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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가포르에서 차 없이 산다는 것

아반떼가 2억 인 나라

by 문핑

서울에서도, 제주에서도 어디를 갈 때면 언제나 차를 타고 이동했다. 한 여름에는 시원한 에어컨 바람을 틀고, 겨울에는 히터를 틀어 따뜻한 공기로 가득 채운 채, 짙은 선팅 필름이 붙여진 창문 너머의 풍경을 바라보며 그 안에서는 배치된 계절을 느끼고 있었다.


차 없이 산다는 것은 계절을 오롯이 느끼며 땅을 밟아 걸어 나갈 수 있는 낭만일 테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차 없이 산다는 것에 대한 로망은 여러 불편함을 마주해야 하는 현실 때문에 쉽사리 용기 낼 수 없는 선택이었다. 하지만 이러한 현실적인 문제는 가끔 극단적인 방법으로 해결 수 있다.


"아반떼가 2억이라고요?"


정말로 그렇다. 아반떼 하이브리드 차량이 싱가포르 달러로 $187,999~$193,999이다.

한화로는 2억~2억 1천만 원이 조금 넣는다.

십 년 전 즈음에 소나타의 가격이 1억이 넘는다는 이야기를 들은 것 같은데, 이 정도일 줄이야 누가 상상이나 했겠는가.

나는 한 번도 아이를 셔틀버스에 태워 기관이나 학원을 보낸 적이 없었다. 애초에 차를 구매하려는 의도도 아이의 등하교를 책임지기 위해서였다. 싱가포르에 있던 지인들은 차량 구매에 대한 나의 계획을 꽤나 의아해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얼마나 철없고 세상 물정 모르던 나였던가 싶어 부끄럽다.


싱가포르의 차량 구매 가격이 이토록 비싼 이유는 좁은 국토 면적에 비해 높은 인구 비율 때문이다. 따라서 이로 인해 초래될 수 있는 교통 혼잡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 정부에서는 개인의 차량 소유를 할당제로 관리하고 있다. 차량구매자가 10년 동안 차를 소유할 수 있도록 하는 일종의 허가증인 COE(Certificate of Entitlement)는 공급과 수요에 따라 가격이 변동된다. 하지만 공급이 매우 제한적이라 경매를 통해 구매하게 된다. 따라서 자동차 가격이 자동적으로 급격히 상승하게 되는 것이다.

이 외에도 Additional Registration Fee, GST, Excise Duty 등의 세금이 차량 가격에 부과된다.


렌트의 경우도 크게 다르지 않다. 싱가포르 최대의 차량 구매/렌트 사이트인 Sgcarmart에 따르면, 2019년도에 생산된 현대 아반떼 차량을 2년 동안 렌트했을 때의 비용은 월 $1,750 달러이고, 한화로는 현재 환율 기준 매 달 190만 원 정도를 부담해야 하는 금액이다. 차라리 한 달 내내 Grab을 이용하는 것이 오히려 저렴할 수도 있다.


실현하기 어려울 것 같았던 차 없이 사는 것에 대한 낭만은 싱가포르 입국과 동시에 펼쳐졌다.

그래서 나의 삶이 불편해졌냐고 묻는다면, 전혀 아니라고 자신 있게 대답할 수 있다.


아이는 오전 6시 57분에 집 앞에서 스쿨버스를 타고 학교에 간다. 덕분에 이른 오전에 운동을 하고, 집안일을 빨리 끝낼 수 있게 되었다. 어학원도 가고, 가끔 점심 약속을 잡기도 하고, 장을 보고 집으로 돌아와 저녁 반찬들을 만들 수 있는 시간까지 생겼다. 효율적인 삶이 가능해졌다.


주차 걱정을 할 필요가 없어졌다. 서울에서는 발레파킹이 가능하지만, 바쁜 시간대에는 만차로 인해 발레파킹 이용이 불가하여 공용주차장을 찾느라 약속에 늦을 때도 있었다. 뿐만 아니라 학원 라이드할 때면 눈치 보느라 주정차도 제대로 못 했다. 또한 예전에는 차가 주차되어 있는 곳으로 다시 돌아와야 한다는 생각 때문에 마음 편히 멀리 걸어가지도 못했지만, 차가 없는 지금은 발길이 닿는대로 걷는다. 그야말로 거리를 온전히 즐길 수 있게 되었다. 땅을 밟고 걷는 재미가 생긴 것이다.


Bus, Metro(싱가포르에서는 MRT라고 부른다), 그리고 Walking을 합쳐서 BMW라고 한다. 이를 통해 목적지로 갈 수 있다. 여기에 Grab(한국의 카카오택시 개념과 같다)이라는 교통수단을 이용하여 시간의 제약 없이 이동할 수 있다. 어디를 가든 차가 없다고 해서 걱정할 일이 없다. 이토록 풍족한 교통수단들이 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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