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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광훈 Oct 21. 2024

한강, 노벨상, 역사, 그리고 백승수 단장

단장이 우선해야 하는 건 구단의 이익이다.

얼마 전에 한국 작가로는 최초로, 게다가 아시아인 여성으로는 최초로, 한국의 한강 작가가 노벨 문학상을 수상하는 영예를 안았다. 나처럼 외국에 나가 사는 한인들에게는 정말로 큰 자부심이 생기는, 속된 말로 "국뽕"을 느낄 수 있게 해 주는 사건이었다. 


온 국민이 즐거워 할 줄 알았는데, 뜻밖에도 그건 아닌 듯 하다. 한강 작가의 작품 세계에 동의하지 않는 분들이 스웨덴까지 가서 한강 작가에게 노벨상을 준 것을 항의했다니 말이다. 


그 소식을 들으니, 몇 년 전에 방영된 드라마, "스토브 리그" 가 떠올랐다. 프로야구의 동절기를 다룬 드라마고 꽤 인기가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극 중에 이런 장면이 있다. 


야구팀 "드림즈"에 새로 부임한 백승수 단장은, 비록 개인 성적은 우수하지만 독선적이고 팀의 화합이나 팀의 성적에는 도움이 되지 않는 것으로 판단되는 선수 임동규를 트레이드하려고 한다. 이 때 팀을 나가고 싶지 않았던 임동규 선수는 앙심을 품고 폭력배를 동원해서 단장인 백승수를 폭행하는데, 폭행을 사주한 것이 누구인지 알게된 드림즈의 이세영 운영팀장이 경찰에 신고하려고 하자 백승수 단장이 이렇게 말한다.


이세영: 그럼 제가 대신 신고할 거예요. 청부 폭행으로.
백승수: 그거 하지 마세요. 절대로.
이세영: 왜요?
백승수: 아니, 어떤 단장이 자기 팀에서 제일 비싼 선수를 경찰서에 넘깁니까? 곱게 키워서 비싸게 팔아야 돼요.


백승수 단장은 결국 경찰에 신고하지 않고, 아주 비싼 댓가를 받고 임동규를 트레이드하는 데에 성공한다. 하지만, 사실 트레이드에 성공했는지 실패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건 백승수 단장은 청부 폭행을 당한 상황에서도 개인의 감정을 배제하고 단장으로서 구단의 이익이 무엇인지를 먼저 생각하고, 구단에 이익이 되는 최선의 길을 택했다는 거다. 


노벨문학상이 갖는 의미는 사람마다 다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아무리 작게 보아도 노벨상 수상자가 한국에서 나온 것은 한강 작가 개인 뿐이 아니라 대한민국 문학의 위상을 높이는 일임에는 틀림없다. 


한강 작가의 작품 세계가 누군가의 정치적 신념과 맞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은 이해가 된다. 그러한 차이가 역사 왜곡으로 보이고, 이로 인해 분노할 수도 있다는 부분도 이해는 된다.  


하지만, 스웨덴에 가서 한강 작가의 노벨상 수상에 항의했다는 건 조금 다른 문제다. 그건 폭행을 당한 백승수 단장이 구단의 이익보다 개인의 감정을 내세워, 경찰에 임동규 선수를 고발하는 것에 다름 아니다. 


적어도 "역사 왜곡"이라는 커다란 시각에서 문제를 접근하는 분들이라면, 이세영 운영팀장처럼 시시비비를 가리는 데에 주력하는 것을 넘어서서, 어떤 행동이 대한민국에 도움이 될 지도 함께 생각해 주셨으면 좋았겠다는 생각이 든다. 


사실, 한강 작가의 시각에 반대하는 분들에게도 이번 노벨상 수상은 기회일 수 있다. 한국에서 나온 노벨 문학상은 더 많은 한국 작품을 다른 언어로 번역되게 할 것이고, 그런 작업은 문학의 완성도를 따지지 그 작품이 좌인지 우인지를 가리지는 않을 것이니, 앞으로 각각의 정치적 소신을 외국에 알릴 기회는 더 늘어날 것 아니겠나. 좌도, 우도, 자신들이 선호하는 색을 지닌 작가를 응원해서, 다음 노벨 문학상을 받도록 경쟁하면 될 일이다. 


대한민국 국민 모두가 백승수 단장이 되는 그 날을 기대한다. 이번에 일어난 일련의 사건들이 한강 작가를, 다른 한국인 작가를, 한국 문학을, 앞으로 더 크게 키워서 비싼 값에 팔 수 있도록 다 같이 대한민국의 단장으로 고민해 보는 계기가 되기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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