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가끔 아무렇지 않게 말한다.
"다 늙었는데 이제 뭐가 있겠어."
"그냥 하루하루 사는 거지."
그 말들은 늘 대수롭지 않게,
밥 짓다 말고, TV를 보다가,
대화 중에 툭 하고 떨어진다.
마치 이미 오래전에
스스로 정리해 둔 결론처럼.
그저 나이 들면 다들 그렇게 말하는 줄 알았다.
조금은 쓸쓸한 농담이거나,
어른들이 세상을 견디며 붙이는
습관 같은 말이라고 넘겼다.
그런데 나는 그 말이 싫었다.
엄마의 미래가
너무 쉽게 접히는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앞으로’라는 단어를
엄마는 더 이상 쓰지 않는 사람처럼 보였다.
계획도, 기대도,
아주 작은 욕심조차도...
이미 다 지나간 일처럼 말하는 얼굴을 볼 때마다
나는 설명할 수 없는 불안 속에 머물렀다.
엄마의 시간이
지금 이 자리에서 멈춰버린 것 같았다.
여전히 하루를 살아내고 있고,
여전히 웃고 있고,
여전히 나를 먼저 걱정하는데도
정작 자기 인생에 대해서는
넘길 다음 페이지가 없다고
조용히 말하는 사람처럼 느껴졌다.
그때부터 나는
엄마의 미래를 대신 살피기 시작했던 것 같다.
대신 걱정하고,
대신 계획하고,
대신 조심하라고 말하기 시작했다.
아마 그래서였을 것이다.
엄마가 불편한 다리로 뛰면 화가 나고,
짜게 먹는 모습을 보면 불안해지고,
아픈 걸 가볍게 넘길 때면
나도 모르게 목소리가 커졌던 이유는.
나는 엄마가
‘앞으로 뭐가 있겠어’라고 말하는 사람이 아니라
아직 남아 있는 시간을
자기 것이라고 느끼는 사람이길 바랐다.
하루를 견디는 사람이 아니라,
하루를 선택하는 사람이기를.
하지만 그 바람은
어느새 통제가 되어 있었고,
사랑은 돌봄이 아니라
관리가 되어 있었다.
엄마가 던진 그 말은
미래를 내려놓겠다는 선언이었을지도 모르고,
그저 오늘을 충실히 살아가겠다는 방식이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그 말을 붙잡고
엄마의 남은 시간을
내 책임으로 만들어버린 채
살아왔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