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을 포함한 모든 동물에게는 범주화(categorization)의 능력이 있다. 범주화란 여러 항목이나 개념을 공통된 특성에 기초하여 특정한 부류나 범주로 조직하거나 분류하는 과정을 말한다. 범주화는 우리 주변 세계의 복잡성을 더 쉽게 이해하고 탐색할 수 있게 해 주며, 많은 양의 정보를 효율적으로 관리하기 위해 사용하는 기본적인 인지 과정이다. 범주화 과정 때문에 우리의 뇌는 관련된 항목을 함께 분류하고, 인지적 부하를 줄이며, 의사결정을 단순화함으로써 많은 양의 정보를 관리할 수 있다. 이런 범주화에는 인지적 경제성의 특징이 있다. 범주화는 인간의 사고와 문제해결에 있어 결정적인 측면이며, 더 나아가 유기체의 생존 문제와 직결되는 때도 있다. 즉, 우리는 생존을 위해 음식을 먹을 수 있는 것과 먹을 수 없는 것으로 범주화하고, 주위 환경을 해로운 것과 해롭지 않은 것으로 범주화해야 한다. 범주화 능력 자체는 인간에게 보편적이지만, 범주화는 문화적 규범, 개인의 경험, 맥락에 의해 영향을 받을 수 있으며, 문화마다 대상이나 개념을 다르게 범주화하기도 한다.
문제는 무엇에 근거해서 범주화를 하느냐는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에 따르면, 세계 속의 사물은 본질적 자질로 정의된다. 여러 사물이 공통된 본질적 자질을 공유한다면, 그 사물들은 특정한 범주로 묶일 수 있다. 이는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있다. 하나의 사물은 범주 구성원 요건을 위해 필요충분조건을 충족해야 한다. 예컨대, 어떤 사람이 ‘노총각’ 범주에 속하기 위해서는 ‘결혼하지 않았다’, ‘남성이다’, ‘성인이다’라는 조건을 준수해야 한다. 본질적 자질이나 필요충분조건에 근거해서 범주화하는 방식에는 몇 가지 특징이 있다. 첫째, 범주는 필요충분조건의 합에 의해 정의된다. 둘째, 자질은 두 가지 값만 있다는 점에서 이분법적이다. 셋째, 범주의 경계는 명확하여, 일단 한 범주가 설정되면 그 범주는 세계를 두 종류의 실체로 나눈다. 넷째, 범주의 모든 구성원은 위상이 동등하다.
하지만 우리가 사는 세상은 이렇게까지 엄격하지는 않다. 특히 범주에 본질적 자질만 있는 것은 아니다. 범주에는 그 정체성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지 않는 우연적이고 주변적인 자질도 있다. 본질적 자질이나 필요충분조건이 아닌 원형(prototype) 개념을 활용하는 범주화 방법도 있다. 범주화의 원형 이론은 심리학자 엘레노어 로쉬(Eleanor Rosch; 1938~ )의 연구에서 발견할 수 있다. 원형은 어떤 범주를 대표할 만한 가장 전형적이고 중심적이며 이상적인 좋은 보기를 말한다. 곧 원형적 보기는 중심적 보기이고, 비원형적 보기는 주변적 보기가 된다. 예를 들어, ‘가구’라는 범주에 대한 원형은 ‘의자’와 ‘소파’이고, ‘과일’이라는 범주에 대한 원형은 ‘오렌지’와 ‘사과’ 등이다. 로쉬는 한 범주의 구성원 요건을 이분법적으로 처리하지 않으며, 많은 범주에는 명확한 경계가 없다는 연구 결과도 제시했다. 결국 로쉬는 범주 경계가 유연하다는 것을 보여준 것이다. 예컨대, 어떤 개는 다리를 다쳐 다리가 넷이 아니라 셋이다. 필요충분조건에서는 개는 다리가 넷이어야 한다는 조건이 있으므로 그런 개는 개의 범주에 할당되지 않아야 한다. 하지만 우리는 다리가 셋인 그런 개도 원형적인 개는 아니지만 그래도 비원형적인 개로 분류한다.
원형에는 몇 가지 유형이 있다. 첫 번째 유형은 전형적 보기(typical example)이다. 전형적 보기는 흔히 무의식적이고 자동으로 사용된다. 전형적 보기는 사람들 사이에서 논의의 대상이 아니며, 평생 눈에 띄게 변하지 않는다. “사과와 귤은 전형적인 과일이다”가 그 예이다. 두 번째 유형은 사회적 판박이 보기(social stereotype)이다. 사회적 판박이 보기는 보통 의식적이며 논의의 대상이 된다. 판박이 보기는 시간이 지나면서 변하기 마련이고, 사회적 쟁점이 되기도 한다. “판에 박힌 정치꾼은 음모를 꾸미고, 이기적이고, 부정직하다”가 그 예이다. 세 번째 유형은 이상적 보기(ideal)이다. “이상적인 남편은 가족 부양을 잘하고, 성실하고, 돈도 많이 벌고, 잘생겼다”가 그 예이다. 네 번째 유형은 모범적 보기(paragon)이다. 야구의 경우에 베이브 루스나 왕정치가 모범적 보기이다. 다섯 번째 유형은 현저한 보기(salient example)이다. 우리는 보통 익숙하고 기억하기 쉬운 현저한 보기를 사용해 범주를 이해한다. 예컨대, 가장 친한 친구가 채식주의자이면, 그 친구에 관한 것을 다른 채식주의자에게까지 일반화하는 경향이 있다.
