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가포르에서의 악몽
싱가포르의 장점을 떠올리자면 강력한 경제력과 안정성, 치안, 수준 높은 교육, 그리고 최상의 교통 인프라 등이 있겠지만, 또 다른 가장 큰 장점은 '헬퍼문화'일 것이다.
싱가포르 정부는 여성들의 경제활동참가율을 높이고, 인구 고령화에 따른 노인 돌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각 가정에서 비교적 저렴한 비용으로 외국인 여성 가사도우미를 고용할 수 있도록 제도적 기반을 마련하였다. 그리고 이 제도는 빠르게 자리 잡았는데, 이는 싱가포르의 식민지 시절부터 하녀라고 불리던 가사 도우미의 고용이 일반적이었기 때문이다.
싱가포르에서는 이 가사 도우미를 '헬퍼(Helper, Foreign Domestic Worker)'라고 부르며 그들 대부분은 인도네시아, 필리핀, 미얀마 출신이다. 헬퍼의 업무는 청소, 요리, 아이와 노인 돌봄 등 가사노동의 대부분을 수행하는 것이다. 이렇다 보니 헬퍼는 맞벌이 가정에서는 없어서는 안 될 존재이고, 어린아이가 많은 집일수록 더욱 필요한 존재이다. 물론 다른 경우에서도 헬퍼는 필요하다.
외국에서 딸과 단 둘이 지내다 보니 여러모로 힘에 부칠 때가 많았다. 특히 몇몇 배송업체에서는 집에 누군가 있지 않으면 배송을 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나 역시 택배를 제 때 받지 못한 적이 몇 번 있었다. 뿐만 아니라 혹시 모를 긴급 상황에서 딸의 픽업을 놓칠 수가 있기 때문에 헬퍼가 있다면 안심이 될 것 같았다. 게다가 한국의 가사 도우미 이모님의 급여와 비교하면 그리 부담스럽지도 않으니 말이다.
헬퍼의 급여는 경력과 출신 국가, 영어 실력에 따라 다르지만 $1,000가 가장 높은 급여이다.
경력이 없는 헬퍼의 월급은 $500에서 시작되며, 고용주가 매 달 싱가포르 고용부에 지불해야 하는 levy로 $300, 선택적이지만 대부분의 가정에서는 헬퍼와 음식을 공유하지 않기 때문에 별도로 식비를 준다. 나의 헬퍼는 급여가 $630였고 식비로 $200을 따로 주었으며, 매 달 levy $300이 지출되었다. 따라서 헬퍼로 인한 지출은 매 달 $1,130이고 한화로는 120만 원이 조금 넘는다.
우리 집에 오게 된 Jenn은 필리핀 출신으로, 고향에 9살과 7살의 아이들이 있는 스물아홉 살의 어린 헬퍼였다. 사우디아라비아에서 3년 동안 헬퍼로 일 한 경력이 있으며 싱가포르에서는 2년 동안 세 가정에서 일했다. 이 부분이 그녀와의 계약을 망설이게 하였는데, Jenn의 말로는 고용주들이 그녀에게 충분한 음식과 휴식을 제공하지 않아 버틸 수 없었다고 했다. 마음이 짠했다. 보통 헬퍼 계약은 2년이고, 이 기간을 채우면 고용주는 의무적으로 그녀를 고향에 보내주어야 한다. 물론 비행기 티켓에 대한 지불도 고용주의 몫이다.
그녀는 아이들이 이제 교육을 받기 시작했기 때문에 돈을 벌어야 하며, 휴일에는 교회에 간다고 했다. 그리고 매일 샤워를 하며, 자신의 방도 하루에 두 번씩 청소를 한다며 청결에 대한 강한 어필을 했다. 사실 Jenn이 좋아서라기보다는 다른 헬퍼들과 비교했을 때 영어로 의사소통이 가능했기 때문에 우리 집에 오게 되었다. 그리고 당시에 내가 허리를 다쳐서 집안일을 하기에 다소 무리가 있는 상태였기에 하루빨리 헬퍼를 고용해야겠다는 생각이 지배적이었다.
그렇게 그녀는 우리 집에 오게 되었다.
결벽증에 가깝다고 할 만큼 청소병이 있는 필자가 보았을 때 Jenn은 보이지 않는 곳까지 깨끗하게 청소를 했다. 한식을 전혀 해 본 적이 없지만, 알려준 대로 그럭저럭 요리도 했다. 무엇보다 딸을 세심하게 돌봐주려 노력했다. 헬퍼를 고용하기 잘했다고 생각했다.
