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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불비 Jun 12. 2023

성격 차이로 이혼한다고?

나는 29살에 결혼했다. 아내는 그 당시 25살이었다. 우린 1996년 12월 25일 크리스마스에 집안 어른들의 소개로 만났다. 중매(맞선)이긴 하지만, 소개해 준 분이 외부인이 아닌 집안의 할머니들이었다는 점에서 조금 다른 중매이긴 했다. 첫 만남이 있은 지 한 달 정도 지난 뒤에 아내 집에서 나를 식사에 초대해 주었다. 그 자리에서 할머니와 아버님, 어머님께 인사를 드리게 되었다. 내 미래에 대한 아버님의 이런저런 질문과 그런 질문에 대한 내 답변으로 진행된 Q&A 시간이 지나자, 거실 밥상에 음식들이 하나씩 나오기 시작했다. 어머님이 차려 주신 최종 음식들을 입에 넣는 순간 난 그 맛에 반해 정신을 잃고 음식을 먹는 것이 아니라 흡입하는 수준이었다. 어머님의 음식 솜씨는 일품이셨다. 원래 내가 먹성이 좋기도 했지만, 어머님의 음식 자체가 너무 맛이 있었다. 나중에 들은 이야기지만 어른들께서는 내가 먹는 모습을 보고 결혼을 허락해 주셨다고 한다. 저렇게 음식을 잘 먹는 것을 보니 ‘성격’이 좋을 것으로 판단하셨다. 지금도 처가에서는 내 별명은 ‘먹돌이 김서방’이다. 바로 양가 집안 어른들의 상견례가 이루어지고 어른들의 최종 승인으로 결혼 날짜가 잡혔다. 5개월 정도가 지난 다음 해 5월 17일로 아내 측에서 결혼 날짜를 정했다. 첫 만남을 갖고 5개월 만의 결혼이니 그동안의 만남은 서로를 알아가는 기간이었다기보다는 결혼 준비를 하는 기간이었다. 


나는 그 당시 군 복무 겸 영어 교관이었고, 1년 뒤에 전역 예정이었다. 아내는 음대를 졸업해서 피아노 학원을 운영할 예정이었다. 전공을 놓고 이야기하자면, 나는 ‘고리타분한’ 인문학 전공이고, 아내는 ‘자유분방한’ 예체능 전공이었다. 결혼 생활이 시작되는 시점에 아내는 피아노 학원을 개원했고, 난 남은 장교 생활을 했다. 몇 개월이 지나면서 아내와 나의 월급은 다섯 배 정도 차이가 났다. 당연히 아내의 수입이 더 많았다. 1년이 지나고 전역한 뒤 시간강사를 해야 할 예정이었는데, 내가 졸업한 대학의 어학교육원에서 전임강사를 모집하는 중이었다. 난 운 좋게 전역 후에 바로 계약직이지만 월급을 받는 직장을 얻게 되었다. 그래도 아내와 나의 월급 차는 그대로 다섯 배 정도였다. 난 어학원 전임강사를 하면서 바로 박사과정을 시작했다. 3년 6개월 만에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그동안 나의 교육비와 생활비는 거의 아내가 맡아 준 셈이다. 그래서 지금도 아내는 우리 집 어른들에게 본인이 나를 박사로 만들었다고 큰소리를 친다. 


모든 결혼한 부부들과 마찬가지로 우리 부부도 결혼 초에 많이 싸웠다. 싸움의 원인은 사실 잘 기억나질 않지만, 아마 사소한 것들이었던 것 같다. 하나 기억나는 것은 아내는 치약을 짤 때 중간부터 짰다. 고무 재질로 만든 지금의 치약 통과 달리 그 당시에 철 성분의 치약 통이었다. 그래서 중간에서 치약을 짜면 남은 치약을 치약이 나오는 입구 쪽으로 모으기가 상당히 불편했다. 그래서 치약 짜는 방식 차이 때문에 부부 싸움이 있었다. 결혼하고 보니 사실 혼자일 때랑은 달리 내 삶의 일부를 포기해야 할 때가 많았다. 부부 싸움을 하는 가장 큰 이유는 서로의 삶의 포기 비율이 아닌가 생각된다. 나는 내 삶의 30%를 포기했는데, 아내는 10%밖에 포기하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문제는 아내도 나와 똑같은 생각을 했던 것이다. 자기는 30%를 포기했는데, 남편인 나는 10%밖에 포기하지 않았다고 생각했다. 결국 나는 아내의 이기적인 모습이 싫었고, 똑같이 아내는 나의 이기적인 모습이 싫었던 것이다. 


