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든 사랑을 하고 싶어 한다. 2007년에 발매된 김광석의 《인생이야기》라는 앨범에는 주옥같은 김광석 노래도 실려 있지만 자기에 관한 이야기도 들려준다. 그중 세 번째 이야기에서 김광석은 이렇게 말한다. “저는 환갑 때 연애하고 싶습니다. 로맨스. 그냥 ‘ㄹ’ 자만 들어도 설레죠? 로맨스. 코웃음 치지 마십시요. 뭐 그때까지 정열이 남아 있을지 모르겠지만, 뭐 바란다고 그렇게 되는 게 아니죠 로맨스는. 번개처럼 그렇게 번쩍해 가지고 정신 못 차려야 되는 거죠. 쉽지 않은 것 같아요. 바램입니다. 환갑 때 로맨스.” 김광석은 60인 환갑이 되어서도 사랑을 하고 싶어 한다. 물론 나도 사랑이 하고 싶었고, 사랑도 했다. 사랑은 결혼으로 이어지기도 하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많다.
누군가가 나에게 지금 사랑을 하라고 권한다면, 난 솔직히 자신이 없다. 물론 난 결혼을 했다. 하지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결혼 여부라는 도덕성 문제는 고려하지 않는다. 그냥 지금 사랑을 할 기회가 주어진다면 자신이 없다는 것이다. 난 수업 시간에 영어 전치사 in이 나오면 지루한 수업을 조금이나마 유쾌하게 바꾸어 보려고 칠판에 He falls in love with her라는 예문을 적는다. 그러고는 학생들에게 이 문장에서 그녀와 사랑에 빠진 ‘그’라는 사람에 대해 어떤 느낌이 드냐고 묻는다. 학생들 대부분은 ‘부럽다’, ‘좋겠다’ 등의 대답을 내놓는다. 너무나 자연스러운 반응이다. 하지만 난 학생들에게 나는 그 사람이 ‘참 불쌍하다’라는 생각이 든다고 말한다. 학생들은 ‘허걱’하는 표정을 짓는다. 어떻게 ‘사랑’이라는 순수한 감정에 ‘불쌍’이라는 불경한 말을 할 수 있냐는 듯한 표정이다.
이런 내 생각을 정당화하기 위해 나는 전치사 in에 관해 설명한다. 전치사 in 뒤에 나오는 명사는 긍정의 뉘앙스보다는 부정의 뉘앙스를 갖는다고 말하면서, 이를 증명하기 위해 예문을 제시한다. be in trouble(곤경에 처한다), be in ruins(폐허가 된다), be in liquor(술에 취한다), be in a rage(격노한다), be in confusion(혼란스럽다), be in excitement(흥분한다), be in debt(빚을 진다)을 칠판에 적는다. 그러면서 fall in love(사랑에 빠진다)도 같은 뉘앙스라고 말한다. 물론 be in good health(건강하다), be in good order(정돈된다). be in full blossom(꽃이 만발한다)처럼 긍정의 뉘앙스를 가진 명사도 in 뒤에 나온다. 하지만 난 의도적으로 이런 긍정의 표현은 예로 제시하지 않는다. 난 사랑의 부정성에 대한 내 논리를 정당화해야 하니깐 말이다. 나는 학생들에게 동사 fall의 의미도 생각하게 한다. 이 동사가 ‘떨어지다, 낙하한다’를 의미한다는 것을 학생들은 다 알고 있기에 내 말에 어느 정도 공감하는 표정을 짓는다. 그러면서 우리말 속담 ‘사랑은 눈물의 씨앗이다’을 생각해 보라고 한다. 사랑이 눈물을 나게 하는 씨앗이니, 사랑을 하면 눈에 피눈물 난다는 뜻이다. 학생들의 공감을 확신으로 바꾸기 위해 난 마지막 비수를 꽂는다. 파리가 먹다 남은 소주병에 빠지는 상황을 생각해 보라고 한다. 이 파리의 운명은 절망적일 수밖에 없음을 모두 다 직감한다. 이렇게까지 된 이상 내 설명을 들은 학생들은 사랑은 나쁜 것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문제는 결혼이다. 우리 학생들은 머릿속에서 그럼 결혼은 어떻게 되는 거지라고 고민하기 시작한다. 그래서 난 사랑은 하지 말고 결혼만 하라고 한다. 학생들은 아직 어리다 보니 그게 가능하냐는 표정들이다. 그래서 난 아주 무미건조하게 모든 조건을 미리 고려한 중매를 통해 결혼하라고 하다. 학생들은 이제 웃는다. 최종적으로 난 사랑하는 시간에 열심히 책 읽으면서 공부하고, 결혼은 중매로 하라고 말한다.