우리는 결혼 상대를 고를 때 흔히 원형을 근거로 사용한다. 특히 원형 중에서 이상적 보기가 그 근거가 된다. 이상적인 남편은 여성마다 다르지만, 흔히 잘 생기고, 아내만 생각해 주고, 돈도 잘 벌고, 성격 좋고, 키도 커야 한다. 이상적인 아내는 어떨까? 남성 대부분은 이상적인 아내는 예쁘고, 요리 잘하고, 집안일 잘하고, 시댁 식구 잘 챙기고, 가진 돈도 많아야 한다. 문제는 과연 이 현실에 이런 특징을 가진 이상적인 남편과 이상적인 아내가 과연 몇 명이나 될까? 거의 없다고 봐도 무난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이상적인 남편과 아내는 말 그대로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이상적 세계에 존재하는 허구적 인물이다. 우리가 현실에서 볼 수 있는 남편과 아내는 전형적인 남편과 아내이다. 전형적인 남편은 게을러서 집안일을 거의 도와주지 않고, 대머리이고, 올챙이처럼 배도 나왔고, 월급을 쥐꼬리만큼 벌어오고, 속은 어찌나 좁아터졌는지 무슨 말만 하면 삐져서 며칠 동안 말도 안 한다. 전형적인 아내도 우리가 생각했던 이상적인 아내와는 거리가 많이 멀 것이다.
그래서 배우자를 이상적 보기라는 원형에 근거해서 선택하고자 한다면 결코 결혼하지 못하고 독신으로 살 운명에 처할 것이다. 주변에 결혼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처녀와 총각 때 이상으로 꿈꾸었던 그런 상대는 존재하지 않는다. 이들이 말하는 남편과 아내는 전형적 보기의 원형을 하고 있었다. 그래서 이런 말을 듣는 미혼인 사람들은 결혼할지 말지를 두고 고민한다. 물론 결혼을 생각해 본 적이 있다면 결혼은 해야 한다. 그렇다면 어떤 상대를 선택해야 할지 그것이 문제이다.
나는 결혼 상대를 고르는 문제로 고민하는 사람들에게 이런 제안을 한다. 결혼 상대의 이상적 보기에 근거하지 말고, ‘최악의 보기’에 근거하라는 것이 내 제안이다. 최악의 보기란 내 남편이나 아내가 될 사람에게는 절대 없어야 하는 특징을 갖고 있는 사람이다. 지금부터라도 내가 여성이라면 최악의 남편에 대해, 내가 남성이라면 최악의 아내에 대해 생각해 보아야 한다. 사실 인간은 좋은 것에 대해서는 나름대로 가치관이 서 있지만, 부정적인 것에 대해서는 명확히 경계 설정이 되어 있지 않다. 그래서 긍정적인 이상적 남편과 아내에 대해서는 평소에 생각을 많이 해 보았기 때문에 그 목록이 어느 정도 쉽게 작성된다. 반면에, 내가 정말 싫어하는 남편의 이미지와 아내의 이미지는 아직 식별되지 않았을 가능성이 크다. 가령, 여성의 경우에 도박하는 남자, 술 마시는 남자, 바람피우는 남자, 게임 중독인 남자를 최악의 남편 목록에 올릴 수 있다. 남성도 비슷하게 최악의 아내 목록을 작성할 수 있다.
결혼은 이상이 아니라 현실이다. 현실에서 이상을 추구할 것이 아니라, 현실에서 실패하지 않기 위해서는 최악의 경우를 피해야 한다. 최악의 경우를 피한다는 것은 최악의 남편 목록과 최악의 아내 목록에 수록되지 않은 사람이면 그 사람과 결혼해도 된다는 것이다. 이상적 남편과 아내라는 허구적인 배우자를 헛되이 쫓지 말고, 나를 최악으로 치닫게 할 수 있는 배우자를 피해야 한다. 결혼은 사랑이라고 하지만, 또한 생존의 문제이기도 하다. 전형적인 남편과 아내는 내가 꿈꾸는 배우자가 아닐지라도, 이들이 최악의 남편과 아내 목록에 있지 않다면 적절한 배우자 자격이 있는 것이다. 그런 배우자와 이 현실에서 생존하면서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 조심스럽게 생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