어떤 이유인지 모르지만, 첫 부분 싸움이 있었다. 싸움이 극에 치닫자 아내는 ‘자기랑 나랑은 성격이 안 맞는 것 같으니 이혼하자’라고 말했다. 이 말을 듣고 난 화가 났다기보다는 아내의 표현 중에 잘못된 부분을 고쳐줘야겠다고 생각했다. 사실 난 결혼 전에도 부부 싸움은 무조건 한다는 것을 사실로 받아들였고, 그때 어떻게 싸우고 또 어떻게 화해할지도 전략을 세웠었다. 하지만 이론적 부부 싸움과 현실적 부분 싸움은 차원이 달랐다. 이론적 부부 싸움에서는 ‘이성’을 동원해 싸우고 화해도 하지만, 현실적 부부 싸움에서는 ‘감정’이 수반되므로 생각대로 되지 않았다. 그래도 아내의 이혼 사유에 대해서는 뭔가 바로 잡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내의 이혼 제안에 대해 나는 ‘이혼을 하는 것은 좋은데, 그 원인이 성격 차이는 아니고 정서 차이 때문이겠지’라고 대답했다. 이 말에 아내는 그게 무슨 말인지 궁금해하기도 하고 당황해하는 표정이 순간 보여, 나는 ‘성격’과 ‘정서’가 무엇인지 5분 정도 설명을 해 주었다. 아내는 대충 알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어쨌든 그 첫 부부 싸움은 원래 그러하듯이 순조롭게 끝났다. 이혼의 단계까지 가지 않고 순조롭게 마무리되었다. ‘부부 싸움은 칼로 물 베기’라고 하지 않든가!

부부싸움

시간이 좀 지나고 두 번째 부부 싸움이 시작되었다. 싸움이 극에 치닫자 아내는 또 이혼 이야기를 꺼냈다. 그런데 이번에는 웃기게도 아내는 ‘자기랑 나랑은 정서가 안 맞는 것 같으니 이혼하자’라고 말했다. 난 이 말에 웃음이 나왔지만 웃을 수는 없었다. 왜냐하면 지금은 한 창 부부 싸움 중이니깐 말이다. 여하튼 이렇게 두 번째 부부 싸움도 큰 문제 없이 잘 마무리되었다. 물론 부부 싸움이 이 두 번으로 끝난 것은 아니었다. 부부 싸움 때마다 아내는 성격이 아니라 정서에 관해 이야기한다.


그렇다면 성격이란 무엇이고, 정서란 또 무엇인가? 


성격(personality)은 다양한 상황에 대한 개인의 일관된 상호작용과 반응의 패턴을 정의하는 특징과 특성, 사고 패턴, 행동의 독특한 집합을 말한다. 성격은 사람이 주변 세계를 지각하고 경험하고 상호작용하는 방식도 포함한다. 성격 특성은 삶의 경험과 학습, 개인적 성장에 의해 영향을 받을 수 있지만, 시간이 지남에 따라 비교적 안정적이고 지속적이다. 심리학자들은 성격에 대한 다양한 이론을 제시했고, 성격 형성에 이바지하는 많은 특성을 식별했다. 현대 심리학에서 가장 널리 인정받고 있는 5가지 성격 특성 요소로는, 개방성(openness to experience: 상상력, 호기심 등을 기반으로 다양성에 대한 욕구 관련 특징), 성실성(conscientiousness: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 성실하게 노력하는 성향), 외향성(extraversion: 사교적인 성향), 친화성(agreeableness: 타인에게 협조적인 태도를 보이는 성향), 신경성(neuroticism: 분노나 불안감과 같은 불쾌한 정서를 쉽게 느끼는 성향)이 있다. 이러한 특성은 종종 성격 평가 방식에 따라 측정된다. 성격은 복잡하고 다면적인 개념이라는 점에 주목하는 것이 중요하며, 심리학자들 사이에서는 성격의 정확한 정의와 발달에 이바지하는 근본적인 요인에 대해 지속적인 논쟁이 있다. 그러나 일반적인 합의는 성격이 생물학적 기질, 사회화, 문화, 개인적 경험을 포함한 유전적 영향과 환경적 영향의 조합이라는 것이다.


