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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맹포토 Oct 12. 2023

가로로 길게 본 풍경

파노라마 버전의 미덕을 느끼기

오늘은 내가 정말 좋아하는, 내 사진작업의 관점을 바꿔준 하나의 촬영 기법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려고 한다. 바로 파노라마 촬영.


사실 파노라마는 많은 분들께 보여드리기가 힘들었던 것이, 대부분 소셜미디어의 포맷과 맞지가 않는다. 그래도 이곳은 나의 파노라마 사진을 보여드릴 수 있는 좋은 기회 같다.


여기서는 아주 작은 요소로부터 커다란 풍경까지 가는 순서로 사진을 배치해보았다. 폰으로 보신다면 화면을 90도 돌리시고, 가로 세상으로의 여행을 함께 떠나봅시다!


사진 1. 여름의 개울가를 지나다 보면, 나의 시선을 항상 이끄는 자연의 모습 하나가 있다 : 세차게 움직이는 물과, 정지해 있는 무언가의 대비. 예를 들어, 여기서는 한 줌의 연약해 보이는 잔디가 세찬 물결에 맞서고 있다. 비록 이길 수 없더라도, 잎살의 회복력으로 버티고 있다. 내게도 이 촬영은 쉽지 않았다. 딱 적절한 셔터스피드를 찾아야만 하는데, 움직이는 물살은 충분히 보여주려면 셔터스피드가 어느 정도 길어야 하고, 식물의 움직임을 멈춰진 상태에서 포착하려면 또 적당히 짧아야 하기 때문이다. 인내심과 함께, 기술적 균형에 대한 훈련이었다. 파노라마 사진이라고 했을 때 추측 가능한 이미지와는 거리가 멀 수 있겠으나, 내가 촬영한 파노라마 사진 중 가장 찍기 어려웠던 것으로 기억한다.


사진 2. 한 발짝 뒤로 물러서서, 자연 스스로가 이 공간의 구석구석을 채워가는 방식에 대해 감사하는 시간을 가져보자. 꽤 높은 곳에 위치한 둥근 바위에 의해 만들어진 폭포는 이미 아주 흔한 풍경이 아닌데, 중요한 건 이 바위 아래 자라나고 있는 담쟁이덩굴이다. 덩굴은 여기 말고는 편안한 장소가 없다고 이야기하는 듯하다. 겨울에는 또 어떻게 보일지 궁금해진다. 물이 얼면, 저 덩굴은 얼음 속에 그대로 몸을 뉘일까?


사진 3. 한국에서 가장 유명한 폭포 중 하나인 토왕성 폭포다. 확실히 멋진 풍경을 자랑한다. 특별한 사진을 찍기에는 어려움이 있는 곳임에도 불구하고, 이 풍경 때문에 또 가고 싶어진다. 이 사진은 비가 쏟아지던 날, 무거운 하늘 아래 영양분을 잘 먹고 성장한 폭포의 모습이다. 물줄기로 시선을 이끌고자 두 그루의 소나무를 앞배경으로 활용했다. 다음 사진으로 넘어가기 위한 완벽한 예고.


사진 4. 여기서는 피사체를 찾아 헤매지 마세요! 이 사진은 모양과 질감을 담아본 것이다.  둥근 바위 vs 가늘게 꼬인 나무기둥, 부드러운 돌들 vs 힘줄이 많아 보이는 나무기둥들. 아주 크게 출력된 버전으로 상상하면, 사진 속 이 모든 세부 요소가 돋보이며 아름답게 뽐을 낼 것만 같다. 모든 풍경을 파노라마 비율로 잘라보는 작업은 필요 없을만한 정보를 시야에서 과감하게 없애도록 만들고,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중요한 측면에 집중할 수 있게 만들기 때문에 정말 좋다. 이 나무기둥을 보고 있는 것만으로, 내 손바닥에 저들의 갈라진 틈이 만져지는 느낌이다.


사진 5. 이 파노라마도 질감을 위주로 보여주지만, 여기엔 살짝 신비로움이 더해졌다. 국립서울현충원에서 춥고 습한 겨울 아침에 찍은 것인데, 이곳의 전체적인 풍경은 아주 경이로운 반면, 사진 속 안개가 이를 완전히 다른 차원의 풍경으로 전환시켜 버렸다.


