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맨틱 지향.
사랑, 사랑, 사랑.
요즘은 온갖 미디어에서 사랑을 판다.
로맨스가 없으면 안 될 것처럼 사랑을 계속 판다.
주는 것도 아니고 사랑이란 소재로 만들어진 미디어를 팔고 있다.
사람들은 타인이 사랑을 하는 모습을 보며 만족감을 느끼거나 분노를 느끼거나 슬픔을 느끼면서 사랑을 관찰한다.
그러다보니, 눈으로 보이지 않는 사랑을 관찰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아졌다.
분명, 눈으로는 보이지 않는데 행동으로 나타나는 것은 맞지만 그 사람의 그 특정 행동이 모든 감정을 포괄하는 것이 아닌데, 모두가 그 특정 행동을 '사랑'이라고 말하면서 미디어를 소비하고 타인의 작은 행동을 그 사람의 감정의 전부인 듯 생각한다.
사람은 누구나 다양한 면이 있다.
하나로 모든 것을 설명할 수도 없고, 카메라가 자신을 촬영한다는 특수한 상황에서 드러난 모습이 그 사람의 본질을 알려주진 못한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은 단편적인 모습을 보고 그 사람의 전부일 것이라 생각하며 '사랑'을 평가한다.
반대로 한 장면에 여러가지 모습을 보이면, 두 가지 말을 하거나 앞뒤가 다르다고 평가하며, 또 그 사람의 '사랑'을 판단한다.
지금 우리의 세상은 사랑을 문화적으로 소비하며 타인의 사랑을 판단하고 평가하고 그 사랑의 모습으로 그 사람 자체도 평가한다.
아무런 죄책감도 없이 단번에 '이런 거네.'하고 쉽게 내뱉는다.
그럼에도 고가의 출연료와 인지도 상승으로 인한 부가적인 수입원 창출에 매력을 느끼며, 그와 같은 미디어에 출연을 원하는 사람들이 넘쳐나고, 많은 사람들은 그런 출연자를 평가하고 판단하는 것을 당연히 여긴다.
'본인이 출연하기로 한 거잖아. 이정도 말도 못해?'하는 생각은 자신도 출연자도 갉아 먹는다.
출연하기로 한 사람은 자신이 어떤 평가와 마주할 지 알지 못했고, 미디어 시청자는 출연자가 출연을 했다는 것 하나만으로 온갖 잣대를 들이댄다.
연예인도 마찬가지겠지만, 매니저와 소속사가 있는 연예인과는 많이 다른 환경의, 매니저도 소속사도 경호원도 없는 일반적 환경에 놓인 일반인은 사람들의 수많은 평가와 잣대로 부터 피하거나 숨거나 도움을 받지 못한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은 '본인이 출연 했잖아.'하는 말로 모든 것을 일축한다.
사랑을 하기 위해 나왔다면서 자신의 스토리를 미디어로 파는 사람이 많은 세상.
사랑을 소재로 미디어를 만들어 파는 세상.
그 미디어를 아무렇지 않게 소비하며 평가하고 각자의 다양한 잣대를 들이대는 세상.
서로를 갉아 먹으면서도 갉아 먹는지 모르며, 서서히 인간성을 잃어가는 세상.
사랑이 상업이 되어버린 이런 세상이 올바른가 싶지만.
아주 옛날 옛적에도 사랑은 상업이었다.
로맨스 소설은 아주 옛날 옛적에도 있었고, 풍문으로 듣는 갑순이 갑돌이 이야기도 있었다.
다른 점이라면, 등장 인물들이 실제 살아있는 사람이 아니란 것과 실제 인물이어도 동네 안의 소문으로 끝났던 것이란 것이다.
그렇기에 사랑이 상업이 되었다는 것을 잘못 되었다고 할 수는 없지만.
나는 좀 더 따뜻한 세상이면 좋겠다.
미디어에 나온 것만으로 평가하지 않는 세상.
사랑을 미디어 소비가 아니라 가슴으로 느끼며 스스로가 터득하는 세상.
미디어로 사랑을 소비하더라도 함부로 평가하지 않는 세상.
그런 세상이면 좋겠다.
하지만 이전의 로맨스도 풍문이 있었고 오늘 날의 로맨스도 역시 풍문을 벗어날 수 없으며, 문명의 발달은 풍문을 더 많은 사람이 보거나 들을 수 있으니.
세상이 그러했고, 그러하다.
수천년 반복된 이것은 바뀌는 것이 힘드니.
그러니 세상이 바뀌길 바라기 보다는 내가 그런 사람이 되기만 하면 되겠다.
그런데 이런 세상에서 나는 로맨틱함을 지향할 수 있을까.
사고 팔지 않는 사랑.
눈에 보이지 않는 사랑을 하는 사랑.
누군가에게 보이기 위해하는 것이 아닌 사랑.
로맨틱한 사랑.
그것이 가능한 사람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