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가락 신경의 존재는 마치 공기처럼 보이지 않다가 이번 사고로 드러났다.
내 손가락인데 내 생각대로 움직여지지 않아!
대체 넌 누구냐!
오른쪽 가운뎃손가락 말이다.
마치 하이파이브를 하듯 쫙 펴면 이 녀석이 넷째 손가락 쪽으로 기대듯 쏠린다거나 죔죔 하듯 주먹을 쥘 때도 다 접히지 않고 이상야릇하게 감각되며 움직임도 뚝뚝 끊기듯 부자연스러운데, 모두 다 신경의 문제라고 한다. 지금도 오래 키보드를 누르기엔 손등과 손가락뼈 마디마디가 아프지만 이런 통증을 느끼며 비로소 내 손이 이렇게나 작은 뼈들로 이루어졌었구나. 이 작고 가녀린 것들이 서로 촘촘히 연결되어 세밀한 동작도 할 수 있었던 거구나. 온몸의 신경이 그동안 문제 없이 작동해 주었기에 이 한 몸 평범하게 살아갈 수 있었구나.
하나님의 설계란 얼마나 완벽했던가? 이렇게 매 순간 감탄과 감사가 교차하는 중.
우리는 고난을 겪어야만 남의 고통을 더 잘 이해할 수 있다고 배웠고 그렇게 성장하는 거라 들었다.
그런 거라면 굳이 성장 안 하면 안될까 ? 그러나 모든 것이 무탈하게 가지런할 때는 절대 알 수 없는 이미 수많은 기적들로 이루어진 일상이라는 절묘함. 그런 더 크고 아름다운 섭리를 깨닫게 하고 싶으신 거겠지.
다만 이 녀석, 그리 힘들이지 않고 꽤 이상한 모양새로 내게 항의하기엔 괜찮은 듯 보인다.
혹시라도 우연히 지나다 저의 가운뎃손가락이 접히지 않는 상태를 보시는 분들, 부디 오해 말아주세요.
저 그런 뜻 아닙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