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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춘프카 May 13. 2023

기억 속 장면들

12일 부산의 한 책방에서 오은 시인의 '없음의 대명사'를 만났다.

하나. "세상에는 글을 잘 쓰는 사람은 많다. 다만 끝까지 쓰는 사람은 잘 없지." 2013년 8월의 여름날이었다. 한동안 우울감에 빠져있던 내게 선배는 그렇게 말했다. 무심하게 꺼낸 위로였지만 그 짧은 몇 마디가 계속 마음에 남았다. 그때쯤이었다. 매번 좋은 글을 써낼 순 없겠지만 끝까지 쓰는 사람으로 남겠다고  결심했던 때가.


둘. 첫 현장에서 만난 취재원을 기억한다. 이른 새벽 경남 창원의 한 빌딩에서 청소일을 하는 60대 A씨였다. 취재를 앞두고 선배들이 요구한 '성과'가 머릿속에 떠올랐다. '특별한 사연'을 찾아보라는 의도였다. 나름대로 준비한 질문지를 수첩에 적어두고 그를 쫓아다녔다. 하지만 질문할 타이밍을 찾을 수가 없었다. 거친 숨을 내쉬며 고층을 오가는 그의 일을 도와드리는 게 전부였다.


삼일이 지났다. 어느새 함께하는 업무가 익숙해졌다. 취재일은 까먹고 바닥을 닦고 있는데 "잠깐 쉴까요?"라며 A씨가 말을 건넸다. 우린 차가운 계단에 그대로 주저앉았다.


나는 미리 준비해  박카스를 건넸다.  그러자 "두서없이 이것저것 말씀드릴게요"라며 가슴속에 담아둔 사연을 쏟아냈다. 갑작스레 하늘로 떠나버린 아들 그와 동시에 경제적 어려움으로 극단적인 시도를 수차례 했던 이야기들을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가까운 사람들에게  이런 말을  하겠더라고요. 말하는 순간 분위기도 무거워지고. 그래서 입을 다물었죠."  침묵은 10년 이상 지속돼 이젠 무던함을 넘어 익숙해졌다고 했다. 그러면서 "기자님이니까 이런 얘기도 하네요. 오랜만에 가슴이 후련합니다"라고 했다.


그와 헤어져 돌아오는 길에 나는 울었다. 그 눈물은 슬픔의 감정이 아니었다. 그저 내가 하는 일에 대한 또 다른 의미를 찾은 것 같아서, 그 여운이 좋아서 바보처럼 울었다.




13일 새벽, 기억 속에 떠오르는 추억을 썼다. 선명하고도 흐릿하게 떠오르는 그때를 더듬었다. 대부분 사람과 문장, 여행 등이었다. 그중에서도 지금 내 삶을 이어가는데 영향을 끼쳤던 두 장면을 썼다. 서툴지만 계속 글을 쓰는 이유도, 매일같이 맨땅에 헤딩하듯 아픈 세상을 마주하는 지금의 삶의 동력에도 영향을 끼쳤으니까.


글쓰기로 우주정복을 꿈꾸는 브런치 작가들이 모여 팀라이트가 되었습니다. 팀라이트 매거진에는 매월 한 가지 주제를 선정하여 각양각색 이야기를 작가님들의 다른 시선과 색깔로 담아 갑니다.

이번 달 주제는 '추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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