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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광훈 Apr 19. 2024

사람은 둥글게, 삶은 뾰족하게

중요한 것이 중요해지게 하는 법

나는 대학생 시절에도, 취직을 한 이후에도 소위 말하는 모난 돌이었다. 모난 돌이 정 맞는다고, 그래서 나는 항상 정을 맞았다. 감사한 일이었다. 그 정도로 정을 맞아도 아직 모난 부분이 불쑥불쑥 튀어나오니, 안 맞았다면 어땠을 지. 사람은 모름지기 둥글어야 한다고 하지 않는가. 


그런데, 다국적 기업에서 전략 마케팅을 담당하게 된 시절부터 "둥근 사람이라고 해서 둥글게 살아야 할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현대 마케팅의 핵심을 한 마디로 요약하면 "뽀족함"이다. 회사도, 제품도, 서비스도, 뽀족하게 제공하려고 모든 마케터들이 노력한다. 그런데 왜 사람은, 직원은 뽀족하지 않고 둥글어야 할까.


요가복계의 샤넬이라고 불리는 캐나다 브랜드 룰루레몬은 자신들의 고객층을 이렇게 정의한다.


콘도 회원권을 보유하고 있으며 여행과 운동을 좋아하고 패션에 민감한 32세 전문직 여성


아니, 주 고객층을 이렇게 좁게 정했는데, 도대체 어떨게 그 많은 매출이 나는 걸까... 시장을 그렇게 뽀족하게 정하면 매출 예상이 너무 적지 않을까... 하는 의문이 드는 것이 당연할 것이다. 


나는 일주일에 두 번 정도 배드민턴을 친다. 나는 여자가 아니고, 32살도 아니며, 콘도 회원권도 없고 패션에는 전혀 민감하지 않다. 하지만, 내가 배드민턴을 칠 때 입는 운동복은 룰루레몬이다. 왜냐하면, 이 옷을 산 것이 내가 아니라 내 딸이기 때문이다. 


주 고객층이 소비력이 있다면, 시장이 좁은 것은 별로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방증이기도 하지만, 그 보다는 대상을 뽀족하게 잡아야 중요한 것에 집중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래서 "위대한 기업은 한 문장을 실천했다"라는 책에는 이런 말이 나온다.  


모든 것이 중요해지면 모든 것이 평펌하다


https://www.gainge.com/contents/videos/2242


모든 것이 동일하게 중요할 리 없다. 모든 사람이 내게 동일하게 중요할 수 없고, 모든 업무가 내게 동일하게 중요할 수 없다. 마치 새댁 증후군 환자가 시댁 식구들에게 좋은 평가를 받으려는 것처럼 회사 내에서 좋은 평가를 받으려고 노력할 필요도 없다. 뾰족하게 생활하다 보면 평가 받는 때가 온다. 뽀족하다는 것은 중요한 것을 중요하게 하는 비법 중의 하나다. 


그래서 나는 그저 나의 뾰족함을 보여주기에 집중하면 된다. 물론 언젠가는 둥글게 살 것을 강요받는 때가 올 것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직장인들에게 그 때가 지금은 아니다.


2080이라는 치약이 있다. 80세까지 20개의 건강한 치아를 유지하자는 세계 치과 협회의 방침을 반영한 상표인데, 출시 당시 굉장한 히트상품이었다. 이 당시 다른 치약은 세균 증식 억제, 미백, 상쾌함, 충치 예방, 시린이 개선, 치쥐질환 예방... 이렇게 끝도 없이 많은 효과를 자랑하고 있었지만, 2080이라는 단순한 메시지를 이겨낸 치약은 없었다. 


2080 치약이 물론 다른 효과가 없는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다만, 그 모든 것을 둥글게 드러내려 하지 않고, 하나만 뾰족하게 나타내기로 한 것이고, 그 결과 공전의 히트 상품이 되었다. 


전략 마케팅을 맡은 이후, 나에게도 나만의 2080 법칙이 생겼다. 나를 좋아 하지 않고, 내 방식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이 20%는 되어야 내가 효과적으로 뾰족하게 살고 있다는 뜻이라 보는 것이다. 20% 정도는 나에게 동의하지 않을 때가 내가 중요한 것을 중요하게 여기면서 살고 있다는 뜻이다. 


물론 이제는 내 위 보다 아래에 더 사람이 많으니, 매일 더 둥근 사람이 되어야 하는 건 틀림없다. 하지만, 사람이 둥글다고 해서 삶도 둥글어야 하는 건 아니다. 삶이 둥글면 도태되기 십상인 세상이 되었다. 그래서 오늘도 나는 이렇게 전도한다. 


사람은 둥글게, 삶은 뾰족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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