물론 내가 이렇게 사랑에 대해 부정적으로 이야기하고 결혼은 중매를 통해서 하라고 해서 내 말을 그대로 따를 사람이 과연 몇 명이나 되겠는가? 거의 없다고 나는 확신한다. 그래서 난 이렇게 특별한 의미도 없는 농담을 통해 사랑과 결혼에 관해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이다. 사랑은 인간이 어떻게든 의지적으로 통제할 수 있는 감정이 아니다. 내가 사랑을 하고 싶다고 해서 할 수 있고, 하지 않으려고 다짐한다고 해서 하지 않게 되는 것이 아니다. 사랑을 포함한 모든 정서와 감정은 인간의 사고를 초월한다. 주관의 문제인 사랑 등의 감정은 같은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들마다 다르게 해석한다. 미국영어를 사용하는 화자는 이웃집 개가 암내를 내는 상황을 The neighbour’s dog is in heat으로 표현한다. 반면에 영국영어를 사용하는 화자는 이런 상황을 The neighbour’s dog is on heat으로 표현한다. 사랑을 하고 싶어 하는 표시인 발정(heat)이 서로 다른 영어 방언에서 다르게 표현되고 있다. in heat의 경우에는 전치사 in 때문에 발정 상태에 빠진 것이므로 헤어 나오기 힘들다는 것을 내포한다. 그래서 미국영어를 사용하는 사람은 그런 개가 참 안타깝고 불쌍하다고 느끼는 것이다. 사실 발정 상태는 오래 지속되지 않는다. 발정 상태뿐만 아니라 인간이 겪는 감정은 지속 상태가 상대적으로 짧다. 물론 우울함이 오래가면 우울증이라는 병이 되고, 기쁨과 행복의 감정이 오래가면 조증이 될 것이다. 이런 예외적인 경우가 아니라면 인간의 감정은 지속 시간이 짧다. 전치사 on은 한 물체가 다른 물체 위에 있는 형상을 나타낸다. 이웃집 개가 발정 상태 위에 올라와 있다는 것이 영국영어이다. 발정 상태 안에 있지 않고 그 위에 올라와 있으니 그 상태에서 밖으로 뛰어내리면 된다. 그래서 영국영어를 사용하는 사람은 발정 상태에 있는 이웃집 개를 보고 조금만 참으면 괜찮아질 테니 조금만 잘 참아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사랑이란 무엇일까? 사랑의 개념이 성립하기 위해서는 먼저 남자와 여자가 존재해야 한다. 같은 생활 공간에서 두 남녀는 서로에게 호감을 느낀다. 그러다 누가 먼저 고백하고 상대가 그 고백을 받아주면 ‘오늘부터 1일’이 시작된다. 이렇게 사랑이 시작되면서 주변 사람들이 부러워할 정도로 둘은 행복한 시간을 보낸다. 다른 감정들과 마찬가지로 사랑도 오래 지속되지 않는 감정이다 보니 두 남녀는 서로에게 다소 소홀해지는 시기도 찾아온다. 그러면서 서로에 대한 사랑의 설레임과 짜릿함은 서서히 줄어든다. 사랑의 감정이 한창일 때 결혼할 수도 있고, 그 감정이 서서히 줄어드는 시점의 언저리에 결혼할 수도 있으며, 사랑의 감정이 완전히 사라졌지만 책임감 때문에 결혼할 수도 있다. 어떤 커플은 사랑의 감정이 식어서 이를 극복하지 못하고 이별을 맞이한다. 또는 너무 사랑하지만, 현실의 벽을 넘지 못해 서로를 위해 이별하는 커플도 있다. 김광석의 노래처럼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다’라고 말하면서 말이다.
이렇게 사랑은 여러 사건으로 이루어진 긴 시나리오의 모습을 하고 있다. 이 사랑의 시나리오에 근거해서 사랑을 정의한다고 할 때 그 방식은 여러 가지로 나온다. 서로 사귀기로 한 1일부터 그 감정이 시들해지기 전까지만 사랑이라고 보기도 하고, 결혼까지 이어져야 사랑이라고 보기도 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시나리오에 들어 있긴 하지만 이별은 사랑에 포함하지 않는다. 이별은 아프고, 때로는 나쁜 기억으로 이별하면 증오로 가득하다는 것이 그 이유이다.
난 사랑이 남과 여의 존재에서부터 결혼 혹은 이별까지의 전체 시나리오가 사랑이라고 말하고 싶다. 긴 ‘사랑’ 시나리오에서 한 특정 부분이 사랑이라는 전체를 대표하는 환유적 사랑 해석이 아닌, 전체 시나리오 자체가 사랑이라는 것이 내 의견이다. 사랑이라는 감정은 인간의 지배를 받지 않는다고 했다. 그만큼 큰 것이다. 한 부분으로 쪼개고 분석할 수 없는 숭고한 것이다. 그런 전체로서 숭고함 그 자체인 사랑을 우리 인간들은 쪼개어 환유적으로 생각하는 듯하다. 이별의 슬픔도 사랑이므로 혹여 어떤 이유에서든 이별한 연인이 있다면 그 또한 사랑이니 너무 슬퍼하지 말고 잘 극복해 주길 바라는 마음이다. 그리고 사랑 중에 싸워 서로 삐진 상태의 연인들도 그 또한 사랑이라 생각하고 잘 극복해 행복한 사랑을 유지해 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