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6-12에 쓴 글입니다.
오늘도 나른하고 느긋하게 수영장을 누비고 왔다.
낮 2시부터 3시까지는 자유 수영 시간이라 한낮의 햇살과 한가로이 수영하기에 딱 좋다.
나는 우리 동네 수영장을 참 좋아한다. 지상 1층에 위치해 수영장의 큰 창문을 둘러친 나무들의 '초록'과 그 사이로 비쳐드는 '햇살'이 윤슬로 빛나고 물속에서 반짝이는 빛 그림자를 잡으며 흡사 남국에 쉬러 온 기분이 들기 때문이다.
수영과 음악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상태'이다.
이 둘의 공통점은 다른 시공으로 '순간이동' 시켜준다는 것인데, 음악을 트는 순간 내 거실은 60년대 모타운도 됐다가 글라스톤 베리의 잔디밭도 됐다가 하는 것처럼, 수영도 공기가 아닌 물로 채워진 다른 세계, 다른 행성에 와 있다고 느끼게 해 주니 기분전환에 이만한 게 없다.
수영하는 일상은 내게 매일 떠날 수 있는 한 시간짜리 '여행' 과도 같으며 물속에서 하는 명상이 되기도 한다. 해녀처럼 잠수도 했다가 이리저리 헤엄치며 혼자 잘 노는 나를 누군가 본다면 꼭 유치원생 같다고 할지도 모르는데, 시간 여행까지 하게 해주는 취미야말로 최고 중 최고가 아닐까? 그래서 나의 버킷리스트 중 하나는 너무 거창해서 이룰 수 있거나 말거나 < 스피커가 내장된 수영장 >을 갖는 것이다. 캬캬캬 음악과 수영, 이 둘이 함께면 완벽할 수밖에 없지! 그리고 여름이 되면 그곳을 평냉 육수로 가득 채워 헤이엄헤이엄 ~ 응 아니야. 오늘도 저기 나른하게 누운 하루키 아저씨가 고개를 저으신다.
이곳을 좋아하는 또 다른 이유는 '옥수동 사람들'이다.
초등학생부터 호호 할머님들까지 전 세대가 이용하는데, 그게 참 좋다. 아이들이 까르르 웃고 조잘거리는 모습을 볼 때마다 내 어린 시절이 떠오르기도, 그 생기에 오후를 살아낼 힘을 얻기도 하며, 할머님들이 수영하시는 모습을 보면서는 ‘아 나도 늙어지면 저렇겠구나’ 하며 삶 전체를 압축해 마주할 수 있기에 시간의 유한함 앞에 더 겸손해지고 소중해지는 느낌이다. 가끔은 티비에서 봤다, 시집은 언제 가냐? 몸매관리는 어떻게 하냐? 살이 좀 올랐네?부터 요즘은 왜 티브이에 잘 안 나와? 등등 나의 사적인 부분까지 걱정? 관심? 주시는 그분들과 벌써 몸을 튼 이웃이 되었고, 자주 깜박하는 내게 '수영복 놓고 가셨습니다. ' 란 정겹고 웃픈 디엠을 보내주는 선생님들의 따듯함, ( 이들은 진심으로 물과 수영을 좋아하고 아이들을 사랑하는 게 보인다. ) 그 모든 것이 이 수영장을 좋아하는 면면이다.
수영이 일상의 큰 동력인 나는 일찍 배워둔 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모르겠다. 동급생들보다 작고 깡마른 초 3 여자애, 생긴 대로 저질체력이라 대회 준비가 한창일 무렵엔 다른 아이들처럼 오래 돌지 못하고 따듯한 자쿠지에서 파란 입술을 녹이며 한참 뒤처졌던 그 아이.... 는 다 커서 동네 수영장에서 "수영 좀 하시네요." 란 소리를 들으며 돌고래처럼 접영을 와푸와푸... ( 뇌피셜 아니고 의심스러운 분들은 옥수동 ** 수영장에 문의해 보시면 확인해 주실 겁니다. 쩝 ) 뭐 어쨌든 일주일에 3번 정도는 수영을 하는 어른이 되었다는 말씀.
어느 날 물 위에 하릴없이 떠 있으며 유독 수영이 인생과 많이 닮아있다는 생각을 했다. 동그랗게 몸을 말고 잠수를 할 때는 엄마의 자궁 속 기억이 날 것만 같고, 힘들어도 저 끝까지 꾸준히 가다 보면 어느새 다다라 있을 때나 배영을 할 때 일자로 가려해도 자꾸만 옆으로 샌다던지, 그런 순간순간들이 삶의 시적인 축소판 같다. 물론 단체 수영을 1시간가량 정신없이 돌면 이런 사색 따위는 할 수 없지만 자유 수영을 할 때 느끼는 고요함 속 깨달음들. 그래서 그 감정들을 써 내린 '수영 예찬' 곡이 이번 정규 앨범에 실릴 거란 얘기다.
내일도 물속에 들어가 세상 근심 물에 다 녹이고 와야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