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맛도 니맛도 아닌데, 그것도 나야.

머리카락이 자란다.

by 담하dam ha

어릴 때부터 머리 숱이 많았어서 미용실을 주기적으로 가서 숱을 쳐내지 않으면 두피가 숨을 못쉬어서 두피가 망가지는데 안타깝게도 성인이 될 때까지는 그러지 못해서 두피가 좀 상했고 스트레스도 맞물리면서 머리 중앙이 조금 허옇게 비게된 후에야 미용실을 주기적으로 가게 되었다.

머리카락이 튼튼한 것도 아니어서 관리를 잘 해주어야 하는데, 최소한의 관리로 버티고만 있지만.

머리카락은 주기적으로 자른다.

머리카락이 자라나기 때문이다.

머리카락처럼 자라면 잘라야하는 것이 손톱, 발톱, 눈썹이 있는데 내 몸의 자라나는 것도 이렇게 잘라야 하고 내 몸은 아니지만 내 몸같은 것들도 잘라내야 할 때가 있다.

그때는 시원 섭섭도 하고, 속상하기도 하고, 슬프기도 하고, 무섭도록 시원하기도 하다.

때로는 일이 되기도 하고, 모임이 되기도 하고, 사람이 되기도 하고, 습관이 되기도 한다.

제각각의 모습에 따라서 잘라낼 때의 기분에 차이가 있는 이것들은.

언젠가는 유통기한이 다 되어서 잘라야 하는 때가 있다.

어떤 장인이 스스로의 능력을 갈고 닦으며 평생을 같은 일을 한다고 해도 결국 삶의 마지막 순간에는 잘라내야 하는 순간이 오고마는 것이다.

모든 관계와 모든 일은 유한하다.

그리고 잘라내야 하는 그 때를 잘 알고 대처해야 휘몰아치는 감정과 또 다른 새로운 일들에 잘 적응하고 지낼 수가 있다.

누군가는 유통기한이 다 되었는데도 조금씩 관계나 일을 홀짝이며 언제 벌어질지 모르는 위장장애나 식중독을 예견하지 못하고 당한다. 그때가 되어서는 아무도 수습을 도울 수가 없어서 어쩐지 못하고 발을 동동 구르거나, 끊어진 관계나 일에 대해 계속 되뇌이며 괴로워한다.

끝내야 할 때가 오면 끝을 봐야 하는 것이다.

그것은 내가 시작할 수도 다른 사람이나 자신이 속한 사회의 특성에 의해서도 일어날 수 있는데.

나는 타의이든 자의이든 이 모든 것을 잘라낸다고 표현하고 싶다.

타의에 의한 것이어도 스스로 이제 마감을 하겠다는 의지나 생각이 없다면 예견치 못한 식중독을 당하고 마는 것이기 때문이다. 심지어 그런 상태가 되었을 때에도 스스로 끝을 보겠다는 마음이 없으면 혼돈의 상황은 계속된다.

그런 의미에서 모든 것의 유통기한이 다한 것을, 나는 '잘라낸다'고 표현하겠다.

그것은 머리카락을 자르거나 손톱을 자르는 것과 같다.

내 몸의 일부가 떠나가는 괴로운 기분을 느낄 수도 있고, 내 몸에서 불편하거나 거슬렸던 것을 떠나보내는 기분을 느낄 수도 있다.

그런데 기분은 기분이다.

잘라내는 것이니, 타의에 의한 것이어도 주도권은 내게 있는 것이다.

내가 마음을 먹으면 되는 것이다.

마음이 먹어지지 않는다고 해서 주도권이 넘어가진 않는다.

주도권은 여전히 내게 있다.

슬프든 괴롭든 무섭든 간에 주도권은 내게 있다.

마음을 정리하는 것은 오로지 나만의 것이다.

상황과 환경이 어떠하든 잘라내는 것은 나이다.

그러니 유통기한이 끝이난 것을 애써 붙드며 괴로워할 필요도 없고, 괴로워한다고 해도 주도권은 언제나 내가 잡은 것이니 그 괴로움을 느낀다고 내가 바보가 되거나 어리석어지는 것은 아니다.

그저 아직 잘라내지 못했을 뿐이다.

머리카락을 자를 때도 결단이 필요하다.

모든 것에는 결단이 필요하다.

잘라내는 것에는 당연히 결단이 필요하다.

그러니 그런 순간이 오면, 언젠가 결단을 내고 잘라내겠다는 마음을 가지면 된다.

아무도 우습지 않고 아무도 어리석지 않다.

기억할 것은 잘라낼 순간은 오로지 내가 정한다는 것이다.

이전 27화내맛도 니맛도 아닌데, 그것도 나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