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어값에 팀장 체면값까지, 인생의 쓴맛은 덤이다.
발령받자마자 나에게 카풀로 갑질을 한 팀장이었지만,
어쩌겠는가 면직할게 아니면 잘 지내는 것이 가장 현명한 법인 것을.
다행히 갑질상사는 빠르게 포기하는 스타일이라서 뒤끝은 없었다.
'카풀을 해줬으면 좋았을텐데 아쉽다.'라는 악의 없는 순수악같은 사람이었다.
신규 직원이 오면 상사가 호구조사를 하는 것은 어느 회사든 비슷할 것이다.
똑같은 일상이 지겨울 때쯤, 신규직원이 들어오면 오롯이 신경이 그쪽으로 쏠리기 마련이다.
그때 당시에는 흡연자였는데, 팀장과 같이 흡연을 할 때면 가만히 담배만 태우기는 어색했는지 이런저런 것들을 물어보곤 했다.
고향, 결혼, 애인, 전직장, 학교 등등
나중엔 더이상 물어볼게 없었는지 할머니 안부까지 물어보는 지경이 이르렀다.
큰 아버지 중 한 분께서 할머니를 모시고 계셨는데, 당시 큰 아버지께서는 장어 양만장을 운영중이셨다.
할머니 이야기에는 형식적으로 무미건조하게 묻다가 큰아버지께서 장어 양만장을 한다는 것을 듣고는
표정이 싹 바뀌며 나에게 물었다.
팀장 : "야 장어 내가 기가 막히게 좋아하는데, 장어 잘키우시냐?"
931 : "네 나름 잘키우신다고 주변에서 그런다고 하더라구요. 팀장님 혹시 관심있으세요?"
팀장 : "안그래도 주말에 딸이 내려오기로 했는데 딸도 장어를 아주 좋아해. 2키로 정도 시켜줄 수 있을까?"
931 : "네 물론이죠. 일단 주문해드릴게요"
팀장 : "그래그래 일단 주문하고 나중에 계산하자고"
카풀은 부하직원의 호의를 이용하려했으니 그렇다치고
'장어는 내가 아닌 내 큰아버지에게 구매하는데 설마 모른 체 할까?'라고 생각했다.
'에이 설마'
그런데 불안한 예감은 왜 틀리지 않는걸까.
신기하게 그 뒤로 단둘이 담배를 피울 일이 생기면 은근 슬쩍 피하는 것이었다.
아니 부서에 흡연자가 셋밖에 없는데! 전에는 그렇게 같이 피자고 하더니!
다른 사람이 있을 때 돈달라고 하기는 좀 그렇고 안받자니 이건 아닌거 같고..
2일정도 지난 즈음에 팀장은 깜박했던 사실이 생각난 듯이 물었다.
"아참 저번에 말했던 장어값이 얼마라고 했지?"
말로는 바로 돈을 줄 것같았지만 태도는 그렇지 않아보였다.
더이상 미룰 수 없어서 마지못해 이야기를 꺼낸 모양새였다.
엎드려 절받기도 아니고 그렇게 피해다닐 때는 언제고.
나는 그냥 됐다고 말했다. 이미 기분이 상할대로 상했기 때문이었다.
어금니를 꽉 물며 앞으로 많이 시켜달라고 설날 선물이라고 했다.
아직 첫 월급을 받지도 않은 나는 7만원 선물을 되레 준 셈이 됐다.
그리고 다시는 이와 같은 거래는 절대 하지 않을 것이라고 속으로 맹세했지만,
이 장어선물로 인해서 또 다른 사건이 일어나고 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