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순두부(하얗고 몽글몽글한 것이 꼭 순두부 같아서 내 맘대로 붙였다. 본인은 극도로 이 애칭을 거부하지만)의 이야기는 생산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다. 올해로 6년째, 매일 다부진 이야기를 만들어내고 있다. 처음에는 순두부의 말과 행동이 신기하면서도 웃기고 귀여웠는데, 3년쯤 되니까 어이없고 화가 나더니 이제는 기가 차면서 동시에 경이롭기도 하다. 어떻게 저런 생각을 할까.
나는 정적이고 심신 안정을 추구하는 요가를 좋아하는 데 반해, 순두부는 달리고 뛰고 펄쩍거리는 운동을 좋아한다. 어느 날은 어디서 짐볼을 구해오더니 열심히 몸을 굴리고 있었다. 거실 한 복판을 차지한 짐볼을 보면서 ‘나를 부르지만 않았으면’ 생각했다. 서재에서 책을 읽고 있었는데 갑자기 ‘자...기야....끅...나...소...끅...’하는 괴상한 소리가 들렸다. 들리지도 않던 작은 소리가 귀에 꽂혔을 때는, ‘큰일이다’는 생각이 저절로 들 정도의 목소리가 났다. 급히 달려나간 내 눈에, 짐볼 위에서 자유롭게 구르던 순두부가 목이 졸리고 있었다. 후드티를 입고 신나서 덜컹 누웠더니 그만 후드티의 모자가 짐볼 아래에 깔렸다. 뒤집어 진 채로 짐볼에 몸을 맡긴 순두부는 모자를 빼지도, 구르지도 못 한 채 목졸림을 당하고 있었다. 구해주었다. 멱살을 잡고 들어올려서.
아니, 왜 생각을 못 해? 당연히 후드가 아래에 깔리지!
그러게. 이제 생각해보니 그렇네. 그냥 일단 짐볼이 하고 싶어서..
이제 생각해보니?
그래, 순두부는 뒤늦게 깨닫는 자, 행동한 뒤에 생각하는 자였다. 나도 이제 생각해보니, 순두부와 나는 참 다른 점이 많다. 그 유행한다는 MBTI를 하면 네 가지 요소가 모두 각자 다른 방향으로 뻗어나간다. 순두부와 달리 나는 이사하기 3개월 전부터 내 머릿속은 이사할 집의 도면과 가구배치가 쫙 그려진다. 나는 몇몇의 친구와 깊고 오랜 대화를 즐기는 반면에 순두부는 매주 다른 손님이 집으로 찾아와 거나하게 술판을 벌인다. 나는 사건보다 나의 감정을 살펴봐주기를 바라지만, 순두부는 사건을 해결하는 데 에너지를 쏟는다. 나는 먹거리, 잠자리, 이동 수단까지 조사하고 여행을 떠나지만, 순두부는 일단 간다. 그냥 간다. 오늘 어떻게든 자겠지.
각종 사연으로 무수한 신혼여행 후보지를 모두 탈락시키고, 딱 하나 남은 캘리포니아로 떠났다. 많은 분들을 모시기 때문에 큰 계획성이 요구되는 결혼식은 내가, 그보다 덜 계획성이 요구되는 둘만의 신혼여행은 순두부가 맡았다. 내가 꿈꾸는 무언가가 분명했을텐데, 뭔가 어디서 주워들은 각종 것들을 상상하면서 들떴을텐데, 나는 매일 밤 커피를 마시거나 맥주를 홀짝이며 순두부 옆에 앉아 있어야 했다. 순두부가 다음날의 숙소와 이동경로를 조사하는 동안. 그렇게 우리는 12일 간 매일 밤 다음 날 일정과 숙소를 검색했다.
기가 막힌 순두부의 생각과 행동이 몇 년째 계속되던 어느 날, 문득 나는 경계를 무너뜨렸다. 올림픽 경기를 보면서 ‘와, 올림픽은 진짜 좋구나! 중간에 광고가 안 나와, 그냥 바로바로 결과를 알려줘!’라고 해맑게 말하는 사람. 여지없이 정리를 안 했다고 한참 화를 내는 나를 보면서 ‘너는 쥐방울만한 게 왜 이렇게 성질이 사악해?’라고 순수한 척 묻고선 아차 싶어서 이불을 머리 끝까지 덮는 사람. 티비에 삼겹살과 소고기가 나오면 지금 먹는 것처럼 얼굴 가득 행복을 느끼는 사람. 내 세계에는 없던 행동과 생각들, 그 모든 것이 신선했다. 계획이 없어도 과정에서 추억을 만들어 낼 수 있고, 즉흥적이어도 충분히 완결을 지을 수 있다. 낯설고도 그럴 수도 있는 처음이었다.
엉망인 상태로 잠들어도 아침에 집은 무너지지 않았고, 빨래를 개지 않고 두어도 옷은 잘 입을 수 있다. 설거지를 하지 않더라도 쓸 컵은 어디서든 나오고, 내일 당장 해야 할 일을 적어놓지 않아도 일단 내일이 되면 무슨 일이든 한다. 나와 순두부는 각각의 공간에 살면서도 서로에게 끊임없이 영향력을 행사한다. 내 덕에 순두부는 사무실이 깨끗하다는 칭찬을 후배에게 듣고, 짝짝이 운동화와 한쪽만 있는 이어폰도 금방 제 짝을 찾을 수 있다.
함께 한다는 것은 ‘나’ 이외의 것에 포용력을 기르는 것이었다. 여전히 자유분방한 순두부는 혼돈 속의 질서를 부르짖고, 정리정돈에서 안정을 느끼는 나는 순두부를 내 공간의 바이러스로 명명하면서도 어떻게 저떻게 하루를 정리한다. 오늘은 조금 더 늘어져볼 수 있다. 순두부 세계는 매 순간 첫 경험이다. 순두부 세계에서 나는 늘 처음해보는 생각을 배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