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은 산티아고 길을 가기 위해 스페인 어학원을 다녔다. 비행기표를 끊고, 일정 등을 정리하고 숙소를 알아보는 등, 많은 것을 준비했다. 그래서인지 나는 아직 혼자 여행하는 것을 두려워한다. 그런 내게 스페인 남편이 생겼다.
마드리드 아토차역 부근 폰 매장에서 스페인 유심을 사서 갈아 끼우면 스페인 전화번호가 생긴다. 핸드폰에 ‘스페인 남편’이라고 번호를 저장한다. 그렇게 ‘스페인 남편’은 부킹닷컴에서 숙소를 예약하고, 맛있는 식사를 사주고, 삼시세끼를 걱정하며 내 걸음 속도에 맞춰 동행한다. 소변이 마려울 때는 사람들이 오지 못하도록 망을 봐주기도 한다. 가끔씩 덴마크 아줌마나, 외국 분들을 만나면 십년지기 친구처럼 수다를 떤다. 사람들을 가리는 나는, 부엔 까미노안에 다른 세상에서 들려오는 소리를 담는다. 자상한 ‘스페인 남편’처럼 한국 남편도 삼세세끼를 다 해결해 주면 얼마나 좋을까. 우리는 서로의 무늬를 잘 알고 있다. 가끔은 흔들려도 괜찮다. 눈을 들어보면 ‘스페인 남편’이 함께 걸어가고 있으니까. 까미노는 위로부터의 선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