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딱좋은나 Jan 21. 2024

40대라 휘청여도 전진합니다.

기회가 된 선택의 순간, 찰라의 결정을 위하여

사회복지현장실습과목 완전 끝!!!!!!


이사와 아들의 입원, 아이들의 독감 릴레이 등

여러가지 개인적인 사정으로 힘들었던 12월.


정말 많은 걸 포기하며 이 꽉 깨물고 최선을 다했던 실습기간이 실습일지란 한 권의 책으로 거듭나며 3회차 대면 교육을 끝으로 이수 완료되었다.





토요일 이른 아침,

자는 애는 두고 일어난 애는 눈꼽도 떼기 전에 밥부터 먹였다.

자는 애가 일어나 먹을 아침식사 준비를 해놓고 간식 체크까지 한 후, 어른 없이 아이들만 있을 몇 시간을 대비하여 집안 단도리를 했다.


미덥지는 않지만 큰 아이에게 부탁과 당부를 했다.

그리고 혼자서 차를 몰아 대면 수업을 위한 서울나들이에 나섰다.


이사를 한 덕에 이전의 거리보다 멀어진 걸 깜빡했다.

출발시간이 늦어 도착예정시간이 빠듯하다.

마음이 급하니 악셀 위에 올려진 발에는 자꾸만 힘이 실리는데 토요일 아침 도로 사정은 그다지 좋지 않다.


어쩐지 비나 눈이 올 듯 잔뜩 흐린 하늘마저 걱정스럽다.

눈이 나쁜 나는 눈 비가 오는 날 운전하는 게 너무나도 싫다.

내 조급한 마음이 하늘에 닿은 것인지 다행히 신호가 잘 걸렸고 비도 오지 않아 제 시간에 교육장에 도착했다.


아휴! 다행이다!

숨 돌릴 시간도 없이 시작된 수업.

잘못 작성했던 서류를 교체하여 일지를 보완하고,

온라인 이수자들의 지식에 대한 염려가 큰 교수님의

공부 좀 하란 기원이 담긴 열정적인 수업도 들었다.


세 시간 후,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주차장으로 나오자 그제야 차갑다 못해 시린 날씨가 비로소 느껴졌다.

늦지않을 거라 긴장하며 부산을 떨어대느라 이 추운 날씨도 인지하지 못했었다.


송곳 끝이 박히는 듯 차가운 바람에 코끝 발끝이 시리고 온 몸이 스며드는 바람에 따끔하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히죽 웃음이 났다.

이 추운 날씨에도 내 마음은 뜨겁다.

게으르고 욕심만 많은 내가 이렇게 무언갈 시도하고 노력하고 있음이 자랑스럽다.

당장 돈은 안되지만 이렇게라도 뭘 하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나를 안도하게 만든다.


그래도 나, 내 삶을 꽤 열심히 사는구나 하며.










엄마아빠 딸로만 살며 아무 것도 신경쓰지 않아도 되었던 ,

그 때 공부를 좀  열심히 했더라면.

지금 이렇게 용을 쓰며 힘들게 구르고 있않았을테다.

좀 더 나은 직업, 좀 더 나은 여건을 고를 좀 더 나은 선택지가 있었을 테니까.


이제야 조금 후회가 된다.



"제 할 일은 알아서 하니까" 하고 나를 믿고 내버려두었던 내 부모님은 매 달 근근이 벌어 먹고 살기 바쁘셨다.

아쉽게도 가방 끈이 짧은 당신들이 보고 배운 세상이 좁디 좁아서,자식인 나에게 넓은 미래를 꿈꾸고 나아가법을 가르치지 못하셨다.

내 부모님들은 아주 작은 우물 안 개구리로 사셨기에 뭐가 넓고 좁은 것인지 조차 모르셨으니까.


어렸던 날의 나는 내 부모보다 더 나은 교육을 제공 받으며 우물 밖을 나오긴 했지만 청개구리 기질이 다분하였다.


의사가 되어라, 선생님이 되어라 하시며  당신들이 제시해 준  골(goal)을 머리로 받아들이지 못했고  가슴으로도 이해하지 못했다.

닿지 못할 그 골을 향해 왜 내가 발을 내딛어야하는지 그때의 나는 알 수 없었고, 알려하지 않았다.

그랬기에 목표 없이 남들처럼 남들과 같이 내딛는 걸음도 느려지거나 멈추기 일쑤였다.



내게 좀 더 넓은 세상으로 가는 길.

더 나은 길, 더 쉬운 길, 더  빠른 길알려주는 이가 없었다.

하다못해 맞다 틀리다 하고 방향을 알려준 이도 없었다.


그저 길을 터가며 가더라도 바른 길이어야 한다고 고집스레 알려주신 부모님을 나침반 삼아,

나는 혼자 배운 세상에서 혼자 결정하고 혼자 책임을 져가며 걸어왔다.

그래서 어린 내가 보고듣고느낄 수 있던 것도 남보다 넓지못한 딱 그 정도 수준까지였다.


남보다 잘 나지 못하면서 내 부모보단 낫단 생각을 하며 잘난 체하고 뻐기며 살았던 무지하고 자만했던 시간.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의 부모님은 모자라고 부족한 나를 그래도 자식이랍시고 대견해하고 기특해 해주셨다.


내 부모의 무식하고 무조건적인 사랑은, 넘어져도 벌떡 일어나 손바닥을 털어낼 정도로 나를 강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무식하고 가난한 부모라도 자식인 내가 손만 뻗으면 가장 가까이에서 일으켜주고 엉덩이 두들겨 다시 달리게 할 든든한 뒷배로 버텨주셨다.


그 덕에 나는 무지로 인해 휘청이며 둘러가더라도  방향만큼은 잃지 않을 수 있었다.







부끄러운 사실을 고백하자면  마흔이 넘은 지금까지도 나의 방황은 계속되고있다.

차라리 부산에 와라 애들 키워주마 할 내 부모가 있음에도

실패한 결혼에 목매달아가며 놓지 못하고 있고,

내가 가장이니 뭐니 하면서도 사실 오롯이 혼자서는 내 가정을 감당하지 못하고 있다.


내 삶은 여전히 흔들리며 흘러가고있다.

나는 여전히 어느 쪽이 빠른길인지 어느 길이 편한 건지 알 지 못한다.

정해진 답이 없는 내 삶을 누구라도 먼저 살아본 이가 없으니 당연한 것일 테다.


하지만 어린시절 나의 나침반이 되어준 내 부모가 있었듯,

지금의 날 지켜야할 가족과 해야할 일과 닿고 싶은 목표가 있다.

그래서 마구 흔들리더라도 중심은 지킬 수 있다.






그래!!

나는 믿고있다.


이렇게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시도하고 최선을 다하다보면, 어느순간 내 손에 기회는 쥐여져 있을 것이다.

지나고나서야 깨달았지만 선택의 순간 또는 찰라의 결정이 내게 온 기회였듯.



그것이 새로운 시작과 목표를 정하는 오늘 나의 마음가짐이다.



올해는 사회복지사 2급을 취득해 15년 뒤 올 지 모를 기회에 대비하겠다!






그동안 나는 나의 세상에서 제법 열심히였다.

그렇게 쉬지 않고 바른 길로 달리며 잘 해왔고

지금도 잘 하고 있으며 앞으로도 잘 할 수 있을 것이다.


나의 목표를 항하여 힘들어도 전진!







매거진의 이전글 슬프면서 기쁜 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