정서(emotion)란 느낌으로 경험되는 자극에 대한 복잡한 심리적·생리적 반응이다. 정서는 전형적으로 주관적 경험, 생리적 각성, 행동 표현의 변화를 포함하는 짧고 격렬하다. 정서는 개인이 자신의 환경에 적응하고 반응하는 방법의 역할을 한다. 정서는 의사결정과 사회적 상호작용, 전반적인 웰빙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정서는 사건, 사고, 기억, 심지어 감각적 지각을 포함한 광범위한 자극으로 촉발될 수 있다. 정서에 관한 연구는 심리학과 신경과학에서 중요한 연구 분야이다. 연구자들은 정서의 근본이 되는 인지적·신경적 메커니즘, 정서의 진화적 중요성, 정서가 행동과 정신 건강에 미치는 영향을 조사한다. 정서는 또한 심리치료, 상담, 정서 지능과 같은 분야의 중심적인 요소이다.


성격과 정서는 별개이지만 인간 경험의 상호 연관된 측면이 있다. 두 가지 차이점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로 그 본질에 관해서 볼 때, 성격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그리고 다양한 상황에 걸쳐 개인을 특징짓는 사고와 느낌, 행동의 지속적이고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패턴을 가리킨다. 즉, 성격은 한 사람의 일관된 특성과 성향을 나타낸다. 반면에 정서는 특정한 사건, 사고 또는 자극에 반응하여 발생하는 일시적이고 비교적 짧은 경험이다. 정서는 더 즉각적이고 상황적이다. 둘째로 범위에 관해서 볼 때, 성격은 개인의 전반적인 개성을 집단적으로 형성하는 인지적·행동적·정서적 경향을 포함한 광범위한 특성을 포함한다. 성격은 다양한 영역에서 기능하는 개인의 지속적인 패턴을 반영한다. 반면에, 정서는 더 넓은 성격 특성의 맥락 안에서 일어나는 구체적이고 이산적인 경험이다. 정서는 특정한 자극이나 상황에 대한 순간적인 반응을 나타낸다. 셋째로 안정성에 관해서 볼 때, 성격 특성은 비교적 안정적이고 시간이 지남에 따라 지속되는 경향이 있으며, 다양한 상황에서 일관성을 보여준다. 성격은 초기에 발달하고 어느 정도의 유연성과 적응력을 보여주지만, 일반적으로 일관성을 유지한다. 반면에 정서는 더 일시적이고 변화하기 쉽다. 정서는 즉각적인 상황, 생각 또는 사건에 따라 강도와 지속 시간이 변동될 수 있다. 넷째로 측정에 관해서 볼 때, 성격은 일반적으로 개인의 특성과 성향을 포착하는 다양한 표준 평가 방법 사용하여 평가된다. 이러한 평가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지속 특성을 측정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그러나 정서는 종종 개인의 현재 감정 상태나 특정 시점의 경험을 포착하는 자기 보고 척도를 사용하여 평가된다. 다섯째로 영향에 관해서 볼 때, 성격은 개인이 정서적 자극이나 사건을 인식하고 해석하고 반응하는 방식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성격은 정서적 경험과 표현의 일반적인 기질, 경향, 스타일을 형성할 수 있다. 반면에 정서는 이러한 자극이나 사건에 대한 구체적인 반응을 나타낸다. 정서는 성격 특성과 상황적 요인에 의해 영향을 받을 수 있다.


