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간독립 16 DECEMBER - 26 DECEMBER 2021
추종완
2005 올해의 청년작가상
2009 하정웅 청년작가상
추종완 작가는 회화, 판화 등 다양한 작품을 만들어내는 작가다. 영남대 조형대학 서양하과를 졸업했으며 영남대 조형대학 미술디자인학과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현재 회화전공 조교수를 부임 중에 있다. 1998년도부터 개인전을 지속하며, 1999년도를 기준으로 꾸준하게 다량의 그룹전 전시를 참여했다. 공간독립에서 그의 색다른 시도를 만나볼 수 있었다.
공간독립 - 대구 중구 공평로8길 14-7
룰리커피는 다섯 번 정도 마음을 고쳐먹고 나서야 찾을 수 있었던 카페다. 이곳을 방문하는 이는 대부분 차를 끌고 왔는데, 뚜벅이인 나로선 대중교통과 도보를 이용할 수밖에 없었다. 제대로 된 길인가? 싶은 길목을 따라 구불구불 들어오면 거대한 룰리커피가 있는데, 나름 고생한 보람이 있었다 싶을 정도로 외관부터 마음에 쏙 들었다. 외관 못지않게 이곳은 내부 역시 충분히 매력적인 공간이었다. 카페 안에 들어설 때 느껴지는 원두의 고소한 향내에 잠시 행복감에 젖어들고는 하는데, 이곳도 마찬가지였다. 들어서자마자 풍부하게 퍼지는 커피 냄새에 나는 한껏 들뜬 걸음으로 자리 하나를 차지했다. 들뜬 걸음을 달래며, 조용히 카페 내부를 살펴봤다.
예상한 시간보다 한 시간 가량 일찍 도착해 먼저 아이스크림 하나를 시켜놓고 주변을 어슬렁댔다. 평일에 방문했지만 생각보다 꽤 자리가 많이 차 있었다. 창가 너머로 기차가 지나다녔고, 끊임없이 들려오는 수다 소리와 커피 내리는 소리에 들뜬 마음을 좀처럼 주체하지 못했다. 정말, 정말 나는 카페를 사랑하는 사람이구나, 다시 한번 더 실감하게 된 계기이기도 했다.
까무룩 밤이 되자 유리창에 카페 내부가 반사되어 기차 행렬이 더 이상 보이지 않았다. 오후 시간대에 유유자적 스쳐 지나가는 기차를 보며, 나는 수다를 떠는 내내 흘깃흘깃 창 밖으로 시선을 빼앗길 수밖에 없었다. 나도 모르게 시선이 가는 사람을 운명처럼 만난 기분이다.
룰리커피가 커피 맛집으로 한창 알려지고 난 뒤에 커피가 맛있는 카페를 찾아 나서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평소처럼 좋아하는 동네에서 전시 구경을 하는데, 어딘지 모르게 낯설지 않은 로고 하나를 발견했다. 룰리커피의 시그니처라고 볼 수 있는 날아가는 새 한 마리, 어딘지 모르게 그 새와 닮아 있는 작품 앞에서 나는 아른거리는 커피 냄새를 쫓아다녔다.
삼덕동에 위치한 작은 전시 공간 <공간 독립>. 개인 갤러리와 마찬가지로 전시를 비정기적으로 여는데, 이때도 우연찮게 추종완 작가님을 뵙게 됐다. 처음으로 전시 공간에서 작가님과 일대일로 대면한 자리였다. 그 역시 사전 문의 없이 즉흥적으로 방문한 관객이 자신과 마주한 경험은 몇 없다며, 아주 운이 좋은 것이라고 했다. 제주 여행길에서 우연히 목도한 돌고래 떼, 그곳에서 제주 택시 기사님이 몇 번이고 운이 좋은 것이라 되뇌었던 말줄기가 떠올랐다. 희한하게 작품을 만나러 갈 때마다 운이 좋다는 이야기를 듣네, 싶어 내심 수줍기도 했다.
비닐봉지로 만든 위 작품은 저마다의 고유한 문양을 띠고 있었다. 어떤 것은 나무통 같기도 했고 또 어떤 것은 사람 옆모습 같기도 했다. 그중에서도 추락하는 이의 문양을 닮은 그림 하나에서 영화 <거인>의 축축함을 느꼈다.
최근 들어 내가 경험하는 것들은 또 다른 경험과 맞닿아있다는 생각이 든다. A라는 경험이 C라는 경험에게도 있고, F라는 경험이 J라는 경험에도 녹아나 있다. 수차례 방문한 카페고 전시고 여행지이지만, 갈 때마다 새로운 에피소드가 열린다는 것이 어쩐지 신비롭기까지 하다. 룰리커피라는 A 경험을 공간독립이라는 C 경험에서 상기하고, 거인이라는 F 경험을 다시 한번 공간독립이라는 C 경험에서 연결 짓는다. 돌고 도는 경험 앞에서 나는 또 한 가지의 신기한 경험을 하게 된다.
작가님의 설명을 줄곧 듣다가 작은 마당으로 뻗친 야외 전시 공간을 둘러보았다. 이곳에서는 설치 작품 하나가 놓여 있었는데, 우연찮게 작가님과 작품 얘기를 열띠게 나눌 동안 그 해 첫눈을 함께 했다. 나는 한참 반짝이는 눈으로 감히 운명 같은 것들을 떠올렸다. 처음 향한 낯선 공간에서 처음 마주한 낯선 작가님과 운명 같은 첫눈, 그곳에서 나는 너털웃음을 작게 터트리는 작가님의 옆모습을 한참이고 바라보았다. 젊은 날의 그가 궁금해진 순간, 운명이라고 부르고 싶은 충동이 입가를 간질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