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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광훈 Jun 10. 2024

비싼 술 맛 없게 마시는 방법

비교하지 말고 음미하라

오랫동안 벼르고 벼르던 위스키를 땄다. 이름하여 Stagg Jr. 



위스키를 배운 지 2년 쯤 지나 이 술을 한 잔 마실 기회가 있었다. 그런데, 그간 마셔본 위스키 중 단연 으뜸이었다. 내가 술의 맛을 따질 실력이 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이 술은 내가 그간 마셔 본 위스키 중 압권이었다. 


이 술은 미국의 bourbon 위스키로, 미국에서 가장 유명한 증류소 중 한 군데인 Buffalo Trace 라는 회사에서 만드는 술이다. 아무것도 섞지 않은 위스키 원액을 담아 파는 것이라 도수는 보통 60도를 넘고 그만큼 강렬함은 있지만, 달콤한 향과 맛을 겸비해서 입과 목에 부담스럽지 않고 피니쉬도 훌륭하다.


하지만, 판매되는 물량에 비해 워낙 인기가 높은 탓에 구하기는 하늘의 별 따기라고 했고, 과연 그 후에 아무리 노력을 해도 캐나다에서는 구할 방법이 없었다. 


그래서 한국에 들어갔을 때 나는 시간이 나자마자 남대문 시장을 찾았다. 바로 이 위스키, Stagg Jr를 구하기 위해서다. 하지만 가격을 듣고 깜짝 놀랐다 - 한 병에 100만원. 지하를 다 돌아다녀도 가장 싼 곳이 95만원이었다. 고민했지만, 100만원을 술 한 병에 쓸 수는 없었고, 나는 그냥 캐나다로 돌아왔다. 


그런데, 작년 어느 날, 돌아가신 부모님의 위스키 collection을 처분한다는 분과 우연히 연이 닿아 이게 웬 떡이냐, 하고 얼른 집어왔더랬다. 하지만, 감히 딸 수는 없었다. 아직 캐나다에서는 50만원 이하에 살 수 있는 기회들이 있다고들 했지만, 내게 흔히 주어지는 기회는 아니니 나에겐 100만원짜리 술이었다. 어찌 쉽게 딸 수 있겠는가.  


그렇게 망설이던 어느 날, 과감하게 이 병을 열기로 했다 - "아끼다가 x 되는 경험을 어디 한 두 번 했나..." 이렇게 핑계를 대면서. 


혹시 예전에 마셨던 것과 다른 연도에 출시된 것이라 맛이 기대와 다르면 어떻게 하나...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향 부터 맛까지, 그 술은 역시 내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입 안에 느껴지는 맛에 집중해서 한 모금, 한 모금을 활홀하게 음미했다. 


그렇게 한 잔을 하셨는데, 한 잔으로는 살짝 부족한 듯 했다. 하지만, Stagg Jr를 한 잔 더 마시면 그 첫 느낌이 살지 않을 것 같고, 그럼 그 한 잔이 너무 아깝지 않나, 하는 생각에서 나는 조금 저렴한 술 중에서 두 번째 잔을 골라 보기로 했다. 그렇게 집어든 술이 Sazerac Rye였다. 


가격대는 5만원 정도이니 위스키치고 나쁜 가격은 아니었다. Stagg Jr 와 같은 증류소에서 만드는 위스키인데, bourbon은 옥수수가 51% 이상 들어가야 하는 술임에 반해 이 술은 rye가 51%이상 들어있다. 맛이 기억나지는 않았으나, 나쁜 인상이 아니었기에 100만원짜리 술 뒷 마무리용으로 쓰기로 하고 한 잔을 따랐다. 


그런데, 향이 장난이 아니다. 맛이 Stagg Jr 보다 얕고, 피니쉬도 짧았지만, 너무 향기로운 술이었다. 이게 Stagg Jr 보다 향이 더 좋은 걸까? 하는 생각이 들기에 향을 비교해 보기위해 Stagg Jr를 기어이 반 잔 정도 더 따랐다. 그리고 비교했다. 


그것이 실수였다. 확실히 향은 Sazerac Rye가 더 좋았다. 그걸 확인한 순간 내 마음속에서 Stagg Jr의 가치가 화-악 내려가는 것을 느꼈다. 


그 두 술을 비교하는 것이 아니었다. 이 술은 이 맛으로 즐겨주고, 저 술은 저 맛을 음미했어야 하는데, 나는 그 술을 비교했다. 그리고 그렇게 100만원의 가치를 5만원으로 만들었다. 그렇다고 5만원의 가치가 100만원이 된 것도 아니었다.


각각의 위스키가 가진 고유의 맛을 음미하려고 했다면, 분명 두 가지 위스키가 다 만족스러웠을 것이었다. 똑 같이 한 잔씩을 마셔도 음미했다면 두 잔 모두 만족스러웠을 귀한 경험을, 비교하려는 생각 때문에 두 잔 모두 불만족스럽게 만들었다. 


비교하지 말고 음미했어야 했다. 모르기는 몰라도 1,000만원이나 1억짜리 위스키를 마시더라도, 다른 술과 비교하기 시작하면 완전한 위스키가 있을 리 없다. 


그러니, 비싼 술 맛 없게 마시는 방법은 간단하다. 다른 술과 비교해가면서 마시면 된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캐나다에서 거주하는 한국인 1세들이 입을 모아 좋다고 하는 캐나다 생활의 강점은 나를 남과 비교하지 않아도 된다는 거다. 한국에서는 매일매일 스스로, 또 주위 사람들을 통해, 그렇게 남과 비교하는 삶이 힘들었다는 것을 여기 캐나다에 와서야 알게 되었다고들 하신다. 


그러니, 만족스러운 삶의 조건 중 하나는 비교하지 않는 것인지도 모른다. 대한민국의 중산증에 꼭 필요한 것도 나를 남과 비교하지 않고 그저 몰입하는 것이라 한다.  


https://www.gainge.com/contents/videos/3268


내가 마시는 위스키보다 비싼 위스키를 부러워 할 필요도 없고, 싼 위스키를 얕잡아 볼 것도 아니다. 모든 위스키는 특유한 장점이 있기 마련이니, 내 혀로는 지금 마시는 위스키의 장점에 집중해서 음미하면 된다. 


내가 가진 이성 혹은 가치라는 렌즈로 남을 자꾸 들여다 볼 필요는 없다. 남을 들여다 보기 시작하면 비교하게 되고, 비교하다보면 내 갈 길만 늦어진다. 그저 나를 보고, 나의 목적지를 보고, 그렇게 둘 사이에 필요한 것을 채워 나가면, 그것이 나라는 위스키를 온전히 음미하는 길이다. 


음미하기로 마음 먹는다면, 우리 모두 참 비싼 술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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