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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가 서울로 병원을 왔다

딸의 수발은 끝이 없다

by Decenter Apr 02. 2025

월요일 새벽 6시 30분. 갑자기 전화벨이 울렸다. 혼비백산받은 전화에 들려오는 것은 거의 울부짖음에 가까운 엄마 목소리였다. 


"내가 20분이나 아무리 해도 카드가 안돼서 도저히 택시가 55분까지 가야 되는데 이를 어쩌냐고 내가 오죽했으면 너한테 전화를 다...." 


도대체 무슨 소리인지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엄마와는 한 일주일 전부터 냉전 중인 참이었다. 딸 엄마 자존심에 마지막 통화가 일주일이 지났는데 새벽 댓바람 전화니 큰일이 난 것 같아 심장이 다 벌렁거렸다. 알고 보니 엄마는 월요일에 삼성서울병원에 CT 촬영 예약이 있으셨고, 원래였으면 딸들에게 미리 알렸을 것을 심상한 나머지 아무 말도 안 하고 혼자 올라오실 참이었던 거다. 그런데 기차표를 끊어준 아들은 마침 일본여행 중이었고, 새벽 6시 55분 기차를 타러 나오셨지만 택시가 잡히지 않는다는 것이 핵심이었다. 하필 카드를 재발급받아서 카카오 택시도 안 불러진다고. 


상황파악이 끝난 나는 우선 엄마에게 지금은 늦어서 그 기차는 못 타신다. 내가 기차표를 다시 끊을 거고, 택시부터 먼저 불러드릴 테니 있는 곳을 말씀하시라 했다. 아무 간판을 부르는 엄마에게 더 이상 정보를 캐내는 것은 어려울 것 같아 일단 전화를 끊고, 황급히 택시부터 알아보기 시작했다. 그 와중에 다행히, 그렇게 안 잡히던 택시를 잡아타셨다고 전화가 왔다. 그렇다면 그다음은 기차표. 부산에서 수서로 가는 SRT 표가 떡하니 있을 리 만무했다. 전체 매진인 화면에 정신이 아득했으나 재빨리 새로고침을 누르기 시작했다. 그때가 벌써 6시 30분. 7시 반 이전 차를 못 타면 병원 예약은 늦을 것이 뻔했다. 


용케도 기차표가 잡혔다. 대전에서 자리를 옮겨야 하는 수고를 요했지만 잡힌 게 어디냐. 간신히 구한 표로 엄마에게 상황을 설명하고, 자리를 옮길 때 짐은 놔두고 가시라고 한다. 내가 수서로 나가겠다고. 됐다고, 피곤할 테니 잠이나 자라 하고 전화를 끊으신다. 애당초 너희의 도움은 받지 않겠다던 그 강단이 상황이 종료됨과 동시에 올라오셨음이 틀림없다. 


온 가족 알람이 7시 반에 울리는 집이건만 벌써 나의 놀란 통화소리에 무슨 일이냐며 달려온 아들까지 온 가족 잠은 다 달아나버린 뒤였다. 덕분에 모두모두가 주섬주섬, 각자의 행선지로 빠르게 향하고 나는 엄마를 데리러 갈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CT를 찍으려면 금식이라 전날 저녁부터 아무것도 안 드셨을 것이 뻔했다. 그 와중에 이 새벽 난리까지 치셨으니 그 컨디션이 오죽할까. 좀비 같은 모습으로 나타나실 거면서 자존심까지 부려대는 엄마에게 기가 찬 것보다 중요한 것은 엄마가 무사히 병원 진료를 마치는 것이니까. 


"왜 왔노" 


아니나 다를까 눈을 흘기시는 엄마는 거의 산송장에 가까운 모습으로 나를 맞으셨다. 얼굴은 팅팅 불고 눈도 제대로 못 뜨시는 엄마. 그 와중에 3주 병원 생활이니 캐리어는 어찌나 큰지 엄마도 들어갈만한 사이즈였다. 이걸 들고 혼자 가시겠다고. 어이없어 실소가 나올듯한 표정을 다시 바로 하고 차를 몰아 병원으로 향한다. 혈관이 약한 엄마가 피를 뽑기 위해 바늘을 수 번이나 찌른다. 그리고 옷을 갈아입고, 또 바늘을 찔러 조영제 부작용 약을 투여하고, 오랜 대기시간 끝에 CT 촬영을 한다. 그 모든 과정은 잘 짜인 공장 컨베이어 벨트 안에서 이루어지는 일 마냥 착착착 진행되어 엄마의 고통이 진행을 지체시킬 틈조차 없다. 드디어 촬영 끝. 간호사의 부축을 받으며 나오는 엄마를 받아 의자에 앉혔다.


"춥다. 여기 내 딸 옷 좀 덮어주소" 


간호사가 인사까지 하고 내 손을 잡고 앉은 참이셨다. 어디다, 누구에게 하는 존댓말인가. 당혹스러움에 3초쯤 얼어붙은 몸을 간신히 움직여 내 옷을 엄마 어깨에 둘러준다. 하. 언제까지 이어질 고통인가. 남들은 재발 안 한 것이 기적이다 하지만 그 기적을 매번 확인하는 절차는 결코 낙관적이지 않다. 


엄마가 올라오는 것을 몰랐던 터라 아이 친구 엄마와 난생처음 점심식사가 잡혀있는 참이었지만 언감생심이다. 양해를 구하고 약속을 미룬 뒤, 엄마가 몇 술이라도 뜰 수 있는 음식점을 찾는다. 어차피 조영제 부작용제에 속이 니글거려 정상적인 식사는 불가능할 거였다. 입원이 예정되어 있는 병원으로 빠르게 가서 쉬시지 않을까 하고 병원에서 식사하실 거냐 물었지만 대답은 "국물이나 먹었으면"이었다. 어차피 이렇게 될 거 약속이 있긴 하다고 말을 흘려보지나 말걸 싶었다. 


그렇게 식사를 하고 엄마가 쉬실 병원에 입원을 시켜드리는 것으로 나의 역할은 끝났다. 부산에서 서울까지 검사를 오는 환자들은 일주일 뒤에나 있는 결과를 보기에 왔다 갔다 하기가 힘이 든다. 게다가 진료를 봐야 할 곳이 한 두 곳이 아니어서 그 모든 일정을 간신히 몰아 3주 안에 모두 해결하는 것이다. 그 기간 동안 지내시는 요양병원이 엄마가 지낼 곳이었다. 이미 첫 수술을 하시고 2년 여 머무셨던 곳이라 낯설지는 않을 곳. 


그러고 집에 와서 나는 그대로 뻗었다. 2시간을 자고 일어났더니 온몸이 맞은 듯이 아프다. 그리고 삼일을 내내 몸살을 앓았다. 종종 대고 운동장을 달리듯 병원을 돌아다니며 수발 들어온 역사가 한두 해가 아니건만 유달리 이번에는 이렇게 몸이 티를 낸다. 이번 주 해야 할 일, 하고 싶었던 그 모든 일은 손도 대지 못한 채 시간이 다 흘렀다. 그래도 수확이라면 그 덕에 물에 물 탄 듯 술에 술 탄 듯 엄마와의 냉전관계가 마무리되었다는 것. 그러나 앞으로 엄마가 서울에 계시는 3주, 방심은 금물이다. 엄마의 병원 일정에 무탈을 빌려면 우선은 다음 주 진료 결과가 잘 나오는 것부터가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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