우리 집에 온 지 일주일이 지났을 무렵부터 그녀는 사소한 거짓말을 하거나 부탁한 것을 흘려듣기 시작했다. 내가 cctv를 확인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는지 작은 거짓말들은 하나둘씩 늘어갔다. 결국 나는 그녀를 불러서 말했다. 사실 나는 매일 cctv를 확인하고 있으며, 내가 요청했던 일을 안 한 것을 알고 있고, 거짓말을 한 너에게 실망했다고 말이다. 그녀는 눈물을 흘리며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말했고 다시는 그러지 않겠다고 했다.
그녀는 처음의 성실함을 보여주려고 노력했지만 요청한 일을 제대로 하지 않을 때마다 깜빡했다며 미안하는 말로 넘어갔다.
저런 사소한 거짓말만 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사실 그녀를 고용한 것을 후회하게 된 것은 그녀의 언행 때문이다. 그녀는 궁금한 것을 못 참는다. 게다가 목소리마저 컸다. 많은 가정에서 그러듯 나도 아이의 학교 행사에 그녀를 데리고 갔다. 학부모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눌 때마다 그녀는 내 쪽으로 시선을 향했고, 학부모들과 헤어지면 내게 와서 방금 이야기를 나누었던 학부모들을 가리키며 그들이 인디언인지, 영국인인지를 물었다. 그러다 한 학부모가 말했다. 왜 너의 헬퍼가 학부모들에게 손가락질을 하냐고. 순간 너무 놀라 얼굴이 빨개졌다.
Jenn은 딸이 앞에 있든 없든 온갖 말을 쏟아냈다. 자신이 HDB(싱가포르의 공공임대아파트)에서 일해봤는데 정말 별로라며, 싱가포르인들은 나쁘다며 말했다. 심지어 우리 딸은 HDB에 사는 싱가포르인 친구들이 있는데 말이다. 결국 참다못해 그녀에게 말했다. 너의 언행들이 우리 가족을 매우 불편하게 만들고 있으며, 사소한 거짓말들은 우리의 신뢰 관계를 무너뜨린다고 말이다. 그러자 그녀는 눈을 크게 뜨며 손가락으로 나를 가리키며 말했다.
"마담, 제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저를 에이전시로 돌려보내도 상관없어요."
서울에 있는 남편에게 전화를 걸었다. 아무래도 헬퍼와의 계약을 해지하는 것이 좋겠다고. 그리고 헬퍼에이전시에 연락하여 이 모든 상황을 전달했다. 다음 날 아침 Jenn은 내가 알리지도 않았는데 이미 짐을 다 챙겼다. 나는 곧바로 그녀를 에이전시로 데려다주었다.
헬퍼 고용을 취소하기 위해서는 고용주와 헬퍼 모두 계약 해지 사유를 작성해야 한다. 나는 그간에 있었던 일을 모두 전달했다. 그러나 그녀의 말은 나를 기가 막히게 만들었다.
"고용주는 나에게 밥을 제대로 주지 않았어요. 겨우 200달러만 주었다고요. 제가 그 돈 가지고 어떻게 생존할 수 있겠어요?"
나는 그녀가 아침 식사로 먹는 빵과 간식을 별도로 제공하였다. 화장실 용품과 생리대와 같은 여성 용품까지 말이다. 뿐만 아니라 외식을 할 때마다 그녀는 언제나 함께 자리를 했다. 당황스러워서 할 말을 잃었지만, 에이전시에서는 익숙한 듯 나를 달래며 대부분의 헬퍼들이 이러한 상황에서 으레 둘러대는 핑계라고 말했다. 어쨌든 새로운 헬퍼로 교체하기로 하고, 남편이 싱가포르에 오는 대로 인터뷰를 하기로 했다. 잘 마무리된 것 같았다.
"발신번호 표시제한"
싱가포르에서 이런 전화가 올 일이 없을 텐데라는 생각과 동시에 받으면 안 될 것 같은 느낌이 들었지만 손가락이 미끄러졌다. 그리고 수화기 너머로 한 남자가 우리 집 주소를 말하며 Jenn을 찾았다. 나는 그녀가 에이전시에 있으며 더 이상 그녀의 고용주가 아니라고 말했다. 하지만 전화를 끊자마자 메시지가 우수수 날아왔다. 그의 정체는 Dave라는 이름의 불법대부업자였다. Jenn이 그에게 돈을 빌렸으나 갚지 않았고, 그녀가 넘긴 나의 개인 정보(택배상자의 송장, 고용계약서에 기재된 나의 IC number, 우리 집 현관문 사진 등)를 보여주며 당장 돈을 갚지 않으면 우리 집으로 찾아올 것이라는 협박 메시지였다.
