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하루가 멀다 하고 뉴스에 금쪽이들과 진상 학부모 이야기가 나오는데우리 학원 역시 이런 문제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물론 학원이라는 사교육의 특성상 한 반의 구성 인원이 학교보다는 현저히 적지만 주변 초등학교의 아이들이 학원에 한데 모이기 때문에 학원에도 금쪽이들과 진상 학부모들이 꼭 존재하기 마련이다.
학교도 그렇겠지만 그나마 대다수의 학부모님들이 정상적인 수준의인성과 교양을 소유하고 계시기 때문에 뒷목 잡을 일이 매일 일어나지는 않는다.
솔직히 매일 그랬으면 정신적으로 버티기 힘들었을 것 같다. 그런데확실히 몇 년 전과 비교해 봐도 말도 안 되는 요구를 당연하게, 그리고 너무 당당하게 하는 학부모들이 늘기는 했다.
지난주 목요일 수업 끝나기 5분 전인데 갑자기 원장님이 급하게 강의실로 들어오시더니 학원 와이파이 비번이 뭐냐고 물으셨다. 왼편에 위치한 강의실과 오른편에 위치한 강의실 각각 사용하는 공유기가 다르기에 와이파이 비번도 두 개어서 헷갈리는 경우가 종종 있다. 나도 외우고 있는 건 아니어서 메인 컴퓨터 위에 각각의 공유기 비번을 적어서 붙여놨다고 원장님께 말씀드렸다. 그런데 원장님이 거기 붙어있던 게 없어졌다고 하신다. 얼마 전까지 붙어있던걸 봤는데 없다고 하셔서 수업이 끝난 후 나가봤더니 메인 컴퓨터 위에 써놓은 비번을 보고 아이들이 자기 핸드폰으로 몰래 와이파이를 사용하는걸 몇몇 선생님들에게 들켰다.
학원 와이파이로 핸드폰 게임하고 몰래 교재장이 있는 교실에 숨어서 유튜브를 보다가 걸린 것이다.
그래서 선생님들이 비번을 바꿔 써놓은 종이를 숨겨놓으셨는데 다행히 우리끼리 아는 장소에 숨겨놓아서 내가 금방 찾았다. 번호를 확인하신 원장님이 한 학생을 선생님 휴게실로 데리고 가더니 앉혀놓고 그 학생의 태블릿에 와이파이를 사용할 수 있도록 연결해 주셨다.
"뭐 하는 건데요?"
우리 학원은 태블릿 수업이나 숙제가 없다. 온라인 문제는 학원에 와서 학원 컴퓨터로 직접 풀어야 하는 시스템이다. 각각의 학원 컴퓨터에 고유 온라인 접속 아이디가 부여되어 있기 때문에 개인 태블릿이나 노트북으로 접속해서 학습하는 건 불가능하다.
"저 학생 엄마가 빨간펜을 시켜 달라고 하셨어요."
순간 내 귀를 의심했다.
"제가 아는 그 학습지 빨간펜이요?"
"네. 아이가 영재 테스트 준비 중인데 빨간펜 할 시간이 없다고 여기서 해달라고 아이 편에 보내셨어요. 화요일에도 보냈길래 그날만 해달라는 줄 알고 그냥 넘어갔는데, 목요일도 보내셨길래 안된다고 말씀드렸더니 왜 못해주냐고 떼를 쓰셔서 어쩔 수 없이 내가 졌어요"
"영재 테스트랑 빨간펜 못한 거랑 무슨 상관인데요? 그리고 정 시간이 없어서 빨간펜을 못한 거라면 빨간펜을 쉬는 게 맞는 거지 그걸 영어학원에서 시켜달라고 보내는 건 무슨 경우인지... 뭔가 앞뒤가 안 맞는데요?"
예전에 일했던 학원에서 사립학교 학생들 학부모가 영어 스피치 콘테스트 원고를 봐달라고 해서 원고를 수정해 준 후 학생의 스피치 연습을 지도했던 적은 있었다. 물론 추가 금액 없이 말이다. 스피치를 봐줄 선생님을 불러 과외를 하던가 하는 게 맞는 건데 아이가 다니고 있는 영어 학원에 부탁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그 당시에도 짜증은 났지만 사실 우리 학원 아이가 스피치 대회에서 수상을 하면 학원 홍보도 되고, 어차피 처음 있는 일도 아니기에 별도로 짬을 내어 봐준 적은 있었다.
그런데 빨간펜은 정말 차원이 다른 요구사항이었다.
지금 까지 영어 학원 보내면서 개인 학습지를, 그것도 영어와는 전혀 상관없는 빨간펜을 영어학원에서 시켜달라고 보낸 학부모는 단 한 명도 없었다. 웃픈 일이지만 이 학부모가 처음이었다. 공부방도 아니고 영어학원에 빨간펜 태블릿을 보내서 시켜달라고 당당하게 요구하는 이 엄마의 정신상태가 정말 할 말을 잃게 만들었다.
"금쪽이 엄마들 도대체 왜들 그러는지 모르겠네요, 요즘 학교 선생님들 안 좋은 일로 뉴스에 자주 나오는데 우리 엄마들도 나 뉴스에 나오는 거 보고 싶어서 이러는 건지... 아니면 이제 학원 접으라는 하늘의 계시인 건지..."
사람 상대하는 일이 힘든 건 나도 전부터 알고 있었고 감내하면서 일하고 있지만 이 날은 앞으로 어떤 기상천외한 일이 또 발생할지 몰라 마음이 착잡한 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