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날 저녁을 먹다 말고, 엄마는 누군가의 이야기를 꺼냈다.
“그 사람 성격이 이상해서, 주변 사람을 힘들게 했대.
너도 봐서 알지만 조금 까탈스러운 것 같지 않았니?”
숟가락을 드는 손이 잠깐 멈췄다.
엄마는 김치국을 한 번 더 떠주며
그 말이 대수롭지 않다는 듯
아무 일도 없다는 얼굴로 식사를 이어갔다.
대화는 거기서 끝났지만
그 말들은 이상하게도
식탁 위에 남아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이상한 건,
그 말을 한 사람이
내가 아는 엄마라는 사실이었다.
평생 남을 함부로 대하지 않았고,
손해를 보면서도 참는 쪽을 선택해온 사람.
착한 심성이라는 말이
가장 잘 어울리는 사람인데,
왜 이런 말들을 하게 되는 걸까.
문득 이런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삶에서 성취와 보상이 줄어들수록
사람은 남의 말을 많이 하게 된다고.
소소한 안부도, 칭찬도, 인정도,
더 이상 돌아오지 않을 때
말은 내 삶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삶을 향해 흘러간다고.
그래서일까.
엄마들이 남을 흉보는 건
여유가 없다는 신호일 때가 많다던 말이
그제야 이해가 됐다.
행복하고, 자기 삶이 충분하다면
굳이 남의 이야기를 꺼낼 이유는 없다는 말도.
그럼 엄마는 지금
어디쯤 서 있는 걸까.
나쁜 사람이 아니라서,
오히려 더 많이 참고 살아온 사람이라서
이런 말들로만
마음을 풀고 있는 건 아닐까.
요즘도 엄마는
가끔 누군가를 흉보는 말투로
말을 꺼낸다.
그럴 때면 나는
그 말의 옳고 그름보다
그 말이 나오기까지의
엄마의 하루를 떠올리게 된다.
누군가에게 들려줄
자기 이야기가 없는 날,
아무도 묻지 않은
자기 마음이 쌓인 하루 끝에
엄마의 말은
다른 사람을 향해 흘러간 건 아닐까.
엄마를 행복하게 해줘야 할 의무가
나에게 있는지는 아직 모르겠다.
다만 분명한 건,
엄마의 공허를
내가 대신 채울 수는 없다는 것,
그리고
그 사실을 인정하는 게
엄마를 외면하는 일은 아니라는 것.
언젠가는
엄마가 남 이야기가 아니라
자신만의 이야기를
조금 더 자주 꺼낼 수 있기를 바란다.
그날이 오기 전까지는
나는 다만
엄마의 말을
조금 다른 방향에서
들어보려 한다.
흉으로 듣기보다,
지친 마음의 신호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