요약하자면, 성격은 개인을 특징짓는 사고, 느낌, 행동의 지속적인 패턴을 나타내지만, 정서는 특정한 자극이나 사건에 반응하여 발생하는 일시적이고 맥락에 특정한 경험이다. 성격은 개인의 전반적인 성격을 이해하기 위한 틀을 제공하는 반면, 정서는 그 틀 안에서 일어나는 순간적인 감정적 경험을 반영한다.


인간의 성격은 안정적이고 지속적인 패턴으로서 이는 그 개인의 고유한 특성이다. 이는 아무리 부부라도 처음부터 같을 수는 없다. 부부는 남성과 여성처럼 성 자체가 다르고, 자라난 지역이나 가족 환경이 다르며, 다닌 학교와 직장의 성향도 다르므로 그 영향을 받아 형성된 성격은 다를 수밖에 없다. 하지만 정서는 어떤 사건에 대해 같은 곳을 바라보는 방식이다. 예를 들어, 고속도로에 고라니 한 마리가 차에 치여 죽어 있다. 운전해 가던 부부는 그 장면을 보고, 한 사람은 ‘고라리 저놈 잘 죽었다’라고 반응하고, 다른 한 사람은 ‘저 고라니 불쌍하다’라고 반응한다고 가정해 보자. 이때 부부는 같은 장면에 대해 다른 반응을 보인 것이다. 즉, 이 부부는 이 상황에 대해 다른 정서를 하고 있다. 이때 고라니가 잘 죽었다고 말하면 상대는 그 말에 정색하면서 무슨 그런 말을 하냐면서 따져들 수도 있고, 그 사람의 생명 개념에 대해 실망스러워할 수도 있다. 


우리가 처음에 연애할 때 서로 마주 보고 앉기도 하지만, 남자는 여자 친구를 자기 옆에 앉히는 경향이 강하다. 이는 남자가 여자 친구와 더 가까이 있고 싶은 육체적 욕구 때문일 수도 있지만, 본인도 모르게 여자 친구와 같은 곳을 바라보고 싶은 정서적 욕구 때문일 수도 있다. 즉, 정서 맞추기 작업이다. 


가장 대표적인 정서 차이는 정치와 종교에서 포착된다. 같은 정치와 종교에 대해 나는 특정 당을 선호하고 특정한 종교를 믿지만, 상대는 다른 당과 다른 종교를 믿는다고 생각해 보자. 이처럼 정치관이 다르거나 종교가 서로 다른 남녀는 심도 있는 대화를 진행하면서 같이 사귀기가 쉽지 않은 경우가 맞다. 종교의 경우는 남녀는 같은 종교인을 찾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종교적 정서가 같지 않다면 나머지 부분에서 더 많은 차이를 느낄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정서 차이는 언어 표현에서도 드러난다. 술을 좋아하는 사람과 술을 싫어하는 사람이 있다고 하자. 와인 잔에 와인이 딱 절반 남은 상황이 있다고 하자. 와인을 좋아하는 사람은 그 장면에 대해 ‘와인이 반밖에 안 남았네요’라고 말한다. 영어로 하면 half-empty이다. 이런 사람은 와인이 반 남은 것에 대해 비어 있는 부위를 바라보고 이렇게 반응한 것이다. 하지만 와인을 싫어하는 사람은 그 장면에 대해 ‘와인이 반이나 남았네요’라고 말한다. 영어로 하면 half-full이다. 이런 사람은 와인이 반 남은 것에 대해 남아 있는 와인을 바라보고 이렇게 반응한 것이다.

반 남은 와인잔

부부는 원래부터 서로 다른 성격은 받아들여야 한다. 그것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누구하고도 결혼 생활을 유지하기란 어렵다. 물론 정서가 다를 수도 있다. 하지만 정서는 가변적이고 짧은 지속 시간을 가지므로 서로 맞추는 작업이 가능하다. 사실, 나는 정서를 맞추는 방법은 잘 모른다. 하지만 그런 방법의 중심에는 진솔한 대화가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대화를 통해 상대의 정서가 나와 다르다는 것이 느껴진다면 서로 같이 맞추는 작업을 각자의 마음속에서 진행하면 조금이라도 둘의 관계가 안정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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