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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6장. 많은 이가 죽어서도 함께 했다

대부분 사진도, 이름도 사라졌다

by 영 Young

“그들 중 일부를 기억할 단서는 묘지 등록 카드 한 장이 전부다.”

하와이 호놀룰루 시내 외곽, 누우 아누 애비뉴(Nuuanu Avenue), 오래된 한인 묘역 앞에 선 증손자는 조용히 중얼거렸다.

“증조할아버지, 여기에 계셨군요. 그리고 동지분들과 함께 잠들어 계셨군요.”

그는 손에 쥔 낡은 신문 사본을 펼쳤다. 「대한인동지회 1912년 회보」. 빛이 바래 희미해진 인쇄물 속에 몇몇 이름이 적혀 있었지만, 그 누구의 얼굴도 알아볼 수 없었다.

양재준의 기록은 대부분 사라졌으나, 그와 함께 독립운동에 몸담았던 동지들의 묘지 일부는 이곳에 남아 있었다. 이강춘, 박진서, 김화봉… 한때 독립자금을 모으고, 밤마다 태극기를 그리며 맹세했던 이들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사진도, 육필 편지도, 가족조차 남지 않았다. 어떤 이는 미국 시민이 되어 다른 이름으로 사라졌다. 어떤 이는 병원 뒤편 공동묘지 어딘가에 무명의 이방인으로 묻혔다. 또 어떤 이들의 무덤은 산사태와 지진으로 흔적조차 지워졌다.

오직 몇몇 기록만이 유령처럼 남아 전해졌다.

국민회 회계보고서(1920년 3월): “양재준 외 14인, 독립자금 헌납자 명단.”

동지회 연명서(1911년 6월): “조국을 되찾기 전까지 매달 급여 10% 이상 헌납을 맹세함.”

그러나 이들의 이름은 국가기록원에도, 족보에도 없었다. 간혹 80여 년 전 신문이나 장부 속에서 단편적으로 발견될 뿐이었다.

사라진 기록, 남겨진 질문만 남았다.

증손자는 하와이대 한국학 도서관 자료실에서 수십 권의 자료를 뒤적였다. 그러나 돌아오는 건 반복된 실망뿐이었다.

“사진은 분실했거나, 습기로 곰팡이가 슬어 폐기되었습니다.”

“이름은 영어로 불완전하게 기록돼 정확한 추적이 어렵습니다.”

“‘Yang Chai Choon’이 ‘Young’으로도 표기된 사례가 있습니다.”

시간은 너무 오래 흘렀고, 기록은 너무 일찍 버려졌다. 많은 가족은 조상이 누구인지조차 모른 채 현지화 속에 흩어졌다. 그리고 어떤 이는, 그 누구에게도 기억되지 못한 채 조용히 세상을 떠났다.

찾아 나선 중, 증손자는 오래된 기록에서 마침내 한 줄을 발견했다.

“1919년 3월 12일, 동지회 회원 일동은 태극기를 들고 하와이 차이나타운 중심에서 시가행진을 감행하였다. 주도자: 양재준 외 7인.”

그는 그 문장을 손끝으로 쓰다듬으며 중얼거렸다.

“그들의 사진은 사라졌지만, 그날의 행진은 분명히 있었다.”

그날 이후, 그는 그림자처럼 사라진 이름들을 하나하나 다시 적기 시작했다. 흩어진 동지들의 기억을 불러 모으며, 잊힌 역사를 되살렸다.

기억하는 자가 있어야 사라진 이름도

살아난다.

증손자는 국가보훈부에 제출한 자료에 이렇게 적었다.

“묘비도, 사진도, 기록도 불완전한 이들의 이름을 복원하는 일은 단순히 과거를 밝히는 작업이 아닙니다. 지금도 지워지고 있는 이름을 살려내는 ‘살아 있는 역사’입니다.”

그날 이후, 그는 증조부와 동지들의 모든 행적을 추적하고 기록하는 ‘이름 없는 독립운동가 조사사업’을 시작했다.

그리고, 오늘날 우리에게 묻는다

그들은 왜 그토록 치열하게 살았을까. 왜 고통스럽게 죽어야 했을까. 그리고 왜 아무도 그들을 기억하지 않았을까.

묘비 없는 이름들을 지금 우리가 불러주지 않는다면, 역사는 또다시 그들을 잊을 것이다. 그러나 단 한 사람이라도 기억하는 자가 있다면, 그들은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 그들은 다시 이름이 된다.

75년 만의 나타난 이름이었다.

그리고 마침내 잊히지 않은 증거가 드러났다. 75년이 지난 뒤, 증손자 양창병이 5년에 걸쳐 수차례 하와이를 찾으며 추적한 끝이었다. 그는 하와이 주정부와 보건부, 이민부, 한인회, 한국 영사관, 한인 교회, 그리고 수십 곳의 한인 공동묘지를 뒤졌다.

그러다 하와이대학 도서관에서 오래된 마이크로필름을 넘기다가 한 장의 신문 부고를 발견했다. 거기에는 분명히 ‘양재준’의 이름이 있었다.

그는 조용히 눈을 감으며 속삭였다.

“할아버지, 여기 계셨군요… 이 부고는 75년 전, 당신이 살아 계셨음을 증명하는 유일한 증거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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