쟁이 아이들이 모여서 자꾸만 수업에 방해하는 일이 잦아져서 수업 시간에 장난스럽게 이야기하는 것을 허용하지 않게 되었다. 한번 받아주고 웃다 보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끝없이 이어지기도 한다. 허용적이던 나의 수업 분위기는 올해는 완전히 반대 모드로 전환되었다. 수업 분위기는 조금씩 잡혀갔지만 웃음이 많던 나는 예전보다 무서운 선생님이 되어갔다. 교실에서 미소를 잃어버린 나.


경직되고 굳은 얼굴을 좀 풀어야겠다.

거울을 보면서 외쳐보자.

"와이키키, 김치! 스마일!"

가끔 깔깔거리고 웃는 날도 있어야지. 지나친 행동을 하면 또 가르쳐주면 되는 거고.

아이들은 내 마음을 알려나?


"요 녀석들, 잃어버린 선생님 미소 돌려 내!"

내일은 아이들과 마라탕 먹고, 마라톤 대회 연습 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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