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케이트쌤 Feb 04. 2024

간식을 어디에 숨겼을까?

꼭 간식을 그렇게 까지 먹어야 했을까...

지난 11월의 어느 날, 수업 시작 한지 얼마 안 지나 직원들끼리 사용하는 단톡방에 이런 메시지가 올라왔다.


학생이 화장실가서 30분을 있다 와서 대부분의 수업을 놓쳤으니, 아이와 이야기 좀 해달라는 장문의 메세지. 부모에게 다시 메세지를 보내겠다는 내용이다.


그런데 이미 난 이 아이를 화장실에 보내 준 후였다.

내 수업이 2교시였고, 1교시 원어민 선생님 시간에 화장실 가서 이미 30분을 있다가 왔는데 내 시간에 화장실을 또 갔으니 뭔가 느낌이 싸했다.


몇 달 전 시간표가 바뀌면서 맡은 2, 3학년 꼬맹이들 반인데, 원장님이 나에게 수업을 넘겨주시면서 이 학생이 유독 장이 약한지 수업 시간에 화장실을 가서 큰일을 보고 온다고 하셨다.

우리 학원은 원래 수업 시간에 화장실을 안 보내주지만, 사정상 급한 경우에는 어쩔 수 없이 보내주고는 한다.

간혹 비염이 심하거나, 약한 장염 증세가 있는 학생들은 중간에 화장실을 보내주고는 하는데 원장님이 장이 안 좋은 것 같으니 그냥 화장실 보내주라고 하셔서 여태 그런 줄 알고 아무 말 없이 화장실을 보내줬다.

엄마도 자기 아이가 학원에서 화장실을 시도 때도 없이 가고 있는 걸 알고 있다고 하셨으며, 그래서 그동안 별 의심 없이 보내줬었다.

그런데 그날은 단톡방에 올라온 원어민 선생님의 톡을 보고 이건 단순히 장이 약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Anna가 전 시간에 화장실 가서 30분 있다 왔다면서 2교시 시작 하면서 화장실을 또 간 거니? 배가 이렇게 자주 아프다고? 뭔가 이상한데..."

반에 남아있는 다른 아이들에게 물었더니 옆 자리에 앉은 다른 학생이 그제야 사실을 이야기한다.

"선생님, 걔 배가 아파서 수업 중에 화장실 가는 게 아니에요"

으잉? 원장님께서 장이 약한 아이니까 그냥 보내주라고 하셔서 여태 그런 줄 알고 있었는데 그럼 그게 아니었단 말인가!

"배가 아픈 게 아니면 왜 화장실을 가는 건데?"

"간식 먹으러 가는 거예요."


헐..... 그랬다. 알고 보니 그동안 줄기차게 수업 시간에 화장실을 가서 한참 동안 들어오지 않았던 건 가방에 있던 간식을 먹으려고 갔던 것이었다.

그런데 이상했던 것이 그날은 아이가 하얀 스타킹에 원피스를 입고 온 날이었다. 주머니가 없었는데 간식을 어떻게 화장실로 가지고 갔나 이상해서 나는 아이들에게 재차 물었다.

"그럼 그동안 간식 먹으러 화장실을 간 거였다고? 그런데 오늘은 주머니 없는 옷을 입고 왔는데?? 그리고 평소에도 간식을 가지고 갔다면 과자 봉지 소리가 났을 텐데 어떻게 화장실 가서 간식을 먹은 건데?"


내가 자꾸 물으니 아이들이 서로 눈치를 보면서 대답을 안 한다.

"너희들이 말해줬다고 선생님 말 안 할 거야. 그리고 들어오자마자 당장 캐묻지도 않을 거고. 솔직하게 말해주면 안 될까?"

"그게.... 사실은요....."

망설이던 아이들이 이야기를 해줬다. 그동안 주머니에 간식을 넣어가지고 가져가면 금방 들통이 나기 때문에 작은 과자 봉지나 젤리 봉지를 팬티 안에 핸드폰과 함께 집어넣고 앉아있다가 수업 시작하면 화장실로 간 것이었다. 화장실에서 핸드폰으로 게임하고 유튜브 보면서 젤리나 과자를 먹고 있으니 당연하게도 금방 들어올 수가 없었던 것이었다. 즉 장이 안 좋아서 그런 게 아니라 단순히 핸드폰 가지고 놀면서 간식 먹으려고 화장실을 간 것이었다.


이 아이가 화장실 간다고 하면 원어민 선생님이 핸드폰을 주고 가라고 했는데, 이 날은 선생님도 깜박했더니 아이가 화장실 가서 30분을 놀다 들어와 놓고 2교시인 내 시간에도 화장실을 또 간 것이었다.

원래 먹는 것에 집착이 심한 아이였는데 수업 시간에 자꾸만 과자를 먹고 있길래 수업 중에는 과자 먹는 거 아니라고 했더니 화장실 가서 간식을 먹었던 것이었다. 그러니까 원장님이 수업을 했을 때도 장이 약해서 화장실을 자주 갔던 게 아니라 원장님 역시 수업 시간에 간식을 먹지 못하게 하니 팬티 속에 간식 봉지를 넣어두었다가 화장실 가서 먹고 들어왔던 것이었다.


이 일이 있고 난 후, 당연하지만 지금은 수업시간에 화장실을 안 보내주고 있다. 아이에게도 쉬는 시간에 화장실 다녀오고 수업 중에는 가지 말라고 말해두었더니 요즘에는 수업 중에 화장실을 가지는 않고 있다.



매거진의 이전글 한 두 사람만의 문제로 쓴 글이 아닙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