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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은 Mar 18. 2023

옥수의 마지막 밤

mar. 15. 2023

이 밤, 온종일 내일 아침 7시부터 치러질 이사 준비에만 집중했다가, 문득 깨달았네요. 오늘 밤만 자고 나면 이 집은 영원히 다시는 오지 못하는구나. 네, 정말 오늘이 마지막 밤입니다. 집에 대한 변덕이 심했던 제가 가장 오래 산 집이고 그 시간 동안 꽤나 어른이 되었네요. ( 요즘 자꾸만 어른이라는 단어에 집착하는 것은 어른이 못돼 그런 거겠지요. 하하하 )
남서향이라 금빛 햇살이 고즈넉하게 집안 전체를 오래 물들이는 햇살 맛집, 아침으론 새소리로 잠을 깨고, 현관 밖엔 금세 오를 수 있는 초록이 흐드러진 뒷산과 당연한 맑은 공기, 정든 수영장과 초록마을, 단골 카페, 바로 10분 안팎의 제 주요 서식지들, 저에겐 부족할 것 없던 jade and water 옥 앤 수. 제가 참 좋아했습니다.


처음 이사 올 땐 몰랐죠. 심플하게 교회 옆으로 오고 싶어서 택한 이 집이 저에게 옥처럼, 물처럼 반짝임과 치유를 줄 집이었단 걸, 오래도록 있고 싶었는데 여기까지가 인연인가 봅니다. 7년 조금 넘게 자연에 둘러싸여 만족하며 살았어요. 감사의 마음으로 이 집에 살면서 만나게 된 인연들, 추억들, 사건 사고들 모두 빛나는 상자 속에 넣어 잘 보관할게요. 계속 이어질 사람들이라면 그럴 테고, 인연이 아니라면 또 잠시 멈추겠지요. 이사 전 날 이리도 울적한 적은 처음이네요. 오래 살았던 집이기도 했고, 저도 나일 먹어서 더 그런 가 봅니다.^^


어릴 때 집은 그저 잠시 들렀다 가는 '환승역'같은 느낌이었다면, 이젠 정말 뿌리를 내려야 할 '도착지' 같은 느낌에 가까워진 것 같아요. 새로운 곳에서도 좋은 일들, 좋은 인연이 많기를 기대하고 기도합니다. 무엇보다 새로운 집에선 창작의 산물들이 세상 밖으로 많이 쏟아져 나오길, 보다 후회 없는 결정들을 할 수 있길, 그리고 마지막으로 인생의 다음 스테이지로 접어드는 문이길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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