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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광훈 Oct 24. 2024

캐나다의 변호사 등용문, OCI

붙거나, 혹은 떨어지거나

예전에 캐나다 대형 로펌들 위주의 채용박람회에 대한 글을 보고, 채용 박람회 자체에 대한 좀 더 자세한 설명을 해 달라는 요청을 몇 분이 주셨다. 


캐나다 온타리오 주에서 대부분의 대형 로펌들은 변호사 자격증을 딴 후에 변호사들을 뽑는 것이 아니라, 쓸만한 학생들을 미리 몇 배수로 뽑아놓고 2-3년 써 보고서는 그 중 괜찮아 보이는 후보들을 변호사로 채용하는 경우가 많다. 대우 좋은 대형 로펌이라면 1.5-3배수 정도는 뽑아 놓고 시작하는 것이 일반적이라, 로스쿨 학생 때 뽑히지 못하면 나중에 변호사가 된 뒤에 대형 로펌을 가기는 쉽지 않다. 


이 채용박람회를 OCI, On Campus Interviewing 이라고 한다. 


글자 그대로, 로펌들이 각 로스쿨에 방문을 해서 로스쿨 학생들 면접을 실시하는 것이고, 그래서 학생들 입장에서는 매우 편리한 제도다. 캐나다 로펌 뿐만 아니라 다국적 로펌들도 대부분 참가하니 더욱 좋은 기회다.


OCI 날짜는 로스쿨별로 다른데, 보통 각 로스쿨의 career service 관련 부서를 통해 각 로펌의 채용 공고가 학생들에게 공지된다. 한국 회사들의 일반적인 채용 공고와 마찬가지로 이 공고에 각 로펌이 요구하는 인재상이 기술되고, 제출할 서류가 나열된다. 이 서류들을 제출하면 OCI 날짜 전에 각 로펌들이 서류 전형을 통해 면접볼 후보들을 추리고, 이렇게 추려진 후보들을 대상으로 OCI 기간 중에 면접이 이루어진다. 


OCI 는 기본적으로 2학년 여름 방학 때의 인턴자리를 구하는 기회다. OCI에서 면접을 통과한 후보들을 대상으로 다시 2차 면접 일정이 잡히고 (이를 call back이라고 한다), 이 과정을 통과하면 2학년을 마친 후 여름 인턴으로 채용이 된다.  


이 때가 로스쿨 학생들의 1학년 학점이 처음으로 외부에 공개되는 때다. 보통은 각 학교에서 상위 15% 이내에 들어야 면접을 보게 될 확률이 높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리고, 이 때 면접을 거쳐 채용이 된 학생들의 절반 이상이 졸업 후에 해당 로펌에 변호사로 채용이 되기 때문에, OCI에서 여름 인턴으로 채용이 되면 다시는 성적을 공개하지 않을 확률이 높다. 다시 말하면 2학년, 3학년 성적은 드러낼 필요가 없다는 뜻이다. 


그래서 대부분의 로스쿨 1학년 학생들이 1학년 학점에 목숨을 건다. 


1학년 학점이 좋으면 3학년 때 D를 받아도 별 문제가 없는 경우가 많고, 1학년 학점이 나쁘면 2학년, 3학년 때 다 A를 받아도 대우 좋은 대형 로펌에 들어가기가 너무 어렵다. 


하지만, 학점이 다는 아니다. 학점이 좀 떨어져도 에베레스트 등반이나 모의 법정 우승, 자원 봉사 경력 등을 인정받아 합격하는 경우도 꽤 있다. 그러니, 자신을 어떻게 포장하느냐가 중요하다. 


OCI에서 로펌들은 각 후보의 이력서를 검증하는 것과 더불어, 각 후보가 자신들의 로펌과 얼마나 잘 맞을지 (이를 fit이라고 한다)를 주로 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래서 일단 본인의 이력서는 달달 외워 가야 하고, 각 로펌별로 제출된 서류도 반드시 챙겨가야 한다. 인터뷰가 많았던 동기 하나는 A 로펌 인터뷰를 가면서 B 로펌에 제출한 이력서를 들고 갔다고 한다. 로펌별로 맞춤형 이력서를 제출한 상황이라 너무 당황해서 잘 답변을 할 수 없었다니, 이런 일이 생기지 않도록 세심하게 신경써야 한다. 


보통 각 인터뷰는 30분을 넘지 않는다. 하지만, 여러 로펌과 인터뷰를 하게 되는 경우, 각 로펌별로 시간 약속을 잘 해야 하는데, 10시, 10시 30분, 11시... 이런 식으로 너무 빡빡하게 일정을 잡으면 다음 로펌 미팅에 늦어지는 경우도 있고, 그런 경우는 좋은 인상을 남기기 어려우니 충분한 여분 시간을 인터뷰 사이에 두어야 한다. 


복장도 중요하다. 정장이 기본이다. 학생이니까 이해해 주겠지... 라는 생각은 버려야 한다. 이 대목에서만큼은 한국의 대기업 입사 면접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좋다. 


가장 흔하게 물어보는 질문 중 하나는 "왜 우리 로펌에 지원하는가?" 인데, 이와 함께 인터뷰 마지막에 "혹시 궁금한 것이 있는지?" 라는 질문도 빠지지 않는다. 보통 첫 번째 질문에 대한 답은 잘 준비하는데, 두 번째 질문에는 "달리 질문 없다"라고 대답하는 실수를 범하는 경우가 많다. 두 번째 질문이 사실 나의 관심을 보여주기에 더 적합한 기회이니 반드시 준비해 가야 하는데, 당연한 얘기지만 로펌의 웹사이트에 이미 답이 나와 있는 질문은 안 하느니만 못하다. 


그리고 '아무리 궁금하더라도 연봉과 관련된 질문은 하지 말라'는 지침이 암묵적으로 학생들 사이에서 전승되는데, 사실 OCI에 올 정도의 로펌이라면 어디를 가도 섭섭하지 않은 대우를 해 줄 것이므로 굳이 물어보지 않아도 된다. 


대형 로펌에 가고 싶은데 혹시 OCI에서 좋은 결과를 얻지 못해도 실망할 필요는 없다. 


2학년, 3학년 때 좋은 성적을 받아 졸업 후에 취업하는 길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모든 대형 로펌이 OCI 에 참여하는 것은 아닌데, OCI에 참여하지 않는 로펌들 리스트는 career service 관련 부서에서 알고 있으니 리스트를 구해서 이력서를 내기 시작해도 된다. 또 OCI 에서 대형 로펌들과 인터뷰를 해 본 경험은 나중에 다른 대형 로펌이나 중소형 로펌에 지원하는 경우에도 큰 도움이 된다. 


그래서 대형 로펌에 관심이 없더라도, 로스쿨 학생이라면 꼭 OCI에 도전해 볼 것을 추천한다. 


행운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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