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선주 Jan 28. 2024

푸르고 싱싱한

가끔 숨 막히는 습기를 가진 듯한 사람을 만날 때가 있다. 처음에는 마냥 건조하지 만은 않아서, 나름 촉촉하게 느껴지는 습기가 있는 사람들에게 끌린다. 그러나 습기는 점점 더 짙어지고, 자신이 흠뻑 젖은 스펀지처럼 되어가는 지도 모르는 채로 살아간다. 그뿐만이 아니다. 물기를 머금다 못해 스며 나오는 물기들은 타인을 향해 서서히, 소리 없이 흘러간다. 습기는 조금씩 타인의 것이 되어가고, 어느새 온통 젖은 나를 발견하게 된다. 한때는 나도 습기로 가득 찬 한 시절이 있었다. 매일같이 무거운 기분과 마음, 음울함,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은 무기력 속에서 보낸 나날들이. 그러나 그런 기운을 누군가에게 들키는 게 싫었고, 나의 그런 점들을 타인에게 옮기기는 더욱 싫었다. 그럴수록 나는 내 상태를 직시하고, 어떻게든 그 상태를 벗어나려 발버둥 쳤던 것 같다. 그렇게 어떻게든 노력한 끝에 안정된 지금을 맞이하게 되었지만.


결국은 모든 건 지나가게 되어있다는 사실을 끊임없이 되풀이했던 것 같다. 아무리 아프고 힘겨워도, 미래의 나는 반드시 괜찮아질 거라는 생각이 이상하게도 굳건했다. 그리고  나는 끝까지 다른 사람들을 만나는 일을 놓지 않았다. 혼자만의 생각에 갇히는 일을 경계했다. 힘들고 아플수록 푸르고 싱싱한 사람들을 만나 이야기하기를 원했다. 그들과 함께 있는 것만으로도 잃었던 생기를 되찾는 기분이었으니까. 나는 여전히 민감하고 예민한 사람이라 습기를 가진 사람들을 만나면 그 사람이 가진 습기를 온전히 받아들이게 된다. 내가 원치 않아도 그 사람이 내뿜는 습기는 나에게 깊고, 스산하게 파고든다. 그래서일까. 유난히 내가 햇살에 바짝 말린 수건과 이불을 좋아하는 것도.


푸르고 싱싱한 사람이 좋다. 나이가 들수록 더 그렇게 되어가는 듯하다. 누구나 다 그럴 것이지만, 유난히 푸르고 싱싱한 사람이 좋은 이유는 내가 금방 습기를 흡수하기 때문이고, 내가 그런 사람이 될 확률이 높기 때문이 아닐까. 그래서 더욱 어떤 사람을 만나는가가 중요하고, 어떤 글을 읽는지가, 어떤 영화를 보는지가 특히 중요한 것 같다. 나는 빠른 흡수를 하는 인간이므로. 좋은 것들, 밝은 것들만 가까이 두어도 모자랄 시간에 내가 무겁고, 힘들어지는 것들을 곁에 둘 이유는 없지 않은가.


나 또한 누군가에게 쏟아지는 햇살 아래 말린 보송한 수건과 같은 사람이고 싶다. 존재만으로도 따스해지고, 얼굴을 묻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지는 그런 수건 같은 사람. 덜 말린 수건에서는 좋지 않은 냄새가 난다. 습기는 곰팡이를 만든다. 그러니 내 마음을 늘 관리하고 돌보아야 한다. 곰팡이가 피지 않도록, 그 곰팡이가 나 자신을 모조리 덮어버린 후에, 다른 사람에게까지 퍼지지 않도록. 언제나 햇살이 마음속으로 들어올 수 있도록 마음을 활짝 열어두어야 한다.




작가의 이전글 쓰지 못한 글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