에이전시에 당장 이 사실을 알렸고, 때마침 싱가포르에 온 남편과 곧바로 경찰서로 향했다. 협박메시지와 30분 동안 60통이 넘는 부재중 전화 기록을 보여주었고, 두 시간이 넘도록 리포트를 작성했다. 앞으로 한 달간 경찰들이 우리 콘도 주변을 순찰할 것이라 했고, 콘도 경비실에 우리의 상황을 설명할 것을 권했다. 다행힌지 불행인지 이러한 일이 빈번히 발생하기에 콘도 측에서도 당분간 누군가 찾아오면 빈 집이라 둘러댈 것이며, 택배도 따로 받아줄 것이라 했다. 이제 남은 일은 Jenn을 본국으로 돌려보내고 MOM(Ministry Of Manpower)에 경찰서 리포트와 함께 그녀를 블랙리스트에 올리는 것이다.
불법대부업자로부터 협박받은 것도 억울하지만, 그녀를 본국으로 돌려보내는 일은 온전히 고용주인 나의 몫이다. 에이전시로부터 비행기 티켓, 그리고 그녀를 공항으로 데려가 줄 runner 섭외에 대한 금액을 안내받았다. 남편과 나는 도대체 runner가 뭘까하며 궁금해했다. 알고 보니 그들은 헬퍼가 싱가포르에서 불법체류하지 않도록 공항까지 동행하여 출국을 확인하는 일을 한다. 그리고 고용주에게 헬퍼가 출국하는 모습을 사진 찍어 전달한다. 문제를 일으키는 헬퍼들이 많다 보니 이처럼 다소 특이한 직업들도 있구나 싶었다.
그녀는 이 사건이 있고 난 이틀 뒤 출국하였다.
문제를 일으켜 출국한 헬퍼들이 다시 싱가포르로 돌아와 재취업하는 사례들이 종종 있다고 한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 고용주가 직접 MOM에 헬퍼를 블랙리스트에 올릴 수 있도록 요청을 할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헬퍼들은 싱가포르에 재취업을 할 수 없게 된다. 다소 귀찮을 수 있는 과정이지만, 우리는 아이가 다시는 그녀와 마주치는 일이 없기를 바랐기에 직접 MOM에 가서 서류를 제출했다.
이 사건의 충격에서 벗어날 수가 없을 것 같았다. 계약금을 돌려받지 못하더라도 헬퍼 교체는 없던 일로 했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싶었다. 그녀의 인성을 탓할 수도 없었다. 그녀를 그렇게 만든 것은 내 잘못이었다.
"우리 가족은 헬퍼를 확장된 가족 구성원이라 생각해. 네가 우리와 잘 지냈으면 좋겠어."
처음 그녀가 집에 왔을 때 한 말이다. 그리고 이것이 그녀와 나 사이의 선을 지우는 말이 되었다. 모두가 나에게 진심 어린 조언을 했었다. 헬퍼와 고용주 사이에는 거리가 필요하며, 그것이 좋은 관계를 오래 유지할 수 있도록 한다고 말이다.
그녀가 지난날 나에게 했던 말들이 생각난다. 자신의 친구도 딸과 엄마 둘이서만 지내는 한국인 가정에서 일을 한다고, 자신도 그런 가정에서 일하고 싶었다고. 내가 에이전시에서 상담을 시작했을 때부터 나는 그녀의 타깃이었으리라.
이 일이 있고 한참 후에 딸의 친구 엄마를 만났다. 그녀는 싱가포르인으로, 어릴 적부터 지금까지 늘 헬퍼와 함께 살았다. 그러다 보니 어떻게 헬퍼와 잘 지낼 수 있는지를 알고 있었다. 그녀가 내게 알려준 헬퍼 고용에 관한 팁은 다음과 같다.
1. 경력이 없는 헬퍼(싱가포르에서는 fresh helper라고 한다)
2. 미얀마 국적의 헬퍼(영어로 의사소통이 불가하더라도 이들은 대부분 태도가 공손하다)
3. 2년 계약이 끝나면 반드시 교체할 것
4. 거리를 유지할 것
우리 가족에게 헬퍼는 앞으로 없을 것 같지만, 사람 일은 모르는 일인지라 혹시라도 다시 헬퍼를 고용하게 된다면 꼭 참고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