사진 6. 이 사진은 정말이지 인상파 화가의 프레스코화 느낌을 준다. 빨강, 주황, 노랑이 어루만져진 이 사진에서는 가장 크게 우뚝 선 나무기둥의 질감 혹은 단풍잎이 만들어낸 카펫이 매력적으로 보인다. 하지만 나는 이 불균형적 색상들이 창조해 낸 전체적인 공간의 구성을 포착하는 데 더 집중했다.


사진 7. 이전의 가을 사진이 인상주의적이었다면, 이번엔 숲으로부터 먼발치 떨어져보자. 떠오르는 태양과 만나는 낮은 구름 속에서, 부분부분 자취를 감춘 단풍의 전체 모양과 색상을 조망할 수 있다.


사진 8. 춘천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산, 삼악산에서 태양이 떠오른다. 여기 빛과, 연무 위에서 반사되는 빛줄기는 빛과 그림자의 대비를 만들어 준다. 숨막히는 아름다움! 이렇게 파노라마 포맷은 또 한 번, 중요한 피사체에 집중하게 만들어주고, 나는 이 작업을 사랑하는 이유를 다시 한번 깨닫게 된다.


사진 9. 서서히, 도시 모습이 등장한다. 자연사진을 찍는 내게 도시의 풍경을 담는 게 흔한 일은 아니지만, 사실 공유하고 싶은 도시의 파노라마 사진이 있어서 여기 조금 풀어본다. 이 사진은 한겨울에 찍은 것인데, 아주 작은 진달래 덤불이 절벽에 매달린 채로 추위와 싸우며 살아있는 모습이 서울의 일출 앞에 자리 잡고 있다. 이 날 자신을 데워줄 햇빛의 한 줄기에라도 먼저 절박하게 닿고 싶어 하는 덤불을 보여주려고 해 봤다.


사진 10. 정말 행운으로 얻은 파노라마 사진. 함박눈이 빠르게 지나간 뒤, 눈이 조금 올 거라는 예보와 함께 촬영을 나갔던 추운 겨울날이었다. 하늘이 열리면서 태양빛이 도시 위의 눈발들을 환하게 비춰주는 모습, 얼마나 마법과도 같은 순간인가!


사진 11. 내가 파노라마와 처음 사랑에 빠지게 만든 사진이다. 쌀쌀한 늦여름 아침, 무겁게 펼쳐진 구름을 탈출한 태양이 거의 수평으로 도시를 비춰준다. 또 다른 마법의 순간...


사진 12. 긍정적이면서도 뭔가 영감을 주는 한 마디와 함께 이야기를 마치고 싶어서 이 사진을 가져왔다. 봄의 일출 사진인데, 그보다는 한 그루의 나무와 함께 지평선에서 먼 곳을 보고 있는 친구가 주인공이다. 희망의 메시지를 전달하고자 했다.


파노라마라는 멋진 포맷에 대한 이야기를 읽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파노라마는 자연을 아주 특별한 방식으로 포착하는 기회를 줍니다. 여러분 또한 파노라마 버전 사진을 통해 자연의 세부 요소와, 커다란 전체적 풍경을 흥미롭게 감상하셨기를 바랍니다. 제 유튜브 채널에서는 더 실감 나게 영상으로 저의 풍경사진 촬영 여정에 함께 하실 수 있어요. 인스타그램에도 더 많은 한국의 풍경 사진이 담겨있으니 많이 많이 들러서 감상해 주세요! 홈페이지 호맹포토의 Blog에는 다양한 풍경사진 촬영기가 영어와 프랑스어로도 작성되어 있습니다. 저의 엣시(etsy) 에서는풍경사진 출력본 구매를 통해 제 작업을 지원해 주실 수도 있어요.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한국 자연사진 촬영에 대한 질문은 언제든지 아래쪽 댓글을 통해서 해주시고, 제 글도 공유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그럼 다음 여행에서 또 뵐게요.

아 비앙또! (À bientôt! : “또 만나요!”를 뜻하는 프랑스어)


*원고 번역 및 편집 : 김혜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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