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 로봇처럼 살았던 나의 과거와 교훈
아버지의 교육철학이 남긴 긍정적 유산
나는 아버지의 로봇이었다. 아버지 눈치를 살피며 아버지가 좋아할 행동만 골라서 했다. 책을 펴고 공부하는 척 흉내를 낸 적도 많았다. 왜냐하면, 아버지가 그것을 좋아하셨기 때문이다. 아버지의 칭찬이나 긍정적인 반응은 나에게 하나의 목표처럼 여겨졌다. 내가 원하는 것은 중요하지 않았다. 그저 아버지의 기대를 충족하는 것이 내 역할이자 책임이었다.
아버지는 엄격하시고, 어긋나는 행동을 하면 체벌을 하셨다. 호랑이보다 무서운 존재로, 우리 집의 절대적인 권위자였다. 형제들이 평화롭게 놀다가도 아버지가 돌아오시는 발자국 소리가 들리면 모두 얼어붙었다. 숨소리조차 크게 내지 못할 만큼 분위기가 얼어붙는 순간들이 많았다. 어머니도 아버지의 이런 엄격함에 조심스러워하셨다. 아버지의 권위는 집안의 질서를 유지하는 중심이었지만, 때로는 무거운 압박감으로 다가왔다.
아버지의 교육 철학은 분명했다. ‘귀한 자식 매 한 대 더 치고, 미운 자식 밥 한 숟갈 더 준다.’ 철저히 이런 신념을 바탕으로 우리를 교육하셨다. 아버지는 자식을 사랑하되, 그 표현 방식은 엄격하고 단호했다. 그의 방식은 아이들을 올바른 길로 인도하기 위한 것이었지만, 그 과정에서 형제들은 자율성과 개성을 잃어갔다. 나는 아버지가 하라면 하고, 하지 말라면 하지 않는, 그의 명령에 순응하는 ‘로봇 같은 인간’이었다. 형제들 역시 아버지의 지시에 반대하거나 어기는 것을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우리 집에서는 아버지의 말씀이 곧 법이었다.
이러한 환경 속에서 나는 점차 소신과 주관이 없는, 수동적인 성격으로 형성되었다. 무엇을 하고 싶은지 고민하기보다는 "아버지가 무엇을 원하실까?"를 먼저 생각했다. 그 결과 내 의견이나 생각을 내세우는 일이 거의 없었다. 학창 시절에도 나의 이런 성격은 큰 약점이 되었다. 남들 앞에 서면 주눅이 들어 말을 더듬기 일쑤였고, 발표나 토론처럼 의견을 적극적으로 표현해야 하는 상황은 두려움 그 자체였다. 친구들 사이에서도 나는 소극적이고 조용한 아이로 기억되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깨달았다. 엄격했던 아버지의 교육이 내 삶에 바르고 정직한 삶의 기틀을 마련해 주었다는 사실을. 나는 세상 앞에 자신을 정돈하고, 정직하게 행동하는 로봇 같은 체질을 가지게 되었다. 아버지의 방식은 비록 무서웠지만, 내가 도덕적으로 흔들리지 않고 올바른 선택을 하게 하는 기준이 되었다. 어릴 때는 이해할 수 없던 아버지의 말과 행동이, 시간이 지나며 점차 그 의미를 알게 되었다.
이러한 교육 방식을 나도 자연스럽게 자녀들에게 적용하게 되었다. 나는 아버지 방식이 싫었다고 생각하면서도, 자녀들에게는 같은 방식을 답습한 것이다. 아버지의 엄격함이 나를 올바르게 키웠다고 믿었기에, 나도 내 자녀들에게 그러한 가르침을 주려 했다. 자녀들은 내가 하라는 대로 따랐다. 결과적으로 정직한 인성을 가진 아이들로 성장하였지만, 그 과정에서 창의력과 도전 정신이 부족하지 않을까 걱정이 되기도 한다.
내 아이들에게도 가끔 아버지의 모습이 비치곤 한다. 하라는 대로 따르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며 안도감을 느끼는 동시에, 그들이 개성을 잃어가지는 않을까 고민하게 된다. 아이들은 내 지시에 따르는 것을 편하게 여길지 몰라도, 나는 부모로서 그들이 더 도전적이고 창의적인 사람으로 성장하길 바란다. 그래서 요즘은 아이들에게 조금 더 자율성을 주려고 노력 중이다. 내가 어릴 때 느꼈던 숨 막히는 분위기를 물려주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자식은 부모의 거울이다.’ 자식은 부모를 닮아가는 로봇 같은 존재다. 부모의 가르침이 바탕이 되어야 자녀도 바른길로 나아갈 수 있다. 그러나 여기에 창의력과 도전 정신을 더한다면, 부모와 닮은 바른 로봇이 아닌 더 나은 존재로 성장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과거에 아버지의 로봇으로 살았다. 그 시절은 때로는 힘들었지만, 나를 단단하게 만들어 준 시간이었다. 이제는 나의 아이들에게도 스스로 생각하고 선택할 기회를 주어, 그들이 자신만의 길을 찾는 더 나은 로봇이 되기를 바란다.
부모로서 나의 역할은 무엇일까? 그것은 아이들을 위한 길잡이가 되어주는 것이다. 그러나 아이들이 그 길을 스스로 걸을 수 있도록 믿고 기다려 주는 것 또한 중요하다. 과거의 나처럼 아버지의 명령에 의존하는 삶이 아니라, 자신의 주관을 가진 삶을 살 수 있도록 아이들에게 자유와 책임을 함께 가르치고 싶다. 이러한 균형을 이루는 일이 결코 쉽지 않지만, 부모로서의 중요한 도전임을 느낀다.
결국, 부모는 자녀에게 영향을 미치는 가장 중요한 존재다. 그리고 자녀들은 부모로부터 배우고, 닮아가며 성장한다. 부모로서 나는 아이들이 나를 닮되, 나보다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가기를 꿈꾼다. 로봇처럼 살았던 과거의 내가 지금의 나를 만든 것처럼, 아이들에게도 긍정적인 유산을 남기고 싶다.
나는 아버지로부터 배운 교훈을 바탕으로 아이들에게 조금 더 유연하고 열린 교육을 해 나가고 있다. 결국 중요한 것은 아이들이 스스로를 믿고 자신의 길을 선택하며 걸어갈 수 있도록 돕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