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다 가진 것만 같았던 그러나 조금은 다른 시작
내가 합격한 해는 코로나가 전국적으로 퍼지기 시작한 때였다.
전국민이 마스크를 쓰고 술집은 10시까지만 영업이 가능했으며, 모든 대규모 모임이 중단된 상태였다.
그 당시 나는 발령을 아직 받지 못한 것이 아쉬울 뿐, 합격 생각만해도 방긋 웃음이 지어졌다.
바깥의 전염병에 대한 우려는 나에게는 먼 일처럼 느껴졌다.
평소에 그다지 사람을 많나지 않기도 했고 동호회같은 것도 하지 않으니 친구들과 다같이 술을 먹지 못한다는 것이 아쉬울 뿐이지 나눠서 먹으면 그만이지라고 생각했다.
다만, 공무원 연수원에 가서 교육을 받지 못한다는게 아쉬웠다.
보통 공무원이 되어서 동기들을 잘 알 수 있는 기회가 연수원에서 교육받을 때이기 때문이다.
코로나로 인해 나는 온라인 교육을 듣는 것으로 변경되었고, 교육생들 전원이 집에서 줌을 통해서 접속하다보니 겉보습따위는 신경을 쓰지 않았다. 그러나 침대에서 막 일어나 아무 준비도 하지 않은 모습을 보이긴 싫었기에 모두들 얼굴을 반틈만 내놓거나 마스크를 썼다.
덕분에 동기이긴 하지만 서로 얼굴을 아무도 모르는 상태에서 하나 둘씩 발령을 받게 되었다.
나는 운이 좋게도, 시청에 배정받게 되었는데 얼마전부터 구로부터 8~7급을 전입받는 형태가 아니라
직접 9급을 뽑는 방식으로 바뀌었다고 했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시청에 배정된 것이 좋은 결과이긴 했다.
구로 발령이 나면 보통은 행정복지센터에서 일을 하게 되는데, 각종 민원과 몸을 써야하면서 행정적 처리를 병행해야 하므로 8급 혹은 7급이 되어 시청에 오기 전까지는 상당히 고된 나날이었을 것이다.
(구에 발령받은 공무원님들을 비하하는 것이 아닙니다. 정말 고생하시는 것 알고 있습니다. 항상 뒤에서 응원하고 있어요!!)
그렇다고 시청에 발령받아서 행복한 나날을 보냈냐 하면 그것은 아니었다.
지금부터 이야기 하는, 그리고 발생한 사건들은 한치의 거짓이 없다.
믿기 어렵겠지만 사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