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의 증인은 단지 날짜 하나뿐이었다.
1950년 4월 2일, 일요일. 와이마 병원(Waima Hospital). 새벽의 어둠은 병실 커튼 사이로 조용히 흘러들었다. 그 시간은 한 생의 마지막을 기록만으로 봉인하고 있었다.
Yang Chai Choon , 남. 76세. 출생지: 조선. 사망 원인: 결핵성 호흡부전. 사망 일시: 1950년 4월 2일 오후 12시 55분.
가족 연락처:동지회, 장래 희망 사항: 매장. 종교: 기독교
담당 의사는 망설임 없이 사망선고서에 서명했다. 이병원은 수년간 수많은 죽음을 맞아왔다. 조용하고 외로운 죽음은 한인들에게는 흔한 일이었다. 현지 2개 신문에 부고가 공고됐다.
YANG, CHAI CHOON. 76세.
1873년 6월 24일 한국에서 태어나 쿨쿠이(Kukui)가 12번지에 살았습니다. 1950년 4월 2일 오후 12시 55분, 지역 병원에서 세상을 떠났습니다.
가족 및 지인들은 오늘 오전 9시 이후 보트윅(BORTHWICK) 장례식장으로 연락 주시기 바랍니다.
장례 행렬은 오늘 오후 1시 15분에 영안실을 출발하여 한인 기독교회에서 장례 예배를 가질 예정입니다. 장지는 누아누(Nuuanu Cemetey) 묘지입니다.
고인은 한국동지회(Korean Dong Ji Hoi Society) 회원이었습니다.
부고문 게재 신문은
The honolulu Advertiser, 1950.4.5.(수), Honolulu Star-Bulletin , 1950.4.5.(수)는 하와이대학 도서관 마이크로필름으로 보관 중이다.
이것을 마지막으로 모든 자료는 묻혔다.
돌아가신 날짜만 남고, 삶은 사라지다
호놀룰루 시청 시민사망등록소(City Department of Vital Statistics)는 4월 3일 오전, 위 병원의 사망보고서를 접수받았다. 접수자는 잠시 ‘양재준’이라는 이름을 눈여겨봤다.
“음… Chal Choon Yang, Young? 조선 이름인가?”
그는 고개를 갸웃했지만, 다음 서류를 넘기며 금세 관심을 거두었다. 그렇게 양재준이라는 이름은 한 줄 기록으로 접수번호 37-4243으로 저장되었다.
그의 삶은 마치 줄임표처럼, 세 문장으로 요약되었다.
“조선 출신 남성, 하와이 노동자, 1950년 4월 2일 사망.”
그뿐이었다. 그가 누구였는지, 왜 하와이에 있었는지, 무엇을 위해 살아왔는지는 묻지 않았다. 이 죽음의 증인은 오직 ‘날짜’와 ‘기록’뿐이었다.
말소된 이름, 기억되지 않고 증명되지 않는 무명의 독립운동가로 기억에서 사라졌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그는 동지회의 연락망에 이름을 올린 활동가였다. 사탕수수밭 한인 동지회결성 당시 중심인물 중 한 명이었다. 매월 대한인국민회에 헌금을 보내던 철저한 조국 후원자였다.
그러나 1940년대 중반, 조국이 해방된 이후 그의 이름은 점차 기록에서 지워졌다.
“이제 나라가 생겼으니, 당신들도 조국으로 돌아가시오.” “예… 나는 반드시 내 가족 곁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모든 청춘을 바친 이 낯선 땅에서, 그는 끝내 귀국하지 못했다. 조국 정부도, 교민회도, 아무 데도 그의 죽음의 기록이 남아있지 않았다.
시신은 병원에서 동지회 호상부에 넘겨졌다. 장례식은 동지회에서 모두 주관했었다. 비석은 수양딸에게 맡겨놓은 상담액의 현금으로 하기로 했으나 찾을 수가 없다. 그리고 맡겨놓은 세탁소, 미국 한미승전 후원금, 독립의연금 등을 보관한 수많은 영수증, 수첩 각종 유품은 수양딸이 정리했었다.
그의 시신이 들어간 공간에는 단 하나의 문장도 적히지 않았다. 오직 공동묘지 관리실에 기록으로 남아있다. 그가 잠든 묘지는 민간법인이 영구 관리해주고 있다. 호놀룰루 시내에서 약 5km 외각지에 있다.
Oahu cemetery Plot275, Section14,/2233 Nuuanu Avenue, Honolulu, Haawail 96817
그렇게 한 명의 독립운동가가 ‘사라졌다.’ 누구도 꽃을 두지 않았고, 제를 지내지 않았고, 그의 이름을 되뇌지 않았다.
양재준의 묘지에는 비석 하나 세워지지 않았다. 그 누구도 그의 무덤을 알지 못했고, 세월 속에 철저히 잊혔다. 그러나 그로부터 75년이 지난 뒤, 증손자에 의해 마침내 다시 세상의 빛을 보게 되었다.
[역사 자료]
장례식 안내 부고 신문 실물사본(2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