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에게서 톡이 온다.
대부분은 비슷한 문장으로 시작한다.
“미안한데…”
그리고 한 줄을 띄운 뒤에
“이거 인터넷으로 좀 주문해줄 수 있을까?
인터넷으로 사는 게 더 싸다더라.”
이모티콘도, 느낌표도 없다.
부탁은 늘 조심스럽고
미안함은 문장 맨 앞에 놓인다.
우리는 같이 살지 않는다.
그래서 엄마의 부탁은
목소리가 아니라
문자 속 말줄임표로 도착한다.
잠깐 망설였다가 보낸 것 같은 문장,
몇 번 고쳤을 것 같은 띄어쓰기.
나는 톡을 읽고 바로 답장을 한다.
“응, 링크 보내줘.”
그렇게 간단한 말인데
엄마는 꼭 다시 답한다.
“고마워. 번거롭게 해서 미안해.”
휴대폰 화면 위에서
엄마는 자꾸만 작아진다.
부탁은 요청이 아니라
허락을 구하는 말처럼 보이고,
미안함은 늘 필요 이상으로 길다.
장바구니에 담긴 물건을 결제하면서
나는 생각한다.
엄마가 어려워하는 건
인터넷이 아니라
‘도움받는 위치’가 된 자기 자신일지도 모른다고.
예전엔 반대였다.
엄마는 우리에게
무엇이 필요한지 묻지 않아도 알았고,
미안하다는 말 없이
모든 걸 해주던 사람이었다.
그런 사람이
이제는 작은 부탁 하나에도
톡을 보내기 전에
미안함부터 꺼내놓는다.
나는 일부러 가볍게 답장을 보낸다.
“이건 내가 하는 게 훨씬 싸.”
“금방 돼.”
“신경 쓰지 마.”
그 말들이
엄마의 미안함을 조금이라도
덜어주길 바라면서.
하지만 엄마는 아마 끝까지
그 말을 붙일 것이다.
미안한데,
미안해서,
미안하지만.
다음에도 비슷한 톡이 오겠지.
그리고 나는 또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결제를 누르며
속으로는 이렇게 말할 것이다.
엄마,
이런 부탁은
미안해하지 않아도 되는 일이라고.
오히려
내가 엄마에게 할 수 있는 일 중에
가장 